혐오와 사랑이 눈덩어리처럼 구르고 굴러서...
“나는 당신이 시내버스 안에서 한 명쯤 볼 법한 아가씨처럼 생겼었다... 나는 전혀 특별하게 생기지 않아었다. 나는 이 아가씨를 간단히 떠올릴 수 있다... 나는 비쩍 마르고 각진 몸매에 움직임은 모나고 쭈뼛쭈뼛했으며 자세는 경직되어 있었다... 나는 잔 다르크나 햄릿 같은 사람이었지만 잘못된 인생을 타고났다. 보잘것없는 사람, 말라깽이, 투명인간의 인생을. 달리 더 잘 표현할 방법은 없다. 당시의 나는 내가 아니었다고 할밖에. 나는 다른 사람이었다. 나는 아일린이었다.” (pp.9~10)
나는 아일린, 이지만 나는 아일린, 이라고 말함으로써 하나의 자아인 나와 아일린을 떨어뜨리려는 작가의 의도를 읽을 수 있다. 소설 《아일린》은 그렇게 내가 쓰는 나의 자화상이 된다. 아일린은 오십 년 전의 나이고 때는 1964년이다. 아일린의 나이는 스물 네 살이고, 열아홉 살에 앓던 어머니가 죽었다. 지금은 술을 끊어도 죽고 술을 끊지 않아도 죽을 운명이지만 아직 살아 있는 전직 경찰인 아버지와 둘이 살고 있다.
“... 당시의 나는 재미나 인기에 무관심했다. 차라리 고대나 머나먼 곳에 관한 책을 읽는 편이 나았다. 현재 진행중인 것이나 반짝 유행하는 것들을 알게 되면 내가 고립의 피해자일 뿐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 것들을 전부 의도적으로 피하면 내게 통제력이 있다고 믿을 수 있었다.” (pp.21~22)
언니 조우니가 있지만 그녀는 간혹 연락을 취해올 뿐이다. 조우니는 남자와 어울렸고 일찌감치 집을 나갔다. 아버지는 조우니를 어떤 이유에서인지 편애하였고, 나에게는 딸로서의 의무만을 강조하였다. 나는 교도소에서 두 명의 게으르고 나이든 동료와 일하고 있으며, 랜디라는 남자를 상상 속에서 사랑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은 X빌이라는 내가 사는 곳에서 일어나는 일이고, 나는 곧 X빌을 떠날 생각이다.
“... 아버지가 보기에 내가 저지를 수 있는 최악의 범죄는 나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무언가를 하는 것, 딸의 의무가 아닌 무언가를 하는 것이었다. 나만의 의지가 있다는 증거는 최고의 배반으로 간주되었다. 나는 아버지의 간호사, 조수, 관리인이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정말로 요구하는 것은, 오로지 진이었다...” (p.229)
소설 속에서 아일린은 ‘나는 그곳을 혐오했고 사랑했다’라고 말하는데, 그것은 어쩌면 자기 자신을 향하는 말인지도 모른다. 나는 보수적이고 심약하며 섭식장애를 가지고 있고 관계를 열망하지만 스스로를 숨기기에 급급하던 나를 혐오하는 것 같지만 그 혐오는 사랑의 감정과도 긴밀한 것처럼 보인다. 그런 아일린에게 일어난 크리스마스 주간, 그 일주일간의 기록을 통해 우리는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어른 여자는 코요테와 같아서 아주 적은 자원으로도 살아나갈 수 있다. 남자들은 집고양이에 가깝다. 너무 오래 홀로 두면 슬퍼서 죽는다. 이 약함 때문에 나는 오래도록 남자들을 사랑하게 되었다. 감정이 풍부하고 날마다 변화하고 아름다운 사람으로서 존중하려 해왔다. 말을 들어주고 위로해주고 눈물을 닦아주었다. 하지만 X빌에 사는 젊은 여자였을 때의 나는 다른 사람들 - 남자건 여자건 - 이 나만큼 깊은 감정을 느낀다는 것을 몰랐다. 누군가의 고통이 내 고통에 탐닉할 기회를 주는 경우가 아니라면 그 누구에게도 공감하지 못했다...” (p.171)
교도소에 홀연히 나타난 리베카라는 나를 폭발시키는 기폭제가 되고 있지만, 리베카라는 핀을 뽑지 않았더라도 나는 폭발의 모든 여지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마지막 순간 나타나지 않는 리베카를 원망하지 않는다. 같은 이유로 나는 아일린 이후의 내가 만난 많은 남자들을, 그들과 맺은 관계를 원망하는 것 같지도 않다. 이제 조용한 노후를 맞이한 나를 스스로 대견해할 뿐이다.
“우리 가족이 어디에서 잘못되었는지 모르겠다. 우리는 끔찍한 사람들이 아니었고, 당신들보다 특별히 더 나쁠 것도 없었다. 우리의 결말, 우리에게 생긴 일은 그저 운의 문제가 아니었나 싶다. 나는 그 현관문을 완전히 닫았다...” (p.361)
소설을 읽고 났더니 나와 아일린 사이, 소설의 중간중간 작은 단서들을 제공하기는 하지만, 베일에 가려진 오십 년이 궁금해졌다. 아일린을 버린 리베카의 이후의 삶은 어떻게 되었을지, 아일린이 자신의 닷지에 남겨 놓은 미시즈 포크는 자신의 실토를 어떻게 삼키고 살아 남을지, 그리고 집에 남겨진 아일린의 아버지는 얼마나 더 연명할 수 있었을지도 궁금해졌다. 리뷰를 쓰고 있는 지금까지도 궁금해서 미칠 지경이다. 이것을 이 소설 《아일린》의 장점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오테사 모시페그 Ottessa Moshfegh / 민은영 역 / 아일린 (EILEEN) / 문학동네 / 371쪽 / 2019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