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창백한 불꽃》

번거롭고 자의적인 독해를 통해 킨보트 교수의 입장에 서서...

by 우주에부는바람

“... 관례에 따라 주석은 시 다음에 오지만, 주석을 먼저 훑어보고 그 도움을 받아 시를 읽어보길 독자에게 권유하는 바이다. 물론 시를 읽어가면서 주석을 다시 읽게 되겠지만, 시를 다 읽고 난 다음 시 전체를 이해하기 위해 주석을 세번째로 참조해주었으면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책장을 앞뒤로 넘겨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으니 시 본문이 실린 부분을 잘라 묶어두거나, 그보다 간단하게 아예 책을 두 권 사서 편한 테이블 위에 나란히 펴놓고 보는 것이 현명하리라 생각한다...” (p.35)


‘독자에게 권유하는 바’에 따라 주석을 먼저 읽기로 했다. 실토하자면 주석을 읽기에 앞서 역자의 해설을 먼저 읽었다. 소설을 읽을 때 역자의 해설을 먼저 읽는 경우는 거의 없다. 아예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그러나 이번에는 도움을 받기로 했다. 시에 대한 해설서 같은 형식을 띤 소설이고, 나름대로 미스터리한 구석도 없지 않고, 허구와 실제를 묘하게 뒤섞고 있어 어떤 길잡이가 필요했다.


“... 나는 어느 찬란한 아침 셰이드가 소각장의 창백한 불꽃 속으로 초고 더미를 몽땅 던져 태우는 걸 우리집 현관에서 목격했던 일을 생생히 기억한다. 그는 그 뒤뜰 화형식에서 바람에 흩날리는 검은 나비들 사이에 서서 화형 집행측 참관자처럼 머리를 숙이고 있었다...” (p.20)


소설은 미국의 한 대학의 교수로 있는 찰스 킨보트가 같은 학교의 교수였고 존경하는 시인이었으며 이웃이기도 했던 존 셰이드의 마지막 시 <창백한 불꽃>에 붙이는 주석서의 형식으로 씌어져 있다. 킨보트는 존 셰이드의 마지막 순간 이 원고를 손에 넣었고, 사건으로 어수선한 틈에 그의 아내로부터 이 원고의 출판에 대한 허락을 얻었다. 그리고 천 개의 행 혹은 구백 구십 구 개의 행으로 이루어진 <창백한 불꽃>은 그렇게 킨보트에 의해 해설된다.


“나는 그 결과물이 창백하고 투명한 최종 단계에 이르러서는 내 이야기의 직접적인 반향이라 볼 수 없음을 안타깝게도 너무도 분명히 깨달았지만... 내 이야기의 석양빛이 셰이드가 3주 만에 천 행의 시를 쓸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창조적 활력을 발휘하는 과정에 촉매제 역할을 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p.105)


하지만 이 해설에는 문제가 있다. 킨보트는 자신이 셰이드의 시에 아이디어를 제공했을 뿐만 아니라, 셰이드의 시에는 숨겨진 이야기가 있음을 굳게 믿고 있다. 소설의 미스터리는 여기에서 시작된다. 러시아와 인접한 젬블라, 라는 이름을 가진 나라의 국왕, 그 국왕의 탈주와 그를 죽이기 위해 투입된 그라두스, 라는 인물의 이야기가 그것이다. 킨보트 교수가 시를 해설하는 과정 중에 우리는 이 미스터리한 이야기를 알 수 있게 된다.


“내가 이 간결한 소견의 의미를 옳게 이해했다면, 우리 시인은 여기서 인간의 삶이란 그저 방대하고 난삽한 미완의 걸작에 달린 일련의 각주에 불과하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p.336)


허구의 나라와 허구의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삼고 있지만 이들이 쓴 시와 그 해설에는 많은 작가들이 연루되어 있기도 하다. 소설을 쓰는 나보코프는 셰이드가 쓴 시에서 그리고 킨보트 교수가 쓰는 해설에서 수없이 많은 작가들과 작품들을 거론한다. 이 때문에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작가가 쓴 주석과 시 원문 그리고 색인과 함께 역자가 만들어 놓은 각주까지 들춰보아야 했다.


“... 연극 평론가들의 단순한 취향에 영합해 무언극을 지어낼지도 모르겠다. 세 명의 주역, 즉 상상 속의 왕을 죽이려는 미치광이와 자신이 왕이라고 상상하는 또다른 미치광이 그리고 우연히 사선射線으로 굴러들어와 두 허상 간의 충돌로 죽는 저명한 노시인이 등장하는 시대에 뒤떨어진 신파극을...” (p.371)


여기에 덧붙여, 탈주하여 교수가 된 젬블라의 국왕과 그 교수가 흠모하였던 시인의 죽음, 그리하여 미궁으로 빠져버린 시인이 남긴 시의 의미라는 도드라지는 내용의 이면에서, 러시아를 떠나 유럽을 거쳐 이제 미국에서 러시아어 대신 영어로 글을 쓰고 있는 나보코프라는 소설가 또한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나보코프의 문장을 무척 애정하고 있음에도 그 독해가 상당히 번거롭고 (그래서 자의적일 수 있는데), 어쩌면 그로 인해 소설 속 찰스 킨보트의 입장에 어설프게 서본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Vladimir Nabokov / 김윤하 역 / 창백한 불꽃 (Pale Fire) / 문학동네 / 440쪽 / 2019 (1962,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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