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열정의 당위 안에서도 떠오르기 시작하던 맥 빠짐의 시절...

by 우주에부는바람

무라카미 하루키를 처음부터 다시 읽는 연유를 잠시 설명하자면 이렇다. 하루키의 긴 여행기인 《먼 북소리》에는, 그 여행의 기간 동안 여러 도시에 머물거나 떠나면서 《상실의 시대》와 《댄스 댄스 댄스》를 썼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래서 나는 이중 《댄스 댄스 댄스》를 다시 읽어볼까 하는 마음이 생겨 개정판의 책을 샀다. 그런데 《댄드 댄스 댄스》의 서문 비슷한 것에서 말하길 《댄스 댄스 댄스》의 ‘나’는 《1973년의 핀볼》과 《양을 쫓는 모험》의 ‘나’와 같은 ‘나’라는 것이다.


“내게 글을 쓰는 일은 몹시 고통스러운 작업이다. 한 달 동안 한 줄도 쓰지 못할 때가 있는가 하면, 사흘 밤낮을 계속 썼는데 그것이 모두 엉뚱한 내용인 경우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쓰는 일은 즐거운 작업이기도 하다. 삶이 힘든 것에 비하면 글에 의미를 부여하는 건 너무나도 간단하기 때문이다.

...

모두가 잠든 새벽 세 시에 부엌의 냉장고를 뒤지는 사람은 이 정도의 글밖에는 쓸 수 없다.

그게 바로 나다.“ (pp.14~15)


나는 손에 들려 있는 《댄스 댄스 댄스》를 바라보며 한참을 고민하다가, 그래 《1973년의 핀볼》부터 읽어야겠다 생각하게 되었고, 곧이어 《1973년의 핀볼》은 하루키의 두 번째 작품인데 이럴 바에는 아예 하루키의 첫 번째 작품인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부터 다시 읽는 것은 어떨까, 결정을 하고 났더니 마음이 편해졌다. 하루키의 초기 소설들을 읽고 삼십여 년쯤 흘렀으니 다시 읽어도 무방할 것 같았다.


“믿을 수 없는 일이지만 열네 살 봄에 나는 마치 봇물이 터진 것처럼 갑자기 말을 하기 시작했다. 무슨 말을 했는지는 전혀 기억 못하지만, 14년 동안의 공백을 메우기라도 하려는 듯이 나는 석 달 동안 쉴 새 없이 지껄여댔고, 모든 얘길 끝낸 7월 중순에는 열이 40도까지 올라 사흘이나 학교를 결석했다. 열이 내렸을 때 나는 말수가 적지도 그렇다고 많지도 않은 평범한 소년이 되어 있었다.” (p.33)


그때 그 시절의 책들이 모두 사라졌거나 남아 있는 것들도 이가 빠진 것들 투성이인 것도 마음을 편하게 했다. 기억을 더듬어보자면 내가 읽은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는 판형도 지금의 개정판보다 작았고, <작가의 말> 이외에 <후기를 대신하여>, <작품해설>, <역자의 말>과 같은 군더더기가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어쩌면 그 책을 나는 이제 막 집회가 막 끝난 신촌 오거리 근처의 홍익문고에서 샀을 지도 모른다.


“나도 이따금 거짓말을 한다.

마지막으로 거짓말을 했던 건 작년이다.

거짓말을 하는 건 무척이나 불쾌한 일이다. 거짓말과 침묵은 현대의 인간 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거대한 두 죄악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실제로 우리는 자주 거짓말을 하고, 자주 입을 다물어 버린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1년 내내 쉴 새 없이 지껄여대면서 그것도 진실만 말한다면, 진실의 가치는 없어져버릴지도 모른다.“ (p.123)


군조 신인상을 수상한 하루키의 수상하기 이를 데 없는 데뷔작을 다시 읽자니 이율배반 그러니까 열정적이며 동시에 맥 빠진 당시의 젊은 내가 떠올랐다. 이해하기 힘들 수도 있지만 그때는 분명 이 두 가지가 공존하거나 공조하고 있었다. 하루키를 읽으면서도 자꾸 하루키를 밀어내고자 했던 마음에는, 열정적이어야 한다는 당위의 밑바닥에서 호시탐탐 떠오를 기회를 엿보는 맥 빠진 가벼움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 매일 밤늦게까지 일하고, 한밤중에 부엌 테이블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글을 썼다. 매일 조금씩 단락을 지어, ‘오늘은 여기까지’란 식으로 써나갔다. 문장이나 각 장이 단편적인 것은 그 탓도 크다고 생각한다.” (p.153, <작가의 말> 중)


사십 년 전에 출간되었고 삼십 여 년 전에 읽었던 소설인데 여태 재미있어서 조금 놀랐다. 이후 하루키의 소설에 계속해서 되풀이되는 여러 감각들이 여기서 시작되었고, 고스란히 유지되고 있구나, 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물론 하루키를 다시 읽는 일이 크게 자랑할 만 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상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이나 몽테뉴의 수상록을 연거푸 읽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하루키를 다시 읽는 사람도 있음으로 해서 구색이 맞춰지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무라카미 하루키 / 윤성원 역 /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風の歌を聽け) / 문학사상사 / 167쪽 / 2004, 2018 (1979)



ps. 이후에 나는 《댄스 댄스 댄스》의 서문에 실제로는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부터 《1973년의 핀볼》 그리고 《양을 쫓는 모험》까지의 ‘나’와 《댄스 댄스 댄스》의 ‘나’가 원칙적으로 동일인이라고 적혀 있는 것을 확인했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먼저 읽지 않았으면 큰일날 뻔 했다. 바보 같았다고 머리를 쥐어박았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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