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적으로만 볼 수는 없는, 자기 복제를 통한 끝없는 증식...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가 1979년에 출간되었고 《1973년의 핀볼》이 이듬해 출간되었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하루키는 이 두 권의 책을 쓸 때까지는 전업 작가가 아니었다. 낮에는 일을 하고 밤중이 되면 부엌의 테이블에서 이 두 권의 소설을 썼다. 이후에 그는 전업 작가가 되었다. 하루키는 다른 단편집들은 전집으로 묶거나 할 때 수정을 했지만 이 두 권의 소설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 ‘이것이 당시의 나였고, 결국은 시간이 흘러도 바로 나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어쨌든 나는 멀리 떨어진 곳의 이야기를 듣는 게 좋다. 나는 겨울잠에 들어가기 전, 지방을 비축하는 곰처럼 그런 이야기를 여러 개 비축해 두고 있다. 눈을 감으면 거리가 떠오르고, 집들이 생겨나고,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먼 곳의, 그리고 영원히 서로 만날 일이 없을 것 같은 사람들의 여유 있으면서도 확실한 삶의 일렁임을 느낄 수도 있다.” (p.13)
하루키의 산문들을 읽을라치면 그가 위트 있고 꽤나 현실적인 사람이란 생각이 든다. 그에게는 수많은 이야기가 있는데, 그것은 그의 현실 관찰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관찰과 동시에 저절로 그 뒷이야기가 떠오르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술술 이어지는 이야기를 밤중의 부엌 테이블에 앉아서 드문드문 엮어가는 하루키를 떠올린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와 《1973년의 핀볼》은 그렇게 멈추지 않는 이야기들이 어떤 순간에 두 개로 분화한 하나의 이야기 같다.
“이것은 ‘나’의 이야기인 동시에 쥐라고 불리는 사나이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해 가을 ‘우리’는 7백 킬로미터나 떨어져서 살고 있었다.
1973년 9월, 이 소설은 그때부터 시작된다. 이것이 입구다. 출구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만약 없다면 글을 쓰는 의미가 전혀 없게 된다.“ (pp.34~35)
내가 있고, ‘쥐’와 ‘제이’가 두 소설에서 함께 등장한다. 글을 쓰는 행위가 있고, 원숭이와 여자와 술집이 있다. 그리고 우물이 있다. 우물은 철저하게 입구와 출구가 하나인 공간이다. 방이든 집이든 사무실에는 문이 있고 그것이 입구와 출구를 겸하지만, 문이 아닌 다른 출구들 또한 존재한다. 하지만 우물에는 그런 예외가 존재하지 않는다. A로 들어갔다면 반드시 A로만 나올 수 있다. 하루키는 그것을 뻔히 알면서 B와 C와 같은 출구를 떠올리는 사람이다. 어쩌면 그래서 작가가 된 것인지도 모른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나 다 자신의 시스템에 맞춰 살아간다. 그것이 내 것과 지나치게 다르면 화가 치밀고, 지나치게 비슷하면 슬퍼진다. 그뿐이다.” (p.78)
소설은 1969년에 시작된다. 아니 1973년에 시작된다. 1969년 봄에 나는 나오코로부터 플랫폼의 이 끝에서 저 끝으로 돌아디는 개가 있는 역에 대해 들었고, 1973년에 그 역을 찾아갔고 개를 보지 못했다. 나오코는 이제 없고, 나는 쌍둥이와 함께 살아간다. 그러니까 생김새가 완전히 똑같아서 구분을 하는 것이 불가능한 일란성 쌍둥이와 함께 자고 일을 하고 돌아오면 다시 쌍둥이가 있다.
“... ‘스페이스십’은 매우 정통적이고 심플했죠... ‘스페이스십’은 이상한 기계였어요. 얼핏 보기에는 아무런 특징도 없는 것 같지만, 게임을 해보면 어딘가 달랐습니다...” (pp.159~160)
그리고 ‘스페이스십’이라는 이름의 핀볼 기계가 있다. 나는 내가 한때 꽂혔던 그 명칭의 기계를 찾기로 한다. 핀볼 매니아인 사내의 도움을 받아 드디어 그 기계와 다시 대면하는 순간은 소설의 말미에 등장한다. 꽤 높은 점수를 낼 수 있었던 그 기계의 작동 버튼을 찾았지만 나는 플레이를 하는 대신 그 기계와 대화한다. ‘스페이스십’은 아무래도 그녀인 것 같다. 그리고 소설의 마지막에는 쌍둥이가 나를 떠난다.
“...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건 아주 오래전에 죽어버린 시간의 단편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도 얼마 안 되는 그 따스한 추억은 낡은 빛처럼 내 마음속을 지금도 여전히 방황하고 있었다. 그리고 죽음이 나를 사로잡아서 다시금 무의 도가니에 던져 넣을 때까지의 짧은 한때를 나는 그 빛과 함께 걸어갈 것이다.” (p.198)
그러고 보니 읽다만 하루키의 산문집 《쿨하고 와일드한 백일몽》의 <무라카미 하루키의 쿨하고 와일드한 백일몽>이라는 글에 쌍둥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나는 쌍둥이라는 상황을 좋아한다. 쌍둥이와 함께 있다는 가설 속의 내가 좋다.’ 라는 것이었는데, 하루키는 이미 쌍둥이와 함께 하는 소설을 실컷 써놓고 뒤늦게 고백한 셈이다. 자기 복제를 통한 끝없는 증식이라는, 그렇다고 부정적으로만 볼 수는 없는, 하루키의 당시를 또 한 권 다시 읽었다.
무라카미 하루키 / 윤성원 역 / 1973년의 핀볼 (1973年のピンボㅡル) / 문학사상사 / 239쪽 / 2004, 2018 (19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