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 인형처럼 고개를 흔들며 읽고 떠올리고 읽고 생각하고...
*2019년 3월 9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억지로 잠을 청하려 침대에 누웠다. 곧이어 토옥 토옥 토옥 토옥, 건넌방에서 내 방으로 소리가 건너왔다. 고양이 용이는 이제 없고, 더 이상 저 느리게 걷는 사족 보행의 소리도 없다, 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몸을 일으켰다. 거짓말처럼 용이가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잠이 오지 않으면 자지 않아도 돼. 잠은 열심히 하루를 산 사람의 몫이라고 생각하도록 해봐.” 나는 용이의 말에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좀처럼 멈출 수 없었다.
『와타나베 노보루가 나한테 문어 그림이 그려진 엽서를 보내왔다. 문어 그림 밑에는 그 특유의 비뚤비뚤한 글씨로 이런 글이 쓰여 있었다.
“지난번에는 제 딸이 지하철에서 당신에게 신세를 많이 졌다지요. 감사합니다. 언제 가까운 시일 내에 문어라도 먹으러 갑시다.”
나는 엽서를 읽고 깜짝 놀랐다. 왜냐하면 나는 한동안 여행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거의 두 달 동안 지하철 같은 것은 타지도 않았으며 지하철 속에서 와타나베 노보루의 딸을 도와준 기억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에게 딸이 있다는 사실조차도 몰랐다. 아마 다른 누군가와 나를 혼동하고 있는 거겠지.』 (pp.64~65)
《밤의 거미원숭이》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초단편소설 모음집이다. 책에 실린 이야기들은 1985년에서 1987년, 그리고 1993년에서 1995년 사이에 여러 잡지들에 게재된 것들을 다시 모아놓은 것이다. 작가는 이런 짧은 야이기 쓰기를 일종의 취미 활동 쯤으로 생각한다고 서문에서 실토하고 있다. 일단 앉아서 쓰기 시작하면 이런 이야기쯤은 크게 고생하지 않고 뚝딱 써낼 수 있다고 자랑(은 아니라고 하면서도)한다.
이야기들을 읽으며 작가가 아니어도 이런 이야기쯤은 나도 뚝딱 만들어낼 수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밤의 거미원숭이》를 읽을 때 나는 이제 막 고양이 용이를 떠나보낸 참이었다. 그래서 고양이 용이에 대한 이야기를 하나 뚝뚝 써보려고 했다. 나는 밤마다 환청처럼 고양이 용이의 발걸음 소리를 들었다. 침대에 누워 책을 읽다가 문득, 책을 덮고 스탠드 불빛을 끄고 난 다음에 불현듯, 깜짝 놀라 일어나기를 반복하는 참이었다.
나는 고양이 용이에 대해 쓰지 않으면 저 발걸음 소리를 계속 들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아주 오랫동안 계속 듣게 될 것이라고 여겼다. 나는 이야기가 떠오를 때까지 《밤의 거미원숭이》의 리뷰 작성을 미뤘다. 용이가 떠나고 남겨진 토옥 토옥 토옥 토옥 발걸음 소리를 들으며 이야기를 생각했다. 그렇게 계속 이야기를 생각하고, 이야기는 쓰지 못하는 동안 발걸음 소리는 계속 되었다.
“그런데 그때 저 멀리에서 기적 소리가 들려. 아주 아주 먼 곳에서 들려오는 기적 소리야. 도대체 어디에 철로가 있는지, 나도 모르겠어, 그만큼 멀리서 들려오거든. 들릴 듯 말 듯한 소리야. 그렇지만 그것이 기차 기적 소리라는 것을 나는 알아. 틀림없어. 나는 어둠 속에서 가만히 귀를 기울여. 그리고 다시 한 번, 그 기적 소리를 듣지. 그러고 나면 내 심장의 통증은 멈추고 시곗바늘도 움직이기 시작해. 철상자는 해면 위로 천천히 떠올라. 모두가 그 작은 기적 소리 덕분이야. 들릴 듯 말 듯한 그 정도로 작은 기적 소리 덕분이라고. 나는 그 기적 소리만큼 너를 사랑해.” (pp.175~176)
내가 계속해서 흔들 인형처럼 고개만 흔들고 있자, 쯧쯧 혀를 찬 고양이 용이가 안 되겠다는 듯 허공을 향해 앞발을 두어 번 젓더니 물었다. “그 흔들거리는 머리는 내 말이 마음에 안 든다는 의미야? 아니면 내가 나타난 것을 믿지 못하겠다는 의미인 거야?” 그리고 나는 여태 답을 주지 않고 있다. 내가 멈추지 않고 머리를 흔드는 동안에는 용이도 사라지지 않고 거기에 계속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 안자이 미즈마루 그림 / 김춘미 역 / 밤의 거미원숭이 / 문학사상 / 199쪽 / 2003, 2016 (19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