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진진한 전개의 법정 미스터리물에 가깝기는 한데...
이십대 초반의 아름다운 여대생인 칸나는 아나운서 면접 시험을 치르던 날, 시험을 망치고 나서 도큐 핸즈에서 식칼을 산 다음, 아버지가 학생을 가르치는 대학을 찾아갔다. 그리고 여학생 화장실에서 아버지를 살해한 후, 집으로 돌아가 어머니와 말다툼을 했고, 피가 묻은 옷차림으로 강변을 거닐다 체포되었다. 그리고 임상 심리 상담사인 유키는 자신의 아버지를 살해한 히지리야마 칸나에 대한 글을 의뢰받았다.
“잎이 무성하게 자란 관엽식물에 물을 주다가, 물방울이 컵에서 손가락으로 흘렀다. 고독과 성욕과 사랑을 구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젊으면 더욱 그렇다. 다만 나나미가 또 큰 상처를 입기 전에, 스스로 그 상황을 인식할 수 있기를 바랐다.” (pp.19~20)
소설의 초반부, 소설과는 상관없이 한 여자와 상담을 하면서 유키가 뱉어낸 말에 소설의 이후 진행과 관련한 많은 내용이 내포되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일화의 삽입이 적당한 것인지 모르겠다. 어쩌면 일종의 일그러진 거울의 상이었던 이 일화가 이후 진행되는 칸나의 성장 과정과 그로 인한 트라우마를 밝혀내는 과정을 통해 반듯하게 펴지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도 있겠다.
“칸나의 어머니와 나눴던 대화를 돌이켜 본다. 상담을 할 때, 내담자에게서 그렇게 자기중심적인 어머니 얘기를 종종 듣는다. 하나같이 책임을 회피하려는 언행에 오히려 거대한 어둠을 숨기고 있는 것처럼 느꼈다. 모든 것이 칸나가 제멋대로 한 짓. 직접적으로는 그렇다 쳐도, 그래도.” (p.116)
일종의 친족 살해라고 할 수 있는 사건은 대중들의 주목을 받게 되고, 그래서 유키 또한 관심을 갖고 칸나를 만나기 시작한다. 마침 남편의 동생인 가쇼가 국선 변호사로 선택되었기 때문에 여러 면에서 글을 쓰기에 유리한 조건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그 과정이 순탄치는 않다. 칸나는 자신의 마음을 확실히 열어 보이는 데 주저하고, 시동생뻘인 가쇼와는 가몬과 만나기 전에 생긴 앙금이 아직 해소되지 않은 상태이다.
“따라야 해. 어른의 기대에 따라야 해. 나의 불쾌함과 공포는 없는 것으로 치고.” (pp.275~276)
가쇼는 원래 가몬의 어머니의 여동생의 자식이었지만 가몬의 집에 떠넘겨져 키워진 내력을 지니고 있고, 유키는 해외에 출장을 갈 때마다 아동 성매매를 한 아버지의 전력을 알고 있다. 두 사람이 만나는 칸나는 의붓아버지인 히지리야마에게서 직접적인 성폭행을 당한 적은 없지만 언제 내쳐질지 모른다는 심리적인 압박을 받았고, 성적인 수치심을 가질만한 환경에서 남자들에 둘러싸여 초등학생인 시절 그림 모델을 해야 했다.
“... 칸나 씨는 애당초 사람 앞에서 객관적 사실과 자기 의견을, 상대를 불쾌하지 않게 피력하는 훈련이 되어 있었어요. 지금까지는 죄책감 때문에 그걸 발휘하지 못했지만, 그래서 말했죠. 지금이야말로 칸나 씨가 봐 온 사실과 느껴 온 것이 필요한 때니까, 어머니와 아버지에 대한 배려와 부담은 버려도 좋다. 책임은 나와 기타노 선생과 칸나 씨 셋이서 다 같이 지자고 말입니다.” (p.336)
이야기의 전개가 흥미진진한 것은 맞고, 법정 미스터리물로 영화화되기에도 맞춤이다는 생각은 드는데, 아귀를 맞추기 위해 사용된 과도한 과거 행적들이 거슬리는 것 또한 사실이다. 비뚤어진 환경이 육아의 과정에서 여성 아동에게 전가할 수 있는 트라우마적 상황과 그것이 성장 이후 발생시킬 수도 있는 사건을 차분하게 들여다보기 보다는 그 폭발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보니 휘발성이 강한 이야기가 되었다.
시마모토 리오 / 김난주 역 / 퍼스트 러브 / 해냄 / 357쪽 / 2019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