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타비아 버틀러 《블러드차일드》

거대한 SF 서사가 아닌 소소한 테마 아래에서도...

by 우주에부는바람

옥타비아 버틀러는 흑인 여성이라는 수식을 달고 있는 드문 SF 작가이다. 열두 살 때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고, 시리즈로 묶일 수 있는 여러 장편소설과 소설집을 썼으며, 네뷸러상과 휴고상 등을 여러 차례 수상하였다. 소설집 《블러드차일드》에는 일곱 편의 단편소설 (「블러드차일드」, 「저녁과 아침과 밤」, 「가까운 친척」, 「말과 소리」, 「넘어감」, 「특사」, 「마사의 책」) 그리고 두 편의 에세이 (「긍정적인 집착」과 「푸르로 스크리벤디」)가 실려 있다.


「블러드차일드」

나는 다른 생명체의 몸을 숙주로 삼아 자손을 번식하는 틀릭의 일원인 트가토이와 어린 시절부터 함께 살아온 테란의 일원이다. 인간의 몸을 숙주로 삼는 외계 생명체라는 흔한 클리셰이기 한데, 트가토이와 테란 사이에 발생하는 어떤 유대가 존재한다. 후기에 따르면 (소설에는 특이하게도 매편이 끝날 때마다 작가의 후기가 붙어 있다) 이 소설은 ‘아주 다른 두 존재 간의 사랑 이야기’이고 ‘성장 이야기’이며 ‘남성 임신에 대한 이야기’이다.


「저녁과 아침과 밤」

어느 순간 폭력성을 띤 채 스스로를 파괴하는 질병인 DGD(듀리에-고드 질환)는 일종의 유전병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질병에 특화된 규정식을 먹음으로써 병증의 발화를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지만 완벽하지는 않다. 병증의 발화를 소설 내에서는 표류라고 부른다. 병의 발생과 관련한 일화 그리고 소설 속 특수한 기관에서 찾아낸 냄새를 통한 병증의 통제와 같은 부분이 재미있다.


「가까운 친척」

SF의 범위에 들지 않는 소설이다. 후기를 보면 작가 자신의 어린 시절과 관련한 일련의 기억을 소스로 삼고 있는 이야기인 듯하다. 침례교도인 작가의 이력이 어느 정도 배어 있는 작품일 터이다.


「말과 소리」

질병이 휩쓸고 간 이후 사람들 사이의 소통은 예전만큼 수월하지 않다. 언어를 구사할 수 없거나 아예 소리를 내는 것이 가능하지 않은 세상에서 몇몇 소수만이 말을 하고 글을 읽을 수 있을 따름이다. 폭력과 살인과 강간이 일상화된 세상의 원인균에 대해서는 나오지 않지만 어쨌든 작가는 말을 할 줄 아는 아이들을 소설의 마지막에 살렸다.


「넘어감」

공장에서 일하면서 남는 시간동안 글을 썼던 작가의 과거에서 비롯된 소설, 이라고 후기에서 밝히고 있다.


「특사」

커뮤니티라고 불리는 생명체 혹은 생명체집합들의 군락이 지구의 사막 이곳저곳에 생긴 지 한참이 지났다. 노아는 이들 커뮤니티의 두 번째 대규모 납치 시기에 이들에게 끌려갔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이제 커뮤니티에 고용될 인간들을 선발하기 위한 통역자이자 특사로 파견되었다.


「마사의 책」

신에 의해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무언가 행동을 할 수 있는 권리를 지니게 된 마사는 그러나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자신이 결정한 무언가가 진짜로 인류의 보다 나은 생존에 도움이 될 것인지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신은 방법을 알려주지 않고, 마사에게 전권을 넘겨줄 뿐이다. 그리고 마사는 꿈을 선택한다.


「긍정적인 집착」

“수줍음은 최악이다. 수줍음은 귀엽지도 여성스럽지도 매력적이지도 않다. 수줍음은 고문이고, 최악이다. 나는 유년기와 청소년기의 상당 시간을 땅바닥을 보면서 지냈다. 내가 지리학자가 되지 않은 게 놀랍다...” (p.265) 자신이 어떤 시기를 거쳐 직가가 되었는지를 밝히는 짧은 에세이이다.


「푸르로 스크리벤디」

글쓰기에 대한 짧은 에세이이다. 푸로르 스크리벤디, 라는 제목은 ‘글쓰기광’ 또는 ‘글쓰기의 열정’ 등으로 변역될 수 있는 라틴어라고 한다. 작가가 밝히는 글쓰기의 규칙을 간단히 요약하며 이렇다. ‘읽어라’, ‘글쓰기 수업을 듣고 작가 워크숍에 가라’, ‘써라, 매일써라’, ‘최대한 좋아질 때까지 글을 고쳐라’, ‘출간을 위해 글을 작품을 내밀어라’, 그리고 ‘영감에 대해서는 잊어라. 습관이 더 믿을 만하다.’ ‘재능도 잊어버려라’, ‘상상력도 잊어버려라’ 그리고 ‘물고 늘어져라’.



옥타비아 버틀러 Octavia E. Butler / 이수현 역 / 블러드차일드 (Bloodchild And Other Stories) / 비채 / 282쪽 / 2016 (1996,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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