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남과 죽음을 향한 그로테스크한 상상의 비수...
박형서의 《당신의 노후》를 읽고 난 다음 무라타 사야카의 〈살인출산〉을 읽은 것이 묘하다. 《당신의 노후》가 늙음과 죽음에 대한 사회적 맥락을 공포스럽게 예상한다면 〈살인출산〉은 태어남과 죽음에 대한 사회적 맥락을 그로테스크하게 상상한다. 《당신의 노후》가 한 발쯤 나아간 미래를 더듬고 있다면, 〈살인출산〉은 열 발쯤 나아간 미래로 우리를 집어 던진다. 여하튼 소설집은 충격적 상상들의 집합소 같다. 작가인 무라타 사야카는 동료들에게 ‘크레이지 사야카’라고 불리기도 한단다.
「살인출산」
“살인출산 시스템이 해외에서 도입된 것은 내가 태어나기 전이다. 훨씬 전부터 제안되긴 했지만, 열 명을 낳으면 한 명을 죽여도 되는 그 시스템이 일본에서 실제로 채용되기까지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했다. 살인 반대파의 목소리도 컸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단 채용되고 나니, 그쪽이 훨씬 자연스러운 흐름이란 걸 모두가 깨닫게 됐다고 학교 교사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연애와 섹스의 결과물인 임신이 사라진 세상에서 우리에게는 어떤 강렬한 ‘생명의 계기’가 필요했고, ‘살의’야말로 그 충동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p.19) 소설은 지금으로부터 100년 후의 일본을 배경으로 한다. 그곳에서는 이미 ‘살인출산’이라는 시스템이 합법적으로 적용되었다. 그러니까 내가 만약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면 열 명의 아이를 낳으면 된다. 살인을 하기로 작정하고, 열 번의 출산을 결심한 이는 ‘출산자’로 존경을 받는다. 혹독한 저출산 사회에서 살인과 출산은 이렇게 연결된다. 열 번의 출산을 완료한 ‘출산자’는 ‘살인신청서’를 작성하고, 그 다음 날이면 살해를 당하게 될 이에게 그 내용이 전달된다. 살해를 당하게 될 ‘망자’는 한 달의 유예기간을 갖게 되고, 죽어야 할 날짜가 되면 전신마취 후 ‘출산자’에게 인계된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 이었다고 할법한 내용이다.
「트리플」
동성혼이 아니라 세 사람의 혼인을 인정해야 한다는 데모가 일어나고 있는 사회다. <살인출산>의 사회에서도 이제 대부분의 출산은 인공수정을 통해 이루어진다. 섹스는 출산과는 무관한 영역이 되었다. 따라서 굳이 전통적인 방식의 연애와 섹스와 결혼과 출산이라는 방정식은 이미 무력화되었다. 남남남이어도 상관없고 여여여이어도 상관없으며 남녀남이나 여남여도 상관없다.
「청결한 결혼」
부부가 된 이후의 섹스리스가 아니라 섹스리스를 천명하고 부부가 되는 것이 가능할까. 그런데 이 부부가 선택한 ‘클린 브리드’라는 방법은 섹스라고 불러야 할까, 아니면 그것은 섹스가 아니라고 해야 할까.
「여명」
“의료가 발달해서 이 세상에서 ‘죽음’이 사라진 지 100년가량 지났다. 노화도 사라졌고, 사고사나 타살에 의한 죽음도 기술의 발달로 바로 소생시킬 수 있게 되었다... 인구가 폭발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그렇지도 않아서, 우리는 ‘이제 슬슬 때가 됐다’는 생각이 들면, 스스로 원하는 방식으로 죽음을 맞았다...” (p.194) 사람들은 직감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때가 되면 죽음을 맞이하고, 인구는 그 직감만으로도 적정선에서 유지되고 있다. 죽기로 작정하면 먼저 소생 거부 수속을 구청에서 밟고 사망허가증을 받아야 한다. 이 사망허가증으로 약국에서 약을 살 수 있다. 약사는 편안한 죽음을 맞기 바란다는 덕담과 함께 비타민제를 함께 건네기도 한다. 나는 산에 올라 구덩이를 파고 그 속에 파묻힌 채로 호스로 호흡을 유지하면서 약을 먹는다. 자연사가 부활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중에 의식이 끊긴다.
무라타 사야카 / 살인출산 (殺人出産) / 현대문학 / 203쪽 / 2018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