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면상태'인 우리의 마음 중 일부를 끄집어내어...
“둘은 서로 놀랐다. 굵게 말린 머리가 바렛 아가씨의 얼굴 양쪽으로 드리워져 있었고, 커다란 두 눈은 밝게 빛났으며, 크게 벌어진 입가에는 미소를 띠고 있었다. 굵직한 귀가 플러쉬의 얼굴 양쪽에 드리워져 있었고, 그의 눈 역시 크고 빛났으며, 그의 입도 크게 벌어져 있었다. 그들 사이엔 닮은 점이 있었다... 그렇지만 너무 다르잖아! 그녀는 공기와 빛, 자유가 단절된 병약한 환자의 창백한 얼굴이었다. 그는 본능적으로 건강과 활력이 넘쳐흐르는, 어린 동물의 따뜻하고 홍조를 띤 얼굴이었다. 한 틀에서 만들어졌지만, 두 동강 난 그들이 각자에게서 휴면상태인 것으로 서로를 완성시켜 줄 수 있을까? 그녀는-그럴 수도 있겠는데, 어쩌면 그도-아니다, 그럴 리 없다. 그들 사이에는 하나의 존재를 다른 하나와 분리시키는 넘을 수 없는 차원의 장벽이 놓여 있었다. 그녀는 말을 했다. 그는 말을 못했다. 그녀는 여자였고 그는 개였다. 그렇게 밀접하게 결합되어, 그렇게 엄청나게 분리되어, 그들은 서로를 응시했다...” (pp.35~36)
‘플러쉬’는 순종의 혈통을 가진 코커스패니얼 종의 개다. 태어난 해는 1842년 초쯤이라고 버지니아 울프는 짐작한다. 플러쉬는 원래 미트포드(매리 러셀 미트포드는 작가 겸 극작가이다)의 개였다. 그러나 미트포드는 플러쉬가 순종 코커스패니얼의 계급에 알맞은 대우를 받기 어렵게 되자, 플러쉬를 파는 대신 적당한 이에게 넘기기로 작정한다. 그 이가 바로 윔폴가의 바렛 아가씨, 엘리자베스 바렛 (브라우닝)이다.
“... 플러쉬는 평범한 개가 아니었다. 그는 활기찼지만 성찰하는 개였다. 또한 인간의 감정에도 매우 민감했다. 그런 개에게 침시의 분위기는 특유의 힘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그의 보다 엄격한 자질에 오히려 해가 되는 감수성이 키워졌음에도 우리는 그를 나무랄 수 없다. 그리스어 사전을 머리에 베고 누워있으면서, 자연스럽게 그는 짓는 것과 무는 것을 싫어하게 되었고, 개의 활기보다는 고양이의 침묵과 인간과의 교감을 선호하게 되었다...” (p.61)
엘리자베스 바렛은 시인으로 이미 이름을 알린 작가였으나 건강이 좋지 못하여 칩거하는 상태에 있다. 미트포드는 바렛에게 플러쉬를 넘기고 이제 플러쉬와 바렛의 교감이 시작된다. 플러쉬는 처음에는 당황하지만 점차 바렛을 이해하게 되었고, 바렛 또한 납치된 플러쉬를 위해 어떤 위험도 감수하겠다는 정도의 의지가 생겼다. 이제 바렛과 플러쉬에게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형성되었다.
“우리는 플러쉬에게 있어 가장 완전하고 가장 자유롭고 가장 행복한 이탈리아에서의 삶은 주로 일련의 냄새라고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랑은 점차 매력을 잃어가고 있을지라도 냄새는 남아 있다... 플러쉬는 플로렌스의 거리를 정처 없이 떠돌며 냄새의 향연을 즐겼다. 그는 냄새를 따라 대로와 뒷길, 광장과 골목을 요리조리 돌아다녔다. 그는 거친 냄새, 반듯한 냄새, 어두운 냄새, 황금빛 냄새를 맡으며 나아갔다...” (p.156)
그리고 엘리자베스 바렛은 로버트 브라우닝과 결혼하여 도피하였고 엘리자베스 바렛 브라우닝이 되었다. 엘리자베스 바렛 브라우닝과 로버트 브라우닝의 연애는 꽤나 유명하다. 이들이 주고받은 편지는 지금까지 남아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플러쉬는 바렛이 브라우닝의 편지를 받고 읽을 때 바로 그 옆에 있었고, 두 사람이 사랑의 도피처인 이탈리아의 플로렌스 지방으로 향할 때까지 동행한다.
“플러쉬는 이제 늙은 개가 되어가고 있었다. 잉글랜드로의 여행과 그것에서 되살아난 모든 추억은 확실히 그를 지치게 했다. 플로렌스의 그늘은 윔폴가의 뙤약볕보다 뜨거웠지만, 그가 돌아왔을 때 그는 태양보다 그늘을 찾았다는 것을 알았다. 조각상 밑에 몸을 쭉 뻗어, 이따금씩 뿜어져 나오는 몇 방울을 털 위로 맞으려고 샘 가장자리에 웅크린 채, 그는 몇 시간이고 졸곤 했다...” (p.173)
《플러쉬》는 버지니아 울프가 썼고, 이것은 플러쉬의 자전적 기록이자 플러쉬와 함께 한 엘리자베스 바렛 브라우닝의 기록이기도 하다. 책의 앞날개와 뒷날개에 거쳐 버지니아 울프가 함께 하였던 다섯 개들에 대한 설명이 들어 있다. 버지니아 울프가 개를 주인공으로 삼아 이런 글을 쓸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거기에 있다. 엘리자베스 바렛 브라우닝의 시에서 어떻게든 ‘플러쉬’라는 개를 찾아낸 이유가 거기에 있다.
『... 세월이 흘렀고, 이제 그녀는 행복했다... 그녀는 잠시 그에게 몸을 굽혔다. 크게 벌어진 입과 커다란 눈과 구불거리는 곱슬머리를 가진 그녀의 얼굴이 기묘하게도 그의 것과 닮아 있었다. 두 동강났지만 한 틀에서 만들어진 그들은 아마 각자에게서 휴면상태인 것으로 서로를 완성시켜 주었을 게다... 그녀는 다시 플러쉬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는 그녀를 바라보지 않았다. 예사롭지 않은 변화가 그에게 닥쳐왔다. “플러쉬!” 그녀가 울부짖었다. 그러나 그는 침묵했다. 그는 살아 있었고, 이제 그는 죽었다...』 (pp.189~190)
십칠 년을 함께 하였던 고양이 용이를 떠나보내고, 버지니아 울프가 개를 주인공으로 삼은 소설을 쓴 바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고양이 용이를 쓰고 싶다는 욕구가 이 책을 집어 들게 만들었다. 버지니아 울프의 전기에서 퀀틴 벨은 “『플러쉬』는 개를 좋아하는 사람이 썼다기보다는 개가 되고픈 사람이 쓴 책이다.”라고 말했다 한다. 나에게 있는 고양이 용이가 되고 싶은 마음 그리고 나에게 있는 ‘휴면상태’인 고양이의 속성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해보는 중이다.
버지니아 울프 Virginia Woolf / 지은현 역 / 플러쉬 : 어느 저명한 개의 전기 (Flush - A Biography) / 꾸리에 / 233쪽 / 2017 (19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