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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Aug 08. 2024

김소연 《나를 뺀 세상의 전부》

생활인 것들 안으로 자꾸자꾸 들어가다보면...

*2019년 2월 3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설 명절을 앞두고 있다. 며느리들의 스트레스 수치가 서서히 증가하고 덩달아 아들들의 스트레스 수치 또한 올라가는 때다. (딸의 스트레스 수치는 딸이 되어보지 않아 모르겠다. 사위의 스트레스 수치는 오르지 않는다.) 자식들의 행복을 최고의 가치로 여긴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는 부모들로 가득한 나라이니 이러한 상황에서 부모들의 행복감 또한 올라갈리 만무하다. 나는 도통 명절의 존재 이유를 잘 모르겠는데, 그러나 연휴이므로 책이나 실컷 보는 걸로 자족한다.


  “... 인간을 인간으로 바라봐 주는 일을 가까스로 할 수 있는 게 문학이라고 믿어왔지만, 인간을 인간으로 바라봐 주는 일을 더 이상 하지 않는 문학이 더 많을 때에, 그것을 나는 여전히 문학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p.31)


  《나를 뺀 세상의 전부》는 시인의 일기글 같은 것이다. 날짜가 적혀 있지는 않지만 계절에 따라 구분하고 있기는 하다. 시시콜콜한 일상의 기록들로 거개가 채워져 있지만 직업이 시인이니 문학에 대한 일갈들이 드문드문 등장한다. 문학을 앞에 세우기보다 인간을 앞세우려는 태도가 있다. 문학 자체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인간과 사회에 대한 이야기들에 좀더 방점을 찍고 있다.


  “언제나 불의는 홀로 완성되지 않았다. 하나의 사건은 시스템과 연결되어 있었고, 시스템 안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구성원과 연결되어 있었다. 각자의 자기 정당화, 각자의 피치 못할 사정, 각자의 선의에 입각한 타협이 각자의 침묵을 만들었다. 이것들이 결합하고 서로 도와야 불의가 비로소 완성되었다. 그 수많은 사람 중 한 명이 나는 결코 아니었다고 단언하기에는 내가 속한 준거집단에 나는 긴밀하게 연결된 채 살아왔다.” (p.81)


  영화나 문학 작품을 읽은 소회가 인간과 사회의 어떤 구조를 읽어내는 단초로 이어지기도 한다. 영화 《스포트라이트》를 보고 나서 기록하는 위의 단락과 같은 경우가 그렇다. 개개의 생활인으로 존재하는 우리들이 어떻게 이 불의한 시스템의 버팀목이 되고 있는지를 아프게 가리키는 대목이다. 누구도 자유롭지 못한데, 탄핵 이후 새로운 대통령 이후에도 여전히 견고하게 작동하는 적폐의 시스템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생활 아닌 것들로 거의 이루어지는 우리들의 시. 작품이 되어 본 적 없는 우리들의 생활. 생활은 어째서 시에게서조차 말하고 싶지 않은 세계가 되어 있는 걸까. 생활이 곧 자부이자 자랑인 세계는 평범하기만 한 걸까. 평범함은 어째서 시가 사랑해주지 않는 걸까.” (p.156)


  시인 동료와의 대화를 통해 떠올리는 위와 같은 성찰의 떠올림도 나쁘지 않다. 시와 생활의 분리가 만들어내는 이율배반이 스스로에게 납득되지 않아 토로하는 한숨 같다. 시를 대하는 대중의 시선이나 시를 논하는 평론가의 시선에 구애받기보다 시를 향하여 갖게 되는 어떤 의구심에 사로잡히는 작가가 더 보기 좋다. 작가의 시집을 곧잘 읽는데, 이러한 의구심이 어떻게 반영될 것인지 지켜보는 재미도 있겠다.


  “서점을 나와 근처 커피집에 앉아 눈발이 날리는 골목을 내다보다가, 새로이 꿈 하나를 꾸게 됐다. 사전만 전문적으로 갖춘 작은 서점을 운영해보고 싶다는 꿈. 누가 내 꿈을 대신 이룬다면 그것도 무척이나 기쁠 것 같다.” (p.227)


  소파에 드러누워 아직 반 너머 남은 휴일을 떠올리며 느긋하게 읽기에 좋았다. 사전 전문 서점에 대한 대목을 읽을 때 동생 녀석이 처음 들어갔던 체코어학과, 동생이 들고 왔던 정식 출판되지 않고 사본으로 존재하였던 체코어-영어 사전이 생각났다. 체코어-한국어 사전은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검색을 해보니 지금은 체코어-한국어 사전이 (딱 한 권이지만) 팔리고 있다. 사전 전문 서점이 가능할 수도 있겠다. 



김소연 / 나를 뺀 세상의 전부 / 마음의숲 / 261쪽 / 2019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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