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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Aug 08. 2024

유진목 《디스옥타비아: 2059 만들어진 세계》

미래를 향하여 열려 있는 어두운 회귀의 기록...

  옥타비아 버틀러는 미국의 SF 소설 작가이다. 이쪽 장르의 작가로는 드물게 (어쩌면 1947년생으로서는...) 여성이며 흑인이었다. 유진목은 책의 말미에 ‘맘 편한 비사교적 인물, 거대 도시에 사는 은둔자, 꼼꼼하지 못한 염세주의자, 페미니스트, 흑인, 전 침례교도, 야망, 게으름, 불안, 확신, 정열’이라는 키워드로 옥타비아 버틀러를 가리켰다. 옥타비아 버틀러는 2006년 사망했고, 우리나라에는 세 권 정도의 번역서가 있는데, 그 중 한 권인 《야생종》은 굉장히 비싼 값에 중고서적으로만 나와 있다.


  “... 창문 밖을 바라보는 것은 드물게 좋은 일이다. 그것은 이 삶을 통해 내가 알게 된 좋은 일들 중에 하나다... 나는 간절히 다른 것들에 깃들고 싶었다. 인간이 아닌 다른 것으로 다시 한 번 지구에 남고 싶었다.” (p.11)


  《디스옥타비아》는 옥타비아 버틀러를 염두에 두고 유진목에 쓴 소설에 가까운 글이다. 작가와 같은 나이인 1981년생의 모, 라는 인물이 2059년 현재 엘더라고 불리우는 센터에서 기록한 수기라고도 할 수 있다. 모는 옛날 노인들을 위하여 설립된 센터에서, 그 센터에 최적화되어 태어나고 양육된 요양사 율리에 간호를 받으며 지내고 있다. 그리고 모는 이제 죽음을 코앞에 두고 있다.


  “... 혼자 있을 때면 마지막 순간을 상상한다. 나는 곧 죽게 될 것이다. 죽음은 나에게 남은 가장 마지막 미래다. 마지막 순간을 떠올리면 나는 늘 바다에 있다. 모래는 따뜻하고 바닷속에 가라앉아 있을 때 더욱 부드럽다.” (p.19)


  《디스옥타비아》라는 제목의 기록은 기록된 순서와는 정반대로 실려 있다. Ⅱ에서 시작된 기록은 2059년 여름 8월 31일 일요일에서 7월 13일 일요일까지 거슬러 올라, Ⅰ로 마무리된다. 그러나 이런 역순의 기록이 큰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이 기록들에서 소설 속의 모는 저 먼 과거로 회귀하기를 반복한다. 모는 그 회귀의 기억 안에서 그를 소환해내고, 그를 소환해냄으로써만 현재를 살아내는 것 같다.


  “그는 일흔여덟 해를 살고 죽었다. 지금으로부터 18년 전의 일이다. 나는 올해 일흔여덟 살이 되었다. 우리는 스물네 해를 함께 살았다. 그와 함께 사는 동안에 나는 다시 혼자가 되어도 괜찮을 만큼 충분히 그와 함께 살 수 있기만을 바랐다. 나는 그가 죽어도 좋을 때까지 살아 있기를 원했다.” (p.54)


  소설 속의 그는 현실에서 유진목의 남편인 손문상이기도 할 것인데, 모와 그는 철저한 통제의 사회가 된 어느 시기쯤에서 그 사회를 벗어나 생활하다가 2041년 이별하였다. 모와 그가 살았던 사회, 모만 남은 사회는 디스토피아(그러니까 디스옥타비아와 dys, 불완전한 상태를 의미하는 어두를 공유하는 사회)가 되었고, 거기에서 인간은 죽음과 삶을 정복한 듯 그러나 유리된 듯 하다. 


  “... 삶은 어쨌든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인간이 바랄 수 있는 것만을 바랄 때 지속 가능한 것이다. 내가 인간으로 살아 있는 것을 잠시 멈추고 인간이 아닌 것으로 있기를 바랄 때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작가가 되는 것이었다. 작가는 인간으로 살아 있기를 멈추고, 인간이 아닌 다른 것이 될 수 있다...” (pp.104~105)


  ‘디스옥타비아’는 정돈되어 있는 듯 한 사회이지만 어둡고 쓸쓸하며, 일부는 오히려 혼란스럽고 때때로 고독해 보인다. 시인인 유진목이 다른 장르의 글도 꽤나 잘 쓰겠구나 넘겨 짚게 되며, 간간이 삽입되어 있는 백두리의 그림이 글의 톤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였다. 옥타비아 버틀러의 글이 궁금하여 일단 《블러드차일드》를 읽어보기로 작정했다. 유진목과 손문상 두 사람은 부산 영도에서 ‘손목서가’라는 책방을 운영하고 있다.



유진목 / 백두리 그림 / 디스옥타비아 : 2059 만들어진 세계 / 알마 / 167쪽 / 2017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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