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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Aug 08. 2024

최민영 《아무튼 발레》

그 재미를 부여잡고 허공으로 몸을 날리며...

  발레라니... 아무튼 시리즈를 읽으며 이렇게 저렇게 그들이 지극히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에 슬며시 기댈 수 있는 기억 한 자락쯤 뽑아낼 수 있었으나 발레라니... 영화 <빌리 엘리어트>도 온전히 처음부터 끝까지 관람해본 적이 없는데... 발레를 취미 삼아 한다던 친구가 있었지만 그녀도 다른 취미들은 악착같이 유지를 하였지만 발레는 소리소문 없이 그만두어버린 것 같던데... 아무튼, 발레...


  “오늘은 개강 첫날이고 발레 처음 배우는 분들도 계시니까 팔과 다리의 포지션을 자세히 설명 드릴게요. 다리는 1번부터 6번까지의 자세가 있어요... 그리고 팔 자세에도 규칙이 있어요. 발레에서 팔은 딱 정해진 곳으로만 움직여요. 아무 데나 팔이 막 돌아다니면 안 돼요.” (p.20)


  그래도 책이 읽히는 것을 보면 신기하다. 물론 발레의 각종 포지션을 설명할 때는 그저 글자만 눈으로 따라 읽을 뿐, 머릿속으로 선명해지는 영상 따위는 없다. 그럼에도 고군분투하는 글쓴이가 느끼는 여러 심경을 따라가다 보면 왠지 처연해진다. 배우려 작정하고, 그 작정을 행동으로 옮기고, 한번 행동으로 옮긴 것을 유지하려 애를 쓰고, 그러다 문득 재미를 느끼고, 그 재미를 부여잡고 다시 몸을 허공으로 날리는 일들이 그렇다.


  『... 발레를 배우고 싶은 남자 분이라면, 괜히 눈치보고 망설이지 않아도 좋다. 영국에서는 존 로우라는 90세 할아버지가 데뷔한 기록도 있다 그는 반평생 미술 교사로 살다가 일흔아홉 살에서야 가슴속에 숨겨놨던 발레의 꿈을 펼치기로 결심했고, 부단한 연습 끝에 11년 만에 무대에 올랐다고 한다. 그는 2009년 당시 인터뷰에서 “음악에 맞춰 발을 세워 몸을 높이 올리는 건 황홀한 경험”이라며 발레를 예찬했다.』 (p.26)


  읽다가 문득 나의 고양이 용이가 참 유연하였는데, 생각을 해서 더욱 그랬는지도 모른다. 앉아 있는 나를 향해 천천히 다가오다가 손을 뻗는 순간, 그 손에 닿을 듯 말 듯 하며, 그 아래로 스르륵 미끄러져 지나갈 때 참 유연하였는데... 그렇게 매정하게 지나치고 나서 몸은 반대편을 향한 채로 고개만 돌려 나를 바라볼 때 그 눈빛도 참 유연하였는데... 그래도 미안한지 다시 돌아오면서 슬쩍 내 무릎에 얼굴을 딱 한 번만 부비며 스윽 지나갈 때 참 유연하였는데...


  “... 미사여구나 조잡한 합리화로 눈가림을 할 수 있는 말이나 글과 달리 몸은 내가 연습한 딱 그만큼의 나를 거울처럼 그대로 보여주는데, 보기에 쉬워 보이는 것 중에 진짜로 쉬운 건 정말 많지 않은 법이다.” (p.100)


  온전히 제 몸의 단련으로, 군무일 때조차 각각의 개성에 의지하여, 둘일 때조차 최소한으로만 접촉하며 날아오르는 모양을 떠올려 본다. (아, 다시 고양이 용이가 생각나려고 한다. 최소한의 접촉만으로 나의 사랑을 앗아갔던, 최소한의 접촉만으로 자신의 사랑을 보여주었던...) 아무튼, 어제 한 후배는 복싱을 시작했다며, 그간 복싱을 무시해서 미안했다는 말을 했는데, 몸을 이용하는 많은 것들이 이렇게 사람들을 머리 숙이게 만들곤 한다. 


  “... 남의 움직임은 객관적으로 관찰하는 사람들도 대부분 자기 자신의 움직임에 대해서는 맹점이 있다. 자신의 장점은 높이 여기는 반면 단점은 잘 보지 못한다. 정도만 다를 뿐 누구나 갖는 나르시시즘의 영향일 것이다. 그 단점이 어디에서 기인하는지 스스로 직면하기 전까지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몸에서 힘을 빼지 못하는 내 문제도 적잖이 심리적인 데서 비롯된 것이었다. 부서질 듯 노력하고 몰입하는 삶은 익숙한 반면 적당히 힘 빼는 삶은 심리적으로 낯설었다. 그러니 몸에서 힘을 빼는 방법을 알 턱이 없었다.” (p.107)


  발레에 대한 책을 읽고 내가 무얼 쓸 수 있겠나 했는데, 딱히 그렇지도 않아 새삼스럽다. 힘 빼는 법을 모르는 데에 일가견이 있는 아내에게 들려줄 내용도 건질 수 있었다. ‘부서질 듯 노력하고 몰입하는 삶’이야말로 바로 아내의 삶인데, 어쩌면 거기에서 기인한 심리적인 낯섦이 아내에게서 힘 빼는 법을 빼앗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면 내가 그렇게 수월히 적당히 힘을 뺄 수 있었던 것은... 



최민영 / 아무튼, 발레 / 위고 / 147쪽 / 2018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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