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주에부는바람 Aug 08. 2024

서효인 박혜진 《읽을 것들은 이토록 쌓여가고》

앞서거니 뒤서기니 권하거나 권함을 받아서 읽는...

  소설가 J는 오랜 친구이다. 나는 서너 달에 한 번 정도 J에게 전화를 걸어 하나마나 한 이야기를 한참 떠들고 난 다음, 그건 그렇고 요즘 들어 읽은 것들 중 권할만한 책 없나? 라고 묻고는 한다. 내 책을 읽으시오, 하는 흰소리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J는 성심성의껏 대꾸를 해준다. 나는 J가 권한 책을 읽기도 하고 읽지 못하기도 하지만 어쨌든 책을 구매는 한다. 그러니까 이것은 신뢰의 문제이다. 


  “... 나는 소설을 읽을 때 어느 정도 진도를 밟으면 어김없이 마지막 페이지를 확인한다. 이 이야기가 어떻게 끝날지 찬찬히 살필 여유가 없는 급한 성격. 업무도 급하게, 독서도 급하게... 나는 소설에서 깜짝 놀랄 만한 반전을 기대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결말을 향하는 플롯의 걸음을 좋아한다고 해야 할까...” (p.30, 서효인) 


  서효인과 박혜진은 출판사의 같은 팀에서 일하는 동료 사이인데, 아마도 서효인이 팀장쯤, 박혜진은 팀원쯤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두 사람은 그들의 일을 공동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꽤 수평적으로 처리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두 사람이 같은 책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읽는 것만 보아도 이를 알 수 있다. 생각해보니 이 책과 같은 ‘읽어본다’ 시리즈를 쓴 부부들의 독서도 이렇게 겹치지는 않았던 것 같다. 


  “... 읽은 소설들이 모두 생각으로 연결되는 날은 기분이 좋다. 일을 잘한 것 같은 착각도 든다. 읽기가 일이기도 한 사람들에게 아무것도 얻는 게 없는 독서만큼 무서운 일도 없지.” (p.105, 박혜진)


  소설가 J를 제외한다면 사적으로 책을 소개받는 것은 까페 여름의 선배와 아내가 전부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까페 여름의 선배와 아내는 워낙 조심스러운 성격인 탓에 쉽사리 책을 소개하거나 하진 않는다. 두 사람이 소개한 책에는 실패가 없다. 선배는 내가 감내하는 허용치를 잘 알고 있고, 아내는 자신과 다르면서도 닮아 있는 나의 취향을 잘 알고 있다. 물론 이것도 신뢰의 문제이다.


  “그렇게 좋아하면서도 사노 요코가 언제 어떤 상황에서 이 이야기를(『100만 번 산 고양이』) 썼는지는 최근에야 알았다. 사노 요코는 남편의 죽음 이후에 이 동화를 썼다. 백만 번을 죽고 백만 번을 살아난 고양이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후 두 번 다시 살아나지 않아도 된다느 말이 더없이 사랑스럽다가 더없이 슬프다. 나보다 더 사랑하는 존재를 찾는 일. 인간은 자신이 사랑하는 존재의 수만큼 사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 존재를 찾아서 비틀비틀 걸어가는 게 인간의 삶이 아닐까 한다.” (p.111, 박혜진) 


  거슬러 올라가본다면 김현의 《행복한 책읽기》나 장정일의 ‘독서일기’를 통해 책을 소개받기도 하였을 것이다. 각종 계간지를 읽고 그 안에서 작가를 찾아 읽기도 하였다. 최근에는 ‘소설리스트’라는 사이트를 통해 책을 소개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제 그 페이지는 문을 닫았다. 지금은 간간이 페이스북에 등록된 이들이 올리는 책 소개를 유심히 들여다보곤 한다. 그리고 ‘읽어본다’ 시리즈는 내가 책을 수혈 받는 또 다른 루트이다.


  “작가에게 밀착해 보이는 소설의 인물들은 바로 그 이유로 독자에게도 거리를 좁히며 육박해들어온다. 대체로 실제 이름인 도시의 상호, 브랜드 들은 읽는 나를 거의 거기에 가져다놓았다. 거기서 만났거나 만나고 있거나 만날 예정인 인연들은 나를 거의 들었다 놓았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이렇게 말해보고 싶다. 김봉곤 작가는 사랑밖에 모른다. 사랑의 귀재다. 정분의 천재다. 『여름, 스피드』는 오로지 사랑을 말하고 탐하고 택하는 소설이라, 기억나지 않는 어느 페이지 몇째 줄에서부터 나 또한 사랑에 목마른 사람이 되고 말았다...” (p.376, 서효인)


  책을 소개 받는 것과는 별개로 시와 산문을 쓰는 서효인 그리고 평론과 산문을 쓰는 박혜진의 글은 깔끔해서 읽기에 좋다. 다른 이의 글을 읽고 토를 달아야 하는 편집자의 입장에서 자신의 글에도 나름 엄격할 수밖에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건 그렇고 책을 읽은 다음 가장 먼저 구매할 생각을 한 책은 김봉곤의 《여름, 스피드》 그리고 박형서의 《당신의 노후》였다.


서효인, 박혜진 / 읽을 것들은 이토록 쌓여가고 / 난다 / 399쪽 / 2018 (2018)

매거진의 이전글 김소연 《나를 뺀 세상의 전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