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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Jul 29. 2024

김금희 《크리스마스 타일》

번쩍거리는 크리스마스의 무채색 이면을 향하는 듯...

  「은하의 밤」

  유방암 수술을 받고 ‘고독의 힘으로 혼자 남미 여행’을 마치고 방송국으로 복직한 예능 작가 은하는, 억지춘향 보도국에서 예능국으로 밀려서 들어오게 된 오태만과 함께 파일럿 프로그램인 마망자들(마차는 언제 망가진 자들을 수거하로 오나의 줄임말)이라는 제목의 프로그램을 함께 만들게 된다. “... 은하가 교회도 다니세요? 하고 다시 묻자 할머니는 크리스마스 때만 간다고 대답했다. 그날이 주님 그 냥반 생일이라 기분이 좋은 그 냥반이 기도를 잘 들어줘서 간다고...” (p.55) 그러던 중 은하와 태만은 촬영 중 잠깐의 낙오를 겪고 은하는 한 할머니의 집에서 휴식을 취한다. 하지만 프로그램은 우여곡절 끝에 방송이 좌절되고, 세상에는 별별일이 다 있다.


  「데이, 이브닝, 나이트」

  “낮이고 주말도 아니었으므로 영화관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을 것이다. 스크린 빛이 일방향적으로 쏟아지는 가운데 어둡고 텅 빈 객석에 앉은 우리는 때로 우주를 표랑하는 사람처럼 막막하게 상상된다. 어쩌면 할머니는 정말 그런 기분이었을지도 모른다. 엄마가 나를 데리고 와 사정이 나아질 때까지만 부탁한다고 했을 때 종신형을 선고받은 기분이었다고 했으니까. 하지만 다시 취직한 아빠가―맡기고 나서는 코빼기도 비치지 않던―사년 만에 나를 되찾아갔을 때도 크게 다르지 않은 기분이었다고 했다. 그뒤로는 함께했던 시간들을 아쉬워하는 ‘그리움의 종신형’에 빠지게 되었으니까.” (pp.68~69) 작가의 문장들을 좋아한다. 그 문장에 혹하여 할머니가 그리운데 소설은 나의 현재를 붙든 경은 선배를 향하는 것 같은데, 또 들여다보면 실은 나와 함께 일하는 안미진에게로 방향을 틀고 앉아버리는 것도 같다.


  「월계동月溪洞 옥주」

  중국에서 어학연수를 하던 시기 옥주는 얼어죽을 위기의 자신을 구해준 예후이라는 중국 학생과 어울리게 된다. 옥주는 예후이를 별도의 중국어 선생으로 삼고, 다른 이를 소개하기도 하였으며, 급기야 윤슬 상훈 레이철 야콥 등과 함께 예후이의 고향 집에 놀러 가게 된다. 하지만 이들의 얽히고 설킨 관계는 무르익지 못하고, 나는 귀국 전 예후이의 기숙사 방 문고리에 피클을 걸어둔다. 그 전에 예후이는 중국에서 크리스마스를 기념하는 의미로 선물하는 사과를 옥주의 방 문고리에 걸어두었다. 


  「하바나 눈사람 클럽」

  “... 주찬성은 뒤를 힐끔 돌아보더니 이번에는 아예 뛰기 시작했다. 무엇으로부터, 누구로부터 뛰는지 과연 알고나 있었을까. 가끔 아주 높은 하늘에서 송정바닷가를 내려다보고 있는 어떤 시선을 상상해보곤 했다. 이를테면 별의 시점 같은 것. 그렇게 아득한 위치에서 내려다보면 그 한낮의 달리기는 얼마나 무구하게 그려질까 궁금해하면서.” (p.161) 학창 시절 목사님의 반듯한 아들이었고 공부 잘하는 모범생이었던 주찬성과 나는 어린 연애를 하였고 어느 순간 멀어져버렸다. 세월이 흐른 지금 나는 주찬성이라는 이를 소개받는데, 그 주찬성이 이 주찬성인지 드문드문 상상한다. 

 

  「첫눈으로」

  아직 입봉 전인 새끼 작가 소봄은 음식 사진만으로 음식점 이름을 맞힌다는 맛집 알파고, 라는 인물을 지민 피디 그리고 재형과 함께 찾아가 만난 적이 있다. 소봄은 맛집 알파고의 능력이 가진 허구 그리고 지민 피디와 맛집 알파고의 관계를 알고 있다. 소봄은 술을 잘 마시고 소봄의 부친도 술을 좋아하였으며 입봉을 하고 싶기도 하고 지민 피디와 은근한 유대감을 간직하고 있다.


  「당신 개 좀 안아봐도 될까요」

  세미는 설기라는 이름의 반려견을 잃은 이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그 회복의 방편으로 다른 이의 개를 만나기 시작한다. “이상하지. 당신 개 좀 보자고 해서 사람들을 만나면 자꾸 내 얘기를 듣게 돼. 나라는 인간이 분명해져.” (p.251)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싶기도 하고, 아마고 그럴 수 있겠다 싶기도 하다. 어떤 식으로든 회복에 도움이 될 것이다.


  「크리스마스에는」

  《크리스마스 타일》은 여러 개의 단편 소설이 타일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는 연작 소설집이다. 그래서 앞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크리스마스에는〉에 등장하고, 그중 맛집 알파고인 현우 그리고 이지민 피디가 주인공의 역할을 한다. “현우와 나는 대학의 문학 동아리에서 처음 만났고 예술적 재능이 딱히 없다는 이유로 급격히 친해졌다. 지금 생각하면 둘 다 예술을 하기에는 너무 천진하고 내면이 단순했는데, 왜 그런 동아리에 가입했는지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생각하면 또 자연스러웠다. 둘 다 옥주 언니에게 끌렸으니까.” (p.268) 두 사람은 옥주에게 끌려서 한 공간에 있게 되고 연애를 하지만 또 그래서 연애는 끝나게 되고, 세월이 흘러 다시 어색한 조우를 하게 된다. 〈크리스마스에는〉은 작가의 다른 소설집 《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에 실린 소설이기도 하다. 



김금희 / 크리스마스 타일 / 창비 / 309쪽 /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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