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발 하라리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쓸 데 없는 낙관을 버리고 쓸모 있는 비관으로 우리를 다그치다...

by 우주에부는바람

“... 대부분의 사람들은 21세기 초 자유주의 질서의 보호 아래 경험했던 것보다 더 큰 평화나 번영을 누려본 적이 없다.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전염병에 의한 사망자가 고령으로 인한 사망자보다 적었고, 기아로 숨진 사람이 비만으로 인한 사망자보다 적었으며, 폭력에 의한 사망자가 사고로 인한 사망자보다 적었다.

하지만 자유주의는 우리가 당면한 가장 큰 문제들에 대해서는 명확한 답이 없다. 생태학적 붕괴와 기술적 파괴라는 문제 말이다. 자유주의는 전통적으로 경제 성장에 의지해 어려운 사회적, 정치적 갈등을 마술처럼 해결했다. 자유주의가 프롤레타리아와 부르주아를 화해시키고, 신앙인과 무신론자, 토박이와 이민자, 유럽인과 아시아인까지 화해시킨 비결은 모두에게 파이의 몫을 더 키워주겠다는 약속이었다. 실제로 파이의 크기를 끊임없이 키워감으로써 그것이 가능했다. 하지만 경제 성장은 지구의 생태계를 구하지는 못할 것이다. 오히려 정반대로 경제 성장이야말로 생태학적 위기의 원인이다. 경제 성장은 기술적 파괴도 해결하지 못할 것이다. 경제 성장 자체가 점점 위력을 더해가는 파괴적 기술의 발명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pp.39~40)


《사피엔스》에서 《호모데우스》로 이어진 유발 하라리의 걸음이 이어진 것은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이다. 《사피엔스》가 과학을 기반으로 하고 있었다면 《호모데우스》는 과학과 인문학이 고루 반영된 결과물이었다. 그리고 이어진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은 과학과 인문학을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사회과학적이다. 앞선 두 권의 책을 통해 저자가 도달한 현재의 어떤 지점에 대한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수십 년 신경과학과 행동경제학 같은 분야에서 이룩한 연구를 통해 과학자들은 인간을 해킹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특히 인간의 의사 결정 과정에 대한 이해가 이전보다 훨씬 좋아졌다. 그 결과 음식부터 배우자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에 대한 우리의 선택이 어떤 신비로운 자유 의지가 아니라 아주 짧은 순간에 확률을 계산하는 수십억 개의 뉴런에서 비롯하는 것임을 알게 됐다. ‘인간의 직관’이라고 과시해온 것이 사실은 ‘패턴 인식’으로 드러난 것이다. 좋은 운전사, 은행원, 변호사라고 해서 교통이나 투자, 협상에 관한 마술적 직관이 있는 것이 아니라, 반복되는 패턴을 인식함으로써 부주의한 보행자나 부적격 대출자, 부정직한 사기꾼을 알아보고 피할 뿐이다. 또한 인간 두뇌의 생화학적 알고리즘도 완벽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 뇌는 어림짐작이나 손쉬운 방법, 그리고 현대의 도시 정글보다 아프리카 초원 시절에 맞춰진 시대착오적 신경회로에 의존한다. 좋은 운전사와 은행원, 변호사좌 때로는 멍청한 실수를 저지르는 게 당연하다.

이 말은 AI가 그동안 ‘직관’이 필요하다고 여겨져온 업무에서도 인간을 능가할 수 있다는 뜻이다. 만약 AI가 신비한 직감이라는 면에서 인간의 영혼과 경쟁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불가능하게 들린다. 하지만 AI가 확률 계산과 패턴 인식에서 실제로 인간의 신경망과 경쟁해야 한다면, 이는 그리 어렵지 않게 들린다.“ (pp.46~47)


책의 부제가(‘더 나은 오늘은 어떻게 가능한가’) 더 나은 ‘미래’가 아니라 더 나은 ‘오늘’을 가리키고 있는 것도 인상적이다. 저자가 누누이 밝히고 있는 바, 현대 과학의 발전 속도를 염두에 둔다면 책을 통해 저자가 지적하는 바를 도래할 ‘미래’의 일로 미룰 수 없다는 데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우리에게는 ‘오늘’과 ‘미래’가 다른 시대일 수 없다. ‘오늘’이 곧 ‘미래’일 수도 있다.


“개인의 느낌과 자유 선택에 대한 자유주의의 믿음은 자연적인 것도 아니고 그리 오래되지도 않았다. 수천 년 동안 사람들은, 권위는 인간의 마음보다는 신법神法에서 오는 것이며 따라서 우리는 인간의 자유보다 신의 말씀을 신성시해야 한다고 믿었다. 불과 지난 수 세기 동안 권위의 원천은 천상의 신에게서 피와 살을 가진 인간으로 이동했다.

조만간 권위는 다시 이동할지 모른다. 이번에는 인간에게서 알고리즘으로 말이다. 과거 신적 권위를 종교적 신화로 정당화한 것처럼 인간의 권위를 정당화한 것은 자유주의 이야기였다. 따라서 다가오는 기술 혁명은 빅데이터 알고리즘의 권위를 정당화하는 과정에서 바로 개인의 자유라는 생각의 기반을 위태롭게 할 수 있다.“ (p.85)


이를 위해 저자는 다섯 개의 카테고리를 두고, 거기에 딸린 스물한 개의 항목을 다루고 있다. ‘기술적 도전’에서는 ‘환멸, 일, 자유, 평등’을, ‘정치적 도전’에서는 ‘공동체, 문명, 민족주의, 종교, 이민’을, ‘절망과 희망’이라는 제목 아래에서는 ‘테러리즘, 전쟁, 겸손, 신, 세속주의’를, ‘진실’이라는 제목 아래에서는 ‘무지, 정의, 탈진실, 공상과학 소설’을, ‘회복탄력성’이라는 마지막 카테고리에서는 ‘교육, 의미, 명상’이 그것들이다.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위험은 디지털 독재만이 아니다. 자유주의 질서는 자유와 더불어 평등의 가치도 중시해왔다. 자유주의는 늘 정치적 평등을 소중히 여겨왔을 뿐 아니라, 경제적 평등 또한 중요하다는 사실을 조금씩 깨닫게 되었다. 사회 안전망 없이 쥐꼬리만한 경제적 평등만 가지고서는 자유도 의미가 없다. 하지만 빅데이터 알고리즘은 자유를 없앨 수 있는 것과 같이 유례없는 최고의 불평등 사회를 만들 수도 있다. 모든 부와 권력은 극소수 엘리트의 손에 집중되는 반면, 대다수 사람들은 착취의 대상으로 전락하는 정도가 아니라 그보다 훨씬 나쁜 처지에 놓일 수 있다. 바로 사회와의 관련성을 잃는 것이다.” (p.122)


이렇게 해서 유발 하라리의 ‘인류 3부작’이라고 불리는 세 권의 책을 모두 보았다. 유발 하라리의 전방위적인 관심사와 그것을 자신의 생각에 열을 맞춰 꿰는 능력은 훌륭하기 그지없다. 저자가 다루고 있는 많은 역사적 발견들과 과학적 사실들이 무에서 창조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발견과 사실들이 유발 하라리의 손을 거치면서 좀더 의미있는 대중적 저서의 재료들이 될 수 있었다.


“... 1,000명의 사람이 어떤 조작된 이야기를 한 달 동안 믿으면 그것은 가짜 뉴스다. 반면에 10억 명의 사람이 1,000년 동안 믿으면 그것은 종교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가짜 뉴스’라고 불러서는 안 된다는 충고를 들어왔다. 신도들의 감정을 자극(하거나 분노를 촉발)하지 않기 위해서다. 그렇다면 지금 나는 종교의 효과나 그것이 품고 있는 자애로움의 가능성을 ㅂ인하는 것이 아니다. 정반대다. 좋든 나쁘든 허구는 인류가 가진 도구들 중에서 가장 효과적인 것에 속한다. 종교적 신념을 통해 사람들을 한데 뭉치고 대규모 협력을 끌어낼 수 있다. 그 결과 사람들은 군대와 감옥은 물론 병원과 학교, 다리도 지을 수 있다. 아담과 이브는 결코 존재한 적이 없지만 그래도 샤르트르 대성당은 여전히 아름답다...” (p.351)


게다가 저자의 문장이 가지는 힘이 만만치 않다. 과학을 다루고 있음에도 적절한 은유와 비유가 곳곳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그의 이 두터운 세 권의 책이 대중적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것은 많은 부분 이 문장의 힘으로부터 비롯되었다. 또한 두 번째 책 《호모데우스》의 일부 부분이 《사피엔스》에 기대고 있고, 세 번째 책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이 앞의 두 책에 대한 요약본 같은 느낌이 있지만 그렇다고 장점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쓸모 있는 비관이 가득한 가운데 쓸 데 없는 낙관을 배제하면서도 우리를 다그친다.



유발 하라리 Yuval Noah Harari / 전병근 역 /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 더 나은 오늘은 어떻게 가능한가 (21 Lessons for the 21st Century) / 김영사 / 571쪽 / 2018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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