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니아 슐리 《글쓰는 여자의 공간》

서른 다섯 명의 여성 작가들이 가졌던 글쓰기의 공간들...

by 우주에부는바람

도로시 파커, 프랑수아즈 사강, 엘리자베스 보엔, 크리스타 볼프, 거트루드 스타인 한나 아렌트, 시몬 드 보부아르, 잉에보르크 바흐만, 엘프리데 옐리네크, 엘사 모란테, 제인 오스틴, 샬럿 브론테, 실비아 플라스, 토니 모리슨, 셀마 라겔르뢰프, 카렌 블릭센, 마르그리트 뒤라스,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카슨 매컬러슨, 수전 손택, 나탈리 사로트, 메리 매카시, 캐서린 앤 포터, 안네마리 슈바르첸바흐,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 앨리스 워커, 버지니아 울프, 이사벨 아옌데,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나딘 고디머, 사도니가브리엘 콜레트, 니콜 크라우스, 조르주 상드, 해리엇 비처 스토, 애거사 크리스티... 책에서 다뤄지고 있는 서른다섯 명의 여성 작가이다.


『처음 글을 썼을 때 보엔은 줄이 그어져 있는 종이에 만년필로 쓰다가 나중에는 타자기를 이용했다. 그녀가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글을 쓰기 위한 적당한 분위기였다. “의자가 바닥 위에서 불안스럽게 삐걱거리는 소리”, 집밖에서 들려오는 소음, 냄새······ 그녀는 글쓰기에 필요한 이 요소들을 일컬어 “내가 환각의 세계로 들어서는 것을 목격할 감각적 증인들”이라고 표현했다. 1950년에는 글을 쓸 때 자욱한 담배 연기, 핑크색 종이, 레몬수 한 잔이 필요하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차는 마시지 않았다. 찻잔과 받침대가 부딪히면서 나는 달그닥거리는 소리를 거슬려했기 때문이다.』 (pp.48~49, <엘리자베스 보엔> 중)


도로시 파커는 1937년 영화 <스타 탄생>의 극본을 썼다. 시인이자 소설가이자 평론가이기도 했다. 프랑수아즈 사강은 얇은 장편 소설 《슬픔이여 안녕》을 1954년에 출간했다. 엘리자베스 보엔은 영국계 아일랜드인이었으며 《보엔의 저택》이 1942년에 출간되었다. 크리스타 볼프는 동독 출신의 작가이다. 《카산드라》와 《나누어진 하늘》을 썼다. 거트루드 스타인은 아방가르드 화가들의 후원자이자 발굴자로 유명하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나면 그림으로 둘러싸인 자신의 방의 커다란 목재 테이블에서 글을 썼다. 한나 아렌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썼다. 그녀의 책상 위에는 세 장의 사진이 액자에 끼워져 존재했다. 남편과 스승 하이데거, 그리고 어머니 사진이었다. 시몬 드 보부아르는 장 폴 사르트르와 결혼하지 않고 부부 관계를 지속했다. 1949년 《제2의 성》을 발표했다.


『크리스타 볼프에게는 글쓰기와 관련해 꼭 치러야 하는 나름의 의식이 있었다. 그 의식에서 장소나 분위기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글을 쓰는 날짜였다. 볼프는 1960년부터 매년 9월 27일이 되면 일기를 썼다. 일기장에 세세히 적어간 그 내용이란, 9월 27일에 일어났던 작은 일들이었다. 볼프는 매년 자발적으로 행하는 이 일에 ‘중독’되어 있었다. 사망하기 몇 주 전에도, 그녀는 이미 흐려진 필체로 병상에 누워 마지막 일기를 썼다. 사망하기 전해인 2010년에는 다음과 같이 일기에 적었다. “글을 쓸 수 없게 된다고 해서 서러워하지는 않을 것이다.”』 (p.51, <크리스타 볼프> 중)


잉에보르크 바흐만은 《삼십세》와 《동시에》를 썼다. 엘프리데 옐리네크는 《피아노 치는 여자》의 작가이다. 엘사 모란테는 열여덟 살에 집을 나와 글을 쓰기 시작했고, 1974년에 장편소설 《역사》를 발표했다. 제인 오스틴은 《오만과 편견》의 작가이다. 샬럿 브론테는 브론테 자매 중 첫째이다. 1847년 《제인 에어》를 썼다. 실비아 플라스는 빅토리아 루카스라는 필명으로 소설 《벨 자》를 출간하고 한 달 뒤, 오븐에 머리를 집어 넣어 자살했다. 토니 모리슨은 1970년 첫 번째 장편소설 《가장 푸른 눈》을 출간했다. 셀마 라게를뢰프는 《닐스의 신기한 여행》을 쓴 스웨덴 작가이다. 카렌 블릭센은 《아웃 오브 아프리카》를 독일에서는 타니아 블릭센이라는 필명으로 미국에서는 아이작 디넨센이라는 필명으로 발표했다.


“보부아르는 개인의 자유를 최고의 덕목으로 여기며 평범한 지식인의 삶을 살려고 했다. 그녀는 공공장소를 주된 생활공간으로 삼았으며, 카페에 앉아 책을 쓰거나 식사를 하고 친구들을 만났다. 물론 독일군이 파리를 점령했던 시절이라 카페가 집보다 난방 시설이 좋기도 했지만, 단지 그런 이유 때문에 카페를 즐겨 찾은 것은 아니었다. 보부아르는 일생 동안 일체의 가정사를 거부한 여성으로, 요리를 비롯한 살림살이도 하지 않았다. 가사야말로 여자들의 자유와 삶, 글쓰기를 방해하는 덫이라고 여긴 것이다.

그녀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여자 역시 사정이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부유층에겐 딸이 자신들의 신분에 어울리는 남자와 혼인하는 게 상당히 중요한 사안이었다. 부유층의 끝없는 사회적 의무와 파티, 만찬, 바깥나들이 따위는 그녀가 보기엔 죽음처럼 지루한 시간 낭비였을 것이다. 보부아르는 차라리 카페에 나와 앉아서 세상을 관차하기로 했다.“ (pp.78~80, <시몬 드 보부아르> 중)


마르그리트 뒤라스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소설 《연인》을 썼다. 퍼트리샤 하이스미스는 영화 <태양은 가득히>의 원저인 《재능 있는 리플리》를 썼다. 그녀의 첫 소설이었다. 카슨 매컬러스는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 《슬픈 카페의 노래》를 썼다. 수전 손택은 발터 벤야민, 장 폴 사르트트, 롤랑 바르트 등을 미국에 소개했다. 《은유로서의 질병》을 썼다. 나탈리 사로트 러시아어, 프랑스어, 독일어를 섞어 쓰며 방랑했고 프랑스 누보로망의 토대를 마련했다. 메리 매카시는 장편소설 《그룹》을 남겼다. 캐서린 앤 포터의 대표작은 1962년에 출간된 《바보들의 배》다. 안네마리 슈바르첸바흐에게서 여행과 글쓰기는 서로 떼어놓을 수 없다.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는 캐나다 국경 인근 마운트데저트 섬에 집을 마련하고 그곳에서 20년 전에 쓰다 만 원고를 다시 펼쳐놓고 《하드리아누스 항제의 회상록》을 완성했다. 앨리스 워커는 1930년대 미국 남부 여성들의 고통을 고발한 《더 컬러 퍼플》을 썼다.


“하이스미스는 첫 소설 『재능 있는 리플리』의 원고를 75쪽까지 쓰고 나서 팽개쳐버렸다. 내용이 너무 평이하다는 게 이유였다. 그녀는 ‘의자의 끄트머리에’ 앉아 원고를 다시 쓰기 시작했다. 작가 자신부터 불안과 긴장을 유지한 채로 글을 씀으로써 소설과 소설 속 주인공에도 불안과 긴장을 불어넣기 위해서였다. 살인 행위를 묘사하고 영혼의 심연을 샅샅이 비추려면 작가도 그에 상응하는 불편한 환경에서 글을 써야 한다는 생각이었는지도 모른다.” (p.155,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중)


버지니아 울프는 《댈러웨이 부인》의 작가이다. 코트 주머니에 돌을 가득 넣고 집 앞의 강에 뛰어들었다. 이사벨 아옌데는 《영호의 집》의 작가이다. 아스트린드 린드그렌은 다리를 다쳐 병상에 눕게 되자, 오래전 딸에게 들려주었던 이야기를 글로 쓰기 시작했다. 《삐삐 롱스타킹》이었다. 나딘 고디머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으로 부커상을 그리고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시도니가브리엘 콜레트는 《클로딘 이야기》로 데뷔했다. 니콜 크라우스는 《사랑의 역사》라는 첫 번째 소설을 썼다. 조르주 상드의 연인으로는 알프레드 드 뮈세, 프란츠 리스트, 프레데리크 쇼팽 귀스타브 플로베르 등이 있었으며, 180권의 책과 1만 5000장의 편지를 남겼다. 해리엇 비처 스토는 《톰 아저씨의 오두막》을 미국 메인 주 프러즈윅에 있는 대저택에서 썼다. 애거사 크리스티는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글을 쓸 수 있었다. 《오리엔트 특급 살인》을 비롯한 70여 편의 장편소설을 썼다.



타니아 슐리 Tania Schlie / 남기철 역 / 글쓰는 여자의 공간 : 그녀들을 글쓰기로 몰아붙인 창작의 무대들 (Wo Frauen Ihere Bücher Schreiben) / 이봄 / 287쪽 / 2016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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