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답안에 기뻐하고 여러 질문에 쩔쩔 매면서...
십수 년 전쯤, 그 해의 마지막 날, 나는 건강검진을 받으러 병원을 찾았다. 나는 작은 회사를 운영하며 이런저런 골치 아픈 일들로 초주검이 되어 있는 상태였다. 차일피일 미루다 그 해의 마지막 날이 되어서야 병원을 찾은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그 날도 아침부터 결제를 독촉하는 전화를 받았고, 그 날은 직원들에게 월급을 지급해야 하는 날이기도 했다. 수면 내시경을 받으러 들어가기 직전까지 나는 융통이 가능한 돈과 지출되어야 하는 돈 사이에는 하늘과 땅만큼이나 큰 간극이 있다는 사실에 크게 좌절하고 있었다.
“... 과학자들은 식물인간처럼 보이는 뇌졸중 환자가 의식을 완전히 잃었는지, 아니면 단지 몸과 언어를 통제하는 능력을 잃었을 뿐인지 알아낼 수 있다. 그 환자의 뇌가 의식의 분명한 특징들을 내보이면, 그는 움직이거나 말할 수 없어도 의식이 있는 것이다. 최근 의사들은 기능자기공명영상을 이용해 그런 환자들과 의사소통하는 데 성공했다. 의사들은 환자들에게 예/아니오로 답해야 하는 질문들을 하고, 답이 ‘예’이면 테니스 치는 상상을 하게 하고, ‘아니오’이면 자기 집이 있는 곳을 떠올리게 했다. 그런 다음 환자들이 테니스 치는 상상을 할 때는(‘예’라는 의미) 운동피질이 활성화하는 반면, ‘아니오’라고 생각할 때는 공간기억에 관여하는 뇌 부위들이 활성화되는 것을 관찰할 수 있었다.” (p.170)
하지만 내 위를 발칵 뒤집는 내시경 검사가 끝나고, 아직 온전한 정신으로 돌아오지 못한 그 순간, 나는 내 의식에 생각할 수도 없는 격변이 일어났음을 감지했다. 몇 십 분 전까지 나를 괴롭히던 문제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지만 나는 비어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있었다. 분명 그 문제들은 그대로인데 나는 그 문제들을 전혀 문제로 인식하지 않고 있었다. 돈이 없는데 그래서 뭐? 나가야 하는 돈이 있는데 그래서 뭐? 기분이 이렇게 좋은데 뭐가 문제야? 이런 심정이 되어 있었다. 그 기분은 그 해의 마지막 날 동안 계속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텔레비전의 뉴스를 통해 프로포플이라는 약물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검사를 위해 수면에 들어가기 직전 주사기에 들어 있던 그 흰색의 약물에 대해...
"... 인간이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얻으면서, 윤리적 지식을 획득하는 새로운 공식이 등장한 것이다. 바로 지식=경험X감수성이다. 만일 당신이 어떤 윤리적 질문에 대한 답을 얻고자 한다면, 내면의 경험을 꺼내 예리한 감수성으로 관찰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하기 위해, 지식을 추구하는 우리는 수년간 경험을 쌓고, 그 경험들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도록 감수성을 갈고 닦는다.
그런데 ‘경험’이란 정확히 무엇을 말할까? 경험적 데이터는 아니다. 경험은 원자, 전자기파, 단백질, 숫자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 경험은 세 가지 주요 성분인 감각, 감정, 생각으로 이루어진 주관적 현상이다. 특정 순간의 내 경험은 내가 감각하는 모든 것(열, 쾌락, 긴장 등), 내가 느끼는 모든 감정(사랑, 두려움, 분노 등), 내 마음속에 떠오른 모든 생각으로 구성된다.
그러면 ‘감수성’은 무엇일까? 두 가지를 뜻한다. 첫째는 감각, 감정, 생각에 주목하는 것이다. 둘째는 그 감각, 감정, 생각이 나에게 미치는 영향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물론 지나가는 모든 산들바람에 흐늘려선 안 된다. 그러나 새로운 경험에 항상 열려 있어야 하고, 그 경험들로 인해 내 견해와 행동은 물론 성격에 일어나는 변화까지 받아들여야 한다.
경험과 감수성은 끝없는 고리로 이어져 서로를 강화한다. 감수성 없이는 어떤 것을 경험할 수 없고, 다양한 경험을 하지 않으면 감수성을 개발할 수 없다. 감수성은 책을 읽거나 강의를 들어서 키울 수 있는 추상적인 소질이 아니다. 그것은 실제로 사용해야만 무르익고 성숙하는 실용적 기술이다.“ (pp.328~329)
그 일이 있은 다음 해의 봄이었을 것이다. 그때까지도 회사의 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고, 나는 회사의 미래에 대해 이 사람 저 사람의 눈치를 보느라, 몇 달째 가라앉은 기분으로 안절부절 하는 중이었다. 정신과를 찾아갈 생각을 했으나 거기에 소요되는 비용조차 내게는 버거웠다. 그러던 어느 날 오래된 친구가 사무실을 찾아왔다. 내 하소연을 한참 듣고 있던 친구는 잠시 눈을 껌벅이더니 이렇게 말했다. 어쨌든 이 배의 선장은 너 같은데? 그러니 네 마음대로 해버려, 그리고 책임지면 되지. 지극히 뻔하고 뻔뻔하기도 한 말이었는데, 갑자기 마음이 편해져버렸다. 프로포플은 없었지만, 그때와 비슷한 평온의 상태가 되었다.
“21세기의 신기술들은 이렇게 인본주의 혁명을 뒤집어, 인간에게서 권한을 박탈하고 비인간 알고리즘들의 권한을 강화할 것이다. 이런 변화가 끔찍하다 해도 컴퓨터 괴짜들을 탓하지 마라. 진짜 책임은 생물학자들에게 있으니까. 컴퓨터 과학이 아니라 생물학적 통찰이 이런 추세를 추동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도 중요하다. 유기체가 알고리즘이라는 결론을 내린 것은 생명과학이다. 그렇지 않다면(유기체가 알고리즘과 원칙적으로 다른 방식으로 기능한다면) 컴퓨터가 다른 분야에서 아무리 놀라운 기적을 일으켜도 우리 인간을 이해하거나 우리의 인생을 이끌 수는 없을 것이며, 우리와 융합할 수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생물학자들이 유기체는 알고리즘이라고 결론을 내린 순간, 유기물과 무기물 사이의 벽이 허물어지고, 컴퓨터 혁명이 순수한 기계적 사건에서 생물학적 격변으로 바뀌고, 권한이 개인에게서 네트워크로 연결된 알고리즘들에게로 이동했다.” (pp.472~473)
책을 읽는 동안 저 두 가지 상반된 일화가 떠올랐다. 저자는 인간이 알고리즘으로 이루어진 유기체일 뿐이다, 라는 현대 과학이 도달한 어떤 결론에 대해 자주 거론한다. 나는 내게 일어난 첫 번째 일화 속의 급변을 잘 기억하고 있으므로 그러한 결론에 크게 거역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두 번째 일화 속의 급변 또한 기억하고 있으므로, 그러한 결론에 소소하나마 반역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 우리가 생명이라는 실로 장대한 관점으로 본다면, 상호 관련된 다음의 세 과정 앞에서 다른 모든 문제와 상황들은 작게 보일 것이다.
1. 과학은 모든 것을 아우르는 하나의 교의로 수렴하고 있고, 이 교의에 따르면 유기체는 알고리즘이며 생명은 데이터 처리 과정이다.
2. 지능이 의식에서 분리되고 있다.
3. 의식은 없지만 지능이 매우 높은 알고리즘들이 곧 우리보다 우리 자신을 더 잘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세 과정은 세 가지 중요한 질문을 제기한다. 당신이 이 책을 덮은 뒤에도 이 질문들이 오랫동안 당신의 마음속에 남아 있기를 바란다.
1. 유기체는 단지 알고리즘이고, 생명은 실제로 데이터 처리 과정에 불과할까?
2. 지능과 의식 중에 무엇이 더 가치 있을까?
3. 의식은 없지만 지능이 매우 높은 알고리즘이 우리보다 우리 자신을 더 잘 알게 되면 사회, 정치, 일상에 어떤 일이 일어날까?』 (p.544)
유발 하라리의 해박한 지식과 그 지식들을 연결하는 통찰 그리고 그 통찰을 통해 우리에게 던지는 물음들의 유려함은 《사피엔스》에 이어 《호모 데우스》에서도 여전하다. 책을 읽는 동안 그간 내가 품고 있던 나와 세계를 향하는 질문들에 대응한다고 할 수 있는 여러 답안들을 제시받으며 기뻐하기도 하고, 생각지도 못했던 장르의 색다른 질문지를 받아들고는 쩔쩔매기도 하였다. 어쨌든 이런 유형의 글을 이처럼 간편하게(라고 생각될만큼) 쉬이 써내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경이롭다.
유발 하라리 Yuval Noah Harari / 김명주 역 / 호모 데우스 : 미래의 역사 (Homo Deus) / 김영사 / 620쪽 / 2017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