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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Jul 29. 2024

김중혁 《딜리터 : 사라지게 해드립니다》

서로 다른 그러나 모두 좋은 레이어를 위하여...

  “딜리터deleter들이 마음만 먹으면 천지창조도 없었던 걸로 할 수 있다. 파괴는 창조보다 자연스럽고, 만드는 것보다 부수는 게 훨씬 쉽다. 그리는 것보다 지우는 일이 간단하다. 하느님과 인간이 거대한 대결을 벌이는 장면을 상상해보자. 우주의 한쪽에서 하느님은 계속 만들어내고 인간들이 그 뒤를 쫓아가면서 지워나가는 시합을 벌인다면, 하느님은 금방 따라잡힐 것이다. 하느님이라도 별수없다. 지우는 건 인간들이 최고다. 지구가 그 증거다. 나무와 풀과 온갖 생명체가 끊임없이 생겨나지만 얼마 가지 못하고 지워진다. 지우는 걸 최고로 잘하는 인간들 중에서도 가장 잘 지우는 사람들이 바로 딜리터들이다.” (p.9, 『딜리터 묵시록』 중)


  제목인 딜리터, 는 딜리팅 능력을 가진 사람을 의미한다. ‘딜리터 : 사라지게 해드립니다’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딜리팅이란 무언가를 사라지게 만드는 능력을 의미하는데 책의 서두에 놓인 《딜리터 묵시록》에 표현대로라면 일종의 블랙 유머라고 생각해볼 수 있다. 그러니까 지구에서 인간이 버리고 있는 수많은 딜리팅을 보자면 인간 자체가 딜러터 아니겠느냐 하는... 


  “그들의 우두머리가 될 수 있는 사람은 선택받은 ‘픽트로’입니다. 픽토르는 화가라는 뜻인데, 여러 가지 세계를 한꺼번에 보는 겁니다. 행동하는 사람이 아니고 보는 사람이 리더가 되는 겁니다. 소우주도 보고, 대우주도보고, 위도 아래도 다 보는 사람, 그걸 다 그려낼 수 있는 사람...” (p.54) 


  하지만 소설이 진행되고 나면 《딜리터 묵시록》에 등장하는 블랙 유머는 시나브로 사라진다. 딜리터 강치우에 이어 픽토르인 조이수가 등장하면서 세계관은 확장되고, 사라진 소하윤과 강치우의 관계가 드러나면서 사랑 이야기가 가미되며, 소하윤의 가족과 함동수 사이의 악연으로 운명론이 첨가된다. 여기에 더스트맨과 배수연 그리고 오재도 형사는 강치우와 조이수의 반대편에서 대결 구도를 만들어간다. 


  “이 년 전 조이수는 자신의 능력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를 찾아냈다. 현실의 물건을 다른 레이어로 옮길 수 있는 사람이 있다고 들었다. 그런 능력을 지는 사람을 ‘딜리터’라고 부른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조이수는 딜리터라는 이름이 의아했다. 현실의 물건을 다른 레이어로 옮기는 것은 지우는 일이 아니었다. 딜리터라는 이름은 여분 레이어를 볼 수 없는 일반적인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다. 현실의 레이어만 볼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지워진 것일 테지만 조이수에게는 다른 레이어로 물체가 이동한 것일 뿐이다...” (pp.107~108)


  딜리터인 강치우와 짝을 이뤄 소설을 이끌어가는 조이수가 여러 세상을 동시에 살피면서 그 세상 하나하나를 부르는 레이어, 라는 개념은 재미있다. 작가가 소설가라는 직업 이전에 웹 디자인을 했다는 경력 사항을 읽은 적이 있는데, 포토샵이라는 툴에서 가징 기본이 되는 레이어, 라는 개념이 이렇게 은근슬쩍 소설로 넘어온 것이 아닌가 싶다. 작가의 일러스트를 어디선가 본 적도 있다. 


  “삼 년 전에 우연히 한 사람을 알게 됐어요. 그 사람은 내가 딜리터라는 걸 알고 있었고, 이것저것 물어보더니 책 한 권을 건네줬어요. 거기에 딜리팅의 방법이 적혀 있었어요. 딜리팅의 진짜 의미는 물건을 사라지게 하는 게 아니라 사람을 다른 차원으로 옮기는 거라고 적혀 있었어요. 간단한 일이 아니었어요. 딜리팅을 위해서는 대상자의 이야기를 모두 들어야 해요. 그 모든 이야기를 알고, 그 사람이 어떤 상태인지 정확하게 알고, 그 사람에게 완전히 감정이입한 다음에야 겨우 시작할 수 있는 작업이었죠.” (pp.127~128)


  여하튼 김중혁은 그간 경계를 무시하는 상상력과 적절한 치밀함으로 대중적이면서도 밀도 높은 작품을 써왔다. 선을 넘지 않는, 이 아니라 되도록 선을 넘는, 그러다가 선을 무시하는, 에 이른 작가는 《딜리터 : 사라지게 해드립니다》라는 장르 소설에 다다른 것이다. 다만 이 소설을 어떤 장르에 놓을 수 있느냐 라고 하면 그건 또 애매해지고 만다. 미스터리? 형사물? 판타지? 어느 하나로 규정하기 힘들다.


  “...사람들이 인쇄 오류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많았지만, 출판사의 양자인 대표도 극구 반대했지만, 최근 소설 『캥거루』의 마지막 문장에서, 강치우는 마침표를 빼버렸다.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가능성들을 열어두고 싶어서” (p.291)


  독자로서 나는 이제, 갇히지 않으려 애쓰며 항상 열려 있는 상태로 끊임없이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것도, 또는 다른 데 한눈팔지 않고 정진하고자 하는 길에서 끝끝내 벗어나지 않는 것도 모두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서로 다른 태도인 듯하지만 이 둘은 문학이라는 툴의 서로 다른 레이어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레이어가 더 좋다고 단언할 필요가 없다. 서로 다른 그러나 모두 좋은 레이어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김중혁 / 딜리터 : 사라지게 해드립니다 / 자이언트북스 / 294쪽 /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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