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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Jul 29. 2024

박지영 《고독사 워크숍》

고독사들의 連帶를 위하여 진행되는 고독사 워크숍의 年代記...

  “고독사 워크숍은 어디까지나 오늘날 확대되고 있는 1인 가구 생활자들, 혼자 일하고 혼자 놀고 혼자 사랑하다 필연적으로 혼자 죽음을 맞이하게 될 고독사 예비군들에게 근거 없는 희망을 주는 대신 피할 수 없는 고독사의 시대에 워크숍을 통해 최적화된 고독사의 형태를 찾고 자신만의 고독사 매뉴얼을 준비하는 데 도움을 주고자 기획되었다. 또한 워크숍 참가자들은 온라인 ’심야코인세탁소‘에 가입, 각자의 고독 채널을 만들어 매일 오늘의 부고를 업로드하고 고독사 워크북을 함께 제작하면서 개인의 고독사 연대기(年代記)가 곧 공동체의 고독사 연대기(連帶記)임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워크숍은 참가자들에게 선택적으로 제공된 고독사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진행되며 우리는 매일 아침 당신의 부고를 기다린다. 이미 죽은 하루는 다만 무용함을 위해 흘러갈 것이다. 하루 세 번 시시한 일을 수행함으로써 당신은 매일 더 시시한 인간이 되는 명랑을 누릴 것이며, 언제 자리를 비우더라도 가족과 소속된 세계 안에서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도록 증발할 수 있다는 다행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내일도 죽은 채 시작할 수 있다는 기대감은 숙면을 도울 것이고, 당신 곁에 영원히 남는 것은 1인분의 고독뿐이라는 유쾌한 진실 안에서 오롯한 고독과 즐거이 자유하게 될 것이다.” (pp.27~28, 발제문 중)


  위키백과에 따르면 ’고독사(孤獨死)‘란 ’주로 혼자 사는 사람이 돌발적인 질병 등으로 사망하는 것‘을 말한다. 죽음의 종류나 형태가 아니라 죽음의 주체가 맺지 못하는 연대(連帶)에 그 초점이 맞춰져 있다. 책의 서두 부분에서 ’고독사 워크숍‘을 진행하기에 앞서 발제문이라는 형태로 ’고독사 워크숍‘을 설명하고 있는데, 위의 문단은 그 중 일부분으로, 발췌하여 옮겨 적어 놓았다. 역시 ’고독사 연대기(連帶記)‘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 참가자들이 원하는 건 다만 자신의 고독사를 목격해 줄 제삼자일 뿐이에요. 고독이란 바깥의 시선,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곳에서 그저 ’있을‘ 뿐인 외부의 응시를 늘 필요로 하니까요. 무언가 도우려 하지 마세요. 그냥 외면하지 말고 똑바로 목격만 하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우리가 하려는 건 고독한 개인들이 각자의 고독사 크리에이터로 성장하도록 지지하는 거니까요. 우리는 참가자들이 각자의 방에서 송출하는 고독의 신호를 모아 고독 채널을 통해 재송출해 주는 역할만 하는 겁니다. 오 대리는 다소 둔감한 척, 담대하게, 자명한 것을 자명하지 않도록, 그 세 가지 태도만 견지하면 되는 겁니다.” (pp.84~85)


  소설은 한 개의 오리엔테이션 챕터 그리고 열두 개의 고독사 워크숍 챕터로 채워져 있다. 각각의 챕터는 고독사 워크숍에 참가하는 사람들의 배경을 앞에서 다루고 고독사 워크숍을 진행하는 주최 측이 고독사 워크숍이 갖는 시시한 의의(?) 혹은 고독사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될만한 하찮은 시선(?) 등을 뒤에 첨가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독서 중에 시선이 가는 부분에 포스트잇을 붙여 놓곤 하는데, 주로 뒷부분에 포스트잇을 많이 붙여 놓은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 사실 고독사 워크숍을 준비하면서 대단히 존엄하고 고결하고 우아한 고독사를 완성하겠다는 꿈이야말로 부장님식 농담에 지나지 않았다. 우리가 꿈꿀 수 있는 가장 거창한 고독사란 최대한 하찮게, 고요하게, 누구에게도 슬픔과 죄책감을 안기지 않고 애초에 없었던 것처럼 자연사로서 고독사를 맞이하는 것뿐일 터였다. 그것이 조 부장의 고독사 워크숍이 지향하는 최선의 고독사였다.” (p.115)


  어쩌면 아직은 고독사, 라는 죽음의 형태를 대함에 있어 객관적인 거리감을 가질 만큼의 여유를 내가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인지 모르겠다. 그러니까 고독사 워크숍에 참가하는 사람들이 제공하는 사연에 집중하기보다는 그 사연이라는 거름망을 통과한 후에 순수하게 남은 ’고독사‘라는 추상적인 개념에 좀더 시선을 보내고 있다는 반증이다. 나는 아직 ’고독사 워크숍‘에 참가해야 할 단계는 아니야, 하는 스스로를 향한 위무가 그 배경이다. 


  “... 이수연은 자신이 전규석에 대해 아는 게 없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5개월의 짧은 연애를 했고 4년간의 결혼 생활을 이어 오고 있었다. 대단히 행복한 결혼 생활은 아니었지만 평온하고 안정된 관계였다. 그가 갑자기 고독사를 준비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어야 했다. 그러나 알 거 같아서, 그냥 알게 되는 거라서 이수연은 비통한 마음 없이 다만 다정한 우울감에 빠졌다.” (p.252)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페에서 소설의 후반부를 읽는 동안 나이가 차니 주변에 죽음이 만발이구나, 하는 혼잣말이 저절로 흘러나왔다. 언제 어디서 부고가 날아올지 알 수 없다, 에 그치지 않고 이제 언제 어느 때 부고의 메시지를 날려야 할지 알 수 없다, 에 이르렀다. 비가 주춤주춤 하다가 한순간 와르륵 오는 사이에 소설의 남은 백여 페이지를 모두 읽었다.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에 비가 잦아들었다. 


  “그런 말이 있어. 혹시 저 선배가 날 좋아하나? 싶으면 그건 틀림없이 오해래... 근데 씨발, 저 새끼가 나 좋아하는 거 아냐? 하면 그건 100퍼센트 확률로 진짜라는 거야. 씨이발. 정말 좆같지 않니?” (p.362)


  소설이 ’고독사‘라는 현대 사회의 어찌할 도리 없는 디스토피아 적인 증상을 다루고 있기는 하지만 유머가 없지 않아서 무겁게 읽히지는 않는다. 에버노트에는 ‘XXL 사이즈의 고독’이라는 문구를 적어 놓기도 했다. 워크숍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실은 이렇게 저렇게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도 소설을 읽으면서 차차 알게 되는데, 그 관계도가 머릿속에서 자연스럽게 그려지지는 않았지만, 정신을 조금만 더 차리면 그것 또한 재미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당연하지. 세상이 왜 이렇게 형편없는 줄 알아? 형편없는 사람들만 살아남았기 때문이야. 그러니까 너도 형편없이 살아. 그러다가 가끔 근사한 일 한 번씩만 하면 돼. 계속 형편없는 일만 하면 자신에게도 형편없이 굴게 되니까. 근사한 일 한 번에 형편없는 일 아홉 개, 그 정도면 충분해. 살아 있는 거 자체가 죽여주게 근사한 거니까. 근사한 일은 그걸로 충분히 했으니까 나머지는 형편없는 일로 수두룩 빽빽하게 채워도 괜찮다고.” (p.376)



박지영 / 고독사 워크샵 / 민음사 / 384쪽 /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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