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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Jul 29. 2024

하성란 《크리스마스캐럴》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여러 유령들을 등에 업고...

  현대문학에서 핀 시리즈라는 이름으로 나오는 어중간한 길이의 소설들을 꽤 읽었다. 소설을 읽은 다음 대부분 실망했다. 어느 정도 이름이 알려진 작가들의 소설이었고, 나는 그 작가들의 다른 소설들에 어느 정도 만족한 경험이 있는데도 그랬다. 어떤 연유가 있는 것인가, 미스터리하다 여기는 마음이 생길 정도이다. 나는 그것 참 이상하다 하면서도 계속 핀 시리즈에서 나온 소설을 읽고 있다. 


  “둘째와 나는 그런 식으로 막내를 따돌린 적이 많았다. 나이 차 한참 나는 언니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늘 혼자였던 그 애는 어릴 때부터 곧잘 자신만의 상상 속으로 빠져들곤 했다. 누군가와 대화하듯 혼잣말을 해서 엄마가 걱정을 한 적도 있었다. 그때 그 습관 때문일까 가끔 남의 이야기를 경청하지 않는 사람으로 오해받기도 했다.” (pp.49~50)


  소설은 막내의 이야기이다. 글을 업으로 삼는 첫째는 어느 날 막내가 하는 이야기를 전단지의 뒷면에 받아 적는다. 소설은 그러니까 그 첫째가 받아 적은 이야기를 소설로 풀어낸 것이다. 막내는 어느 해 실패한 인간 군상의 특징을 지닌 남편에 의해 한 리조트에 묵게 된다. 그 리조트는 ’흰 타월, CCTV, 여자들, 빨간색 프라이드, 검은 계단, 계수나무······‘라는 일련의 단어로 상징될 수 있는 곳이다.


  “... 지금 이 리조트에 남아 있는 건 나 혼자뿐이었다. 발코니 창에 내 모습이 비쳤다. 창에 비친 여자가 너무 두려운 듯 두 손으로 제 뺨을 감쌌다. 타닥타닥 발코니 방충망에 하얗게 나방들이 날아와 달라붙었다. 수십 개의 눈을 끔벅이면서 안으로 들어오려 필사적으로 날갯짓을 하고 있었다...” (p.120)


  어느 저녁 남편을 비롯한 일련의 사내들과 함께 하던 술자리에서 불쑥 리조트로 자리를 옮기게 된 막내는 소설의 중반을 넘어가면 ’나‘라는 일인칭으로 서술된다. 리조트에서 겪는 이상한 상황을 삼인칭으로 서술하기에는 무리가 따를 것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어울리지 않는 곳에 위치한 리조트, 리조트에 어울리지 않는 계절, 소리로만 드나드는 사람들, 존재하는지 몰랐던 공간이 ’나‘에 의해 말하여진다. 


  “곰곰 그녀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가운데 나는 그녀들이 말하는 그런 여자란 다름 아닌 나라는 걸 알았다. 욕과도 같은 그 말이 무엇을 뜻하는 건지도 알아들었다. 씨빡, 상스럽게 느껴졌던 그 말은 바로 10박이라는 말이었다. 이런 계절에 혼자 리조트에 찾아와 열흘이나 묵는 여자는 한눈에 띌 만했다...” (p.132)


  어울리지 않는 시간과 공간과 사람이 한 자리에 모여들면서 자연스레 ’유령‘의 이야기가 탄생한다. 소설의 첫 문장인 ’그 이야기는 그날 식탁에 둘러앉아 있던 우리를 숨죽이게 하기에 충분했다.‘는 헨리 제임스의 《나사의 회전》의 첫 문장의 변용, 이라고 작가가 밝히고 있다. 《나사의 회전》은 귀신 들린 집이 등장하는 소설의 원형이라고 할 법한, 영국의 한 집에서 유령으로부터 아이를 지키는 가정부의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는 막내에게는 하루와도 같은 한 시간, 1년과도 같은 하루의 이야기였다. 나는 막내가 보냈을 그 밤들에 대해 짐작할 수 없었다. 멈춘 듯 흘러가지 않는, 자신의 숨소리에도 놀라 몸을 동그랗게 움츠리는 그런 시간에 대해 나는 잘 모른다.” (pp.146~147)


  소설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막내의 이야기를 수집하는 주체이기도 한 세 자매 중 맏이인 내가 크리스마스와 관련한 짧은 글을 청탁받았던 사실도 드러난다. 그러면서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캐럴》이 거론되는데 알다시피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세 유령이 등장하는 소설이다. 그렇게 두 소설의 여러 유령들을 등에 업고 하성란의 《크리스마스캐럴》은 완성되었다.



하성란 / 크리스마스 캐롤 / 현대문학 / 174쪽 /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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