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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Jul 29. 2024

김훈 《하얼빈》

약육강식이라는 야만성을 향하여 날아가는 총탄의 궤적...

  “나는 (포수, 무직, 담배팔이라는) 이 세 단어가 다른 말들을 흔들어 깨우고 거느려서 대하를 이루는 흐름을 소설의 주선율로 삼고, 그 시대의 세계사적 폭력과 침탈을 배경음으로 깔고, 서사 구조는 역사적 사건의 전개에 따르되, 이야기를 강도 높게 압축해서 긴장의 스파크를 일으키자는 기본 설계를 가지고 있었다...” (p.304, <작가의 말> 중)


  작가의 말에서 일부를 옮겼다. 포수와 무직은 재판 중에 안중근이 스스로를 일컬은 말이고, 담배팔이는 우덕순이 자기를 가리킨 말이다. 두 사람은 자신들의 직업을 포수, 무직, 담배팔이라고 밝혔다. 이러한 사실들은 재판의 문서에 적시되어 있고, 작가는 그 문서들을 가리켜 ’적들의 공문서‘라고 하였다. 이토를 그리는 방식에 대하여 공격적인 이들이 있는 것으로 아는데, 피아식별의 가늠자를 들이댈 만한 일이 아닌 것 같다.  


  “조준선 끝에서 노루가 쓰러졌다. 노루는 눈 속에서 피를 흘리며 뒹굴었다. 안중근은 총을 들고 일어섰다. 총구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안중근은 다시 서서쏴 자세로 노루를 겨누었다. 노루는 일어서지 못하고 허우적였다. 안중근은 다시 쏘지 않았다. 노루는 옆구리가 관통되어 있었다. 사출구의 살점이 경련을 일으켰다. 노루의 몸통을 헤집고 나온 탄두가 눈 위에 떨어져 있었다.” (p.23)


  김훈의 안중근은 뮤지컬 영웅의 안중근에서 피력하였을 비감함은 잠시 접어두고 있다. 문장은 불필요하게 늘어지지 않는다. 그저 팽팽하다. 필요한 말만 앞자리에 놓고 불필요한 말에게는 옆자리든 뒷자리든 내어주지 않는다. 긴장감은 하얼빈으로 향하는 안중근과 이토의 여정 전체를 통하여 조금씩 높아가지만 그것은 역사적 사실로 인하여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이지 작가의 힘은 아니다. 


  “이토의 목숨을 제거하지 않고서, 그것이 세상을 헝클어뜨리는 작동만을 멈추게 할 수는 없을 것이었다.

  그러니, 그렇기 때문에, 이토를 죽여야 한다면 그 죽임의 목적은 살殺에 있지 않고, 이토의 작동을 멈추게 하려는 까닭을 말하려는 것에 있는데, 살하지 않고 말을 한다면 세상은 말에 귀 기울이지 않을 것이고, 세상에 들리게 말을 하려면 살하고 나서 말하는 수밖에 없을 터인데, 말은 혼자서 주절거리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 대고 알아들으라고 하는 것일진대, 그렇게 살하고 나서 말했다 해서 말하려는 바가 이토의 세상에 들릴 것인지는 알기가 어려웠다.” (p.89)


  안중근은 너무 많이 알고 있다고 여겨지지만 너무 모르는 인물이다. 정규 교육 전체를 통해서 가장 많이 거론되는 인물임에 틀림 없지만 그에 합당하는 객관적 지식을 가지고 있는지는 의심스럽다. 다만 을사조약의 일본 측 인물인 대한제국의 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를 하얼빈역에서 암살하였다는 사실만큼은 모두가 알고 있으나, 그 구체적인 진행 과정까지 샅샅이 알고 있지는 못하다는 식이다. 

 

  “안중근이 하숙방으로 찾아와서 술을 사주면서 이토가 하얼빈에 온다는 말을 했을 때 우덕순은 안중근이 왜 왔는지를 대번에 알았다. 안중근은 우덕순에게 동행할 것인지를 대놓고 물어보지 않았고, 우덕순도 같이 가자고 대놓고 말하지 않았다. 안중근이 이토의 만주 방문을 알리는 신문을 보여주었을 때, 우덕순은 안중근과 함께 가기로 되어 있는 운명을 느꼈다. 자신의 생애는 이 불가해한 운명의 예감에서 벗어날 수 없으리라고 우덕순은 생각했다. 그 예감은 이토를 쏘아야 한다는 뚜렷하고 밝은 목표로 귀결되고 있었다. 이토를 쏘면 이토는 그 사격의 결과로 죽게 될 것이었고, 총알이 급소를 치지 못해서 이토가 죽지는 않더라도 총을 쏜 이유를 말할 자리는 마련될 것이었는데, 우덕순은 총알이 급소에 정확히 박히기를 원했다.” (pp.112~113)


  소설 《하얼빈》을 읽으며 안중근만큼이나 눈길이 간 것은 우덕순이라는 인물이다. 안중근이 하얼빈에서 거사를 준비하였다면 우덕순은 하얼빈 이전인 채가구역에서 이토를 기다린 인물이다. 소설 안에서 우덕순은 안중근의 계획을 듣고 별다른 말이 없이 그를 따라나선다. 이토 저격이라는 대의에 대하여 긴 말을 통해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다. 우덕순은 채가구역에서 붙잡혔고 이후 징역 3년 형을 받았다.  


  “나의 목적은 동양 평화이다. 무릇 세상에는 작은 벌레라도 자신의 생명과 재산의 안전을 도모하지 않는 것이 없다. 인간 된 자는 이것을 위해서 진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토는 통감으로 한국에 온 이래 태황제를 폐위시키고 현 황제를 자기 부하처럼 부렸다. 또 타국민을 죽이는 것을 영웅으로 알고 한국의 평화를 어지럽히고 십수만 한국 인민을 파리 죽이듯이 죽였다. 이토, 이자는 영웅이 아니다. 기회를 기다려 없애버리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하얼빈에서 기회를 얻었으므로 죽였다.” (pp.236~237)


  김훈의 인터뷰에 따르면 이토는 ’문명 개화라는 큰 사업과 약육강식이라는 야만성이 동시에 형성되고 동시에 존재‘하는 인간이다. 그런가 하면 안중근은 그 인간의 살해를 통하여 ’동양 평화‘라는 대의를 세상에 밝히려는 목적을 가졌던 인간이다. 소설은 약육강식이라는 야만성을 향하여 날아가는 총탄의 궤적 혹은 문명 개화와 동양 평화가 충돌하는 순간을 다분히 의도적으로 건조하게 그려내고 있다. 



김훈 / 하얼빈 / 문학동네 / 307쪽 /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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