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 로스와 네이선 주커먼 사이에 존재하였던 사실들...
‘사실들’이라는 제목을 붙인 필립 로스의 자전적 이야기의 첫 번째 챕터는 필립 로스가 자신의 소설 속 인물, 작가의 페르소나라고 할 수 있는 주커먼에게 보내는 편지글이다. 그는 그 편지에서 자신의 글을 ‘나는 쉰다섯 살 먹은 남자의 신경쇠약에서 유발된 부모에 대한 갈망의 분출이 사실상 이 원고의 로제타석石이 아닐까 생각하네.‘ 라고 규정한다. 1991년 쉰다섯 살의 필립 로스는 신경쇠약에 시달린 후, 그리고 어머니의 죽음과 남겨진 아버지라는 (《사실들》과 같은 해, 필립 로스는 《아버지의 유산》이라는 책을 내기도 했다.) 사실들 앞에서 이 책을 썼다.
“사실 10여 년 동안 자네에 대한 긴 소설 두 편을 쓰다보니 나 자신을 소설화하는 것에 신물이 나고, 내 경험과 비슷하면서도 더 강력한 유인성誘引性을 발휘하는 경험을 지닌 존재를, 나 자신의 삶보다 더 활기차고 열정적이고 재미있는 삶을 이끌어내는 노력에 지친 것이라고 볼 수 있네. 정작 나 자신은 혼자 방에서 타자기 앞에서 앉아 아주 재미없게 시간을 보낼 때가 많았으니까. 나는 스스로 정한 규칙들, 나의 일종이자 나의 것의 투영인 대리자애게 어떤 일이 나에게 일어난 그대로와는 다르게 일어나거나, 내게 일어난 적 없거나 내게 일어날 수 없었던 일들이 일어나는 것으로 상상해야 하는 규칙들로 인해 고갈되었네. 이 원고가 무언가를 전달한다면 그건 가면, 위장, 왜곡, 거짓말로 인한 나의 탈진이라고 할 수 있지.” (p.16)
“... 자기 변형 능력과 상상력이 붕괴 직전에 이른 상황에서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은 -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아닐지라도 - 스스로를 탈신화화하여 정직하게 드러내는 것, 살았던 사실들과 보여졌던 사실들을 짝지우는 것이었지. 글의 옷을 다 벗겨내고 있는 그대로의 특정성만 남기는 것이 내가 잃어버린 걸 되찾는 방법, 회복과 힘에 이르는 길임을 나의 남은 부분(그 역시 붕괴를 겪었던)이 직감한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었네... 지금 나는 삶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소설 속에는 존재하는 어떤 존재가 있다거나 그 반대의 주장을 펼치는 게 아니라 사실들에 충실히 따르는 책, 상상적 격정에서 벗어난 사실들의 증류는 소설화를 통해 모호해지고, 팽창하고, 심지어 뒤집히기까지 한 의미들을 드러내 날카로운 감정의 못을 박을 수 있다는 말을 하는 것이네... 물론 사실들은 그냥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과거 경험에 의해 형성된 상상력을 통해 구체화되기 마련이지. 과거의 기억은 사실들의 기억이 아니라 사실들에 대한 상상의 기억이고. 따라서 나처럼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나타내거나 ‘허구가 없는 삶’을 그리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소설가는 고지식한 것이지... 우리는 특정한 질문을 마음에 품고 과거를 탐색하네. 과거의 어떤 시간이 지금의 이 질문을 하게 만들었는지 발견하기 위해 과거를 탐색하는 것이지...” (pp.16~18)
필립 로스는 네이선 주커먼에게 보내는 편지글에서 자신이 이러한 ‘사실들’을 왜 썼고 왜 쓸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그것은 때때로 불필요한 변명 같기도 하고, 불합리한 합리화 같기도 하다. 소설을 써야 하는 자신이 왜 소설이 아닌 글을 쓰고 있는지에 대해, 바로 그 소설 안의 인물인 주커먼에게 양해를 구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의미 없음에 대해 어떻게든 의미 있음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
“... 나와 아버지의 유대는 어머니와의 어마어마한 육체적 결속감처럼 육감적으로 만져지는 것은 아니었다. 반년마다 가는 라디오시티 뮤직홀과 맨해튼 차이나타운 나들이에서 아머지가 모는 차를 타고 뉴저지의 집으로 돌아오던 겨울의 일요일마다, 막내의 특권을 지닌 응석받이 아기였던 내가 행복하게 기어들었던 매끄러운 검정 물개가죽 코트는 어머니의 변형된 구현체였다. 어머니의 작고한 부친의 이름을 가진, 뭐라 이름 짓기 어려운 동물-나, 원형질-나, 남자-아기, 몸에-굴을-파는-훈련중인-동물이 온몸의 신경 말단으로 어머니의 미소와 물개가죽 코트에 연결되었다면, 아버지의 확고한 책임감과 끈질긴 근면성, 터무니없는 고집과 맹렬한 분노, 환상, 순수함, 충성심, 공포는 내가 미국인, 유대인, 시민, 남자, 심지어 작가로 성장하는 데 있어 원형이 되었다. 나의 존재 자체가 어머니의 필립이지만, 세상의 풍파 속에서 나의 역사는 아버지의 로스로 시작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pp.33~34)
길게 이어진 편지글이 지난 다음에야 필립 로스는 비로소 자신에 대해 자신의 유년 시절에 대해 자신의 어머니와 아버지에 대해 운을 뗀다. 유대인들 특유의 어떤 유대가 가득한 가족, 그 가족이 미국이라는 곳에서 자리를 잡고 유대인이면서 미국인이기도 한, 어떤 집단이 되어가는 과정, 그 집단에서 자신이 뾰족하게 튀어나오게 되는 과정을 서술한다. (《사실들》이 출간된 1991년 이후 필립 로스는 미국3부작이라고 불리우는, 유대인과 미국인을 이야기하는 세 편의 소설 《미국의 목가》,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 《휴먼 스테인》을 발표했다.)
“... 나는 무의식중에 내 소설을 통해 ‘세련’되어지기를, 그저 생계를 유지하고 가정을 꾸릴 생각만 하며 어쩌다 한 번씩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레슬리 스트리트의 중하위층 유대인들이 알지 못하는 차원으로 올라가기를 원하고 있었다. 대학 시절에 쓴 초기작들이 내가 괜찮은 유대인 소년임을 증명하기 위한 것이었따 해도 충분히 끔찍했을 텐데, 괜찮은 소년임을 증명하는 이야기들이었으니 더 끔찍했다. 유대인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 이야기들 속에는 유대인이 없었다. 뉴어크도 코미디도 없었다. 나는 절대로 문학 속에서 웃음을 전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자극적이고 신바람 나는 삶을 체험하고 있을 때조차도 삶을 슬프고 통렬하게 나타내고 싶었다. 내가 ‘동정적이고’ 완전히 무해한 인간임을 입증하고 싶었다.” (p.92)
그러니까 이 책은 필립 로스의 주요 저작들이 등장하기 이전에 너무 빨리 써버린 자서전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들’ 안의 필립 로스는 《포트노이의 불평》으로 이제 겨우 유명해지기 시작할 무렵의 필립 로스이고, 집을 벗어나 대학에서 여러 여자들을 그리고 선생을 만나는 필립 로스이고, 유대인 그룹으로부터는 반유대적인 작가로 오인 받기 시작하는 필립 로스이며, 자신이 선택한 혹은 선택 당해버린 한 여인에 의해 초토화되는 시기의 필립 로스이다.
“자네가 소설 속에서 말하기로 선택한 건 아무것도 허구화되지 않을 때 말할 수 있는 것과 다르고, 이 책에서 자네는 자신이 가장 잘 말할 수 있는 걸 말할 수 있도록 허용되지 않네. 친철하고,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 사람들의 감정을 상하게 만드는 것이 염려되어 그들의 이름을 바꾸면서 - 이야기하는 것, 아니, 그건 가장 흥미로운 자네가 아니라네. 소설 속에서 자네는 직접적인 고통을 야기하는 것에 대한 염려에서 벗어나 훨씬 더 진실할 수 있지...” (p.233)
“... 작가가 소설에 드러내는 건 근본적으로 미학적인 동기의 지배를 받고, 소설가를 평가할 때 우리는 그 혹은 그녀가 이야기를 얼마나 잘하는지를 기준으로 삼네. 하지만 자서전 작가에게는 도덕적 평가를 내리고, 자서전 작가의 지배적 동기는 미학적인 것과 대조되는 윤리적인 것이지...” (p.236)
이 ‘사실들’을 모두 돌파하고 나면 이제 책의 마지막 챕터에선 필립 로스의 소설 속 주인공인 주커먼이 필립 로스에게 보내는 편지글이 등장한다. 필립 로스가 소설 아닌 글을 쓸 수밖에 없었던 자신을 이해해달라는 편지를 보냈고, 이 편지를 받은 주커먼은 이제 필립 로스를 향하여 이런 자서전이 아니라 결국 소설을 써야만 한다는 당위를 던지고 있다. 필립 로스는 쉰다섯 살 이후 그 이전보다 나은 소설들을 써냄으로써 이 편지에 대한 답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2018년 5월 필립 로스는 세상을 떠났다.
필립 로스 Philip Roth / 민승남 역 / 사실들 (The Facts : A Novelist's Autobiography) / 문학동네 / 286쪽 / 2018 (19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