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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Aug 11. 2024

한은형 《베를린에 없던 사람에게도》

착함과 모범이 내면화된 작가의 조금 심심한 베를린 브로슈어처럼...

  《베를린에 없던 사람에게도》는 소설가인 지은이가 베를린에서 삼 개월 가량을 보내며 기록한 산문집이다. 여러 해 동안 지구에서 가장 힙한 도시로 일컬어지고 있던 베를린이다보니, 소설가인 작가가 바라보는 베를린이 궁금하였다. 하지만 생각만큼 실린 글들이 힙하지는 않았다. 때때로 브로슈어처럼 베를린의 이곳저곳을 혹은 베를린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것저것을 설명하고 있음에도 그랬다.

  “상식적이지 않고, 모험심이 별로 없다. 그런 것과는 가장 거리가 멀다고도 할 수 있다. ‘했던 것을 다시 한다, 그리고 또다시 한다’가 나의 행동 방식에 가깝다. 가끔 이런 게 지루해져서 뭔가 새로운 걸 해보기도 하지만, 그러기까지는 정말 많은 결심과 독려와 채근이 필요한 사람인 것이다...” (p.12)

  지은이 한은형이 밝히는 지은이 한은형은 이런 사람인데, 어쩌면 글을 쓰고 있는 한은형이 이런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훌쩍 어딘가로 떠나고 어딘가에서 또 어딘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그 어딘가에서 잠시 머무는 형태의 여행을 지은이가 좋아하는 것도 그런 연유에서일 것이다.) 세상의 어느 곳에서 어떤 행동을 하고 있더라도 지은이의 이러한 행동 방식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기 때문에 사라지지 않는 어떤 답보가 있다. 

  “‘그렇다면 왜?’는 여전히 미스터리다. 왜 이렇게 우유(와 함께 마시는 커피)를 사랑하는지 왜 이렇게 설탕(과 함께 마시는 커피)을 애호하는지 정말 궁금했는데, 베를린을 떠날 때까지 풀지 못했다.” (p.61)

  그래서 책에는 해결되지 않는 작가의 호기심이 군데군데 등장한다. 도대체 그곳의 사람들은 왜? 하는 물음을 던지고 그 대답을 크게 갈구하지 않는다. 궁금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애써 그 궁금증을 해소하지도 않겠어, 그게 나야, 라고 소리치는 것만 같다. 가 봐야지, 가 봐야지 하다가 여행이 끝날 때까지 가보지 못하는 베를린의 남녀 혼욕 사우나도 그런 곳 중 하나이다.

  “‘착하기도 싫다, 모범적인 건 더 싫다’가 나의 오랜 모토였던 것 같다. 착한 사람 앞에서 어쩔 수 없이 마음이 연해지고 모범적인 사람한테 감동하기도 하지만, 내가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더 솔직히 말하면, ‘내가 한다고 해도 할 수 없다’가 더 맞을 것이다. 나는 내가 아무리 애쓴다고 해도 착하거나 모범적인 사람이 될 수 없으리라는 걸 알았고, 아주 일찍이 알았고, 그래서 나름 나의 노선을 정해왔던 것이다.‘ (p.146)

  이중부정에 능한 사람이 아니라면 지은이는 아마도 어떤 면에서 착하거나 모범적인 사람일 것이라고 여기게 된다. 지은이의 모토는 지은이의 내면에 바로 그 착함과 모범이 도사리고 있어서 자신도 모르게 도드라진 것일 수도 있다. 그런 이에게 베를린이 내보이는 맨살에는 한계가 있었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온통 치장을 하고 있는 모습도 아니고, 완전히 벌거벗은 것도 아니다.

  “나는 이토록 화려한 도시를 파괴할 수 있는 것도 인간, 다시 쌓아올릴 수 있는 것도 역시 인간이라는 사실에 뭐라 말할 수 없는 공포와 경이를 느꼈다. 인간을 혐오하는 인간도, 인간을 사랑하는 인간도 드레스덴에서의 나였다. 비관과 낙관을 오가며, 또 혐오와 사랑을 오가며 나는 신이 난 사람들이 발광하는 드레스덴의 비현실적인 밤을 걸었다.” (p.167)

  산문집은 난다 출판사에서 나오는 걸어본다 시리즈의 열여섯 번째 작품이기도 하다. 국내와 국외를 가리지 않고 세상의 구석구석을 (나를 대신하여) 걷고 있는 사람들을, 그들이 만나는 사람과 공간을 지켜보는 재미로 내내 읽고 있다. 그런데 점차 해소되지 않는 것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나를 대신하는 누군가가 아니라 나 자신이 직접 나서서 바라보고 싶다는 심정이 조금씩 생기고 있다. 


한은형 / 베를린에 없던 사람에게도 / 난다 / 234쪽 / 2018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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