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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Aug 11. 2024

최민석 《베를린 일기》

90일간의 유머러스한 일기로 스케치된 베를린...

  베를린을 읽은 김에 다른 베를린도 읽자 싶어, 사놓고 읽지 않고 있던 최민석의 《베를린 일기》를 꾸역꾸역 찾아냈다. 한은형의 책이 나오기 이 년 전에 출판된 것이고, 베를린에 머물 던 것도 이 년 전 쯤이다. 다만 이들이 베를린에 머문 기간은 90일 정도로 비슷한데, 아마도 작가들을 위한 프로그램들이 제공하는 시간의 길이가 비슷한 탓인 듯하다. 그리고 두 작가 모두 이중 어느 정도는 떼어내어 베를린이 아닌 다른 도시 혹은 독일이 아닌 다른 나라를 여행하곤 한다.


  “이곳에서는 일요일 아침이면 예배당 종소리가 잔잔하게 울려 퍼진다. 누구도 시끄럽다고 불평하지 않고, 종소리가 누군가의 일상을 방해할 만큼 크지도 않다.

  이것이 기독교의 (원래) 모습이다.

  한국에서 유럽의 기독교는 망했다는 소리를 자주 들었는데, 이곳에 와 보니 한국에서 성공한 것은 양적 성장이고 세상과의 관계와 질적 성장에는 실패한 것 같다.“ (p.65)


  최민석의 글은 스스로 밝히고 있는 바 일기글이다. 2014년 10월 15일에서 2015년 2월 6일까지 기록했는데, 그는 그것을 SNS로 공유했던 것으로 보인다. 사실 그것만큼 자신을 강제하기 좋은 방법도 없다. 그는 그 기간 동안 노트를 세 권 썼는데, 돌아다니다 잠깐 멈춘 틈을 타서 일기를 쓰곤 한다. 그 노트에 적은 일기를 직접 찍은 사진도 책에 실려 있는데, 글씨는 그저 알아볼 수 있는 정도라고나 할까... 


  “... 이들은 소박하게 산다. 세금을 성실히 납부하고, 자녀 교육을 걱정하지 않는다(원한다면, 박사과정까지 거의 무료니까, 학기당 30만원 정도 낸다). 대부분 성실히 일하여 월세를 내고, 성실히 납세하고, 자녀 교육은 무상 공교육에 맡기고, 노년에는 연금을 받아 생활한다(그중에는 ‘나 여사’처럼 알뜰하게 연금을 모아서 내가 사는 작은 아파트 같은 걸 사는 사람도 있다). 엄청난 부자가 되긴 어렵지만, 엄청나게 가난해지기도 어렵다...” (p.157)


  작가의 소설을 한 편 읽었고, 한 편은 어디 있는 것 같은데 아직 읽지는 못했다. 읽은 소설에는 유머가 풍부하였는데, 산문집에 실린 글의 태도에도 웃음기가 가득이다. 프롤로그에서 ‘옛 문체를 살리기 위해 종종 한자를’ 쓰겠다고 공언하여 조금 긴장했는데, 작가가 쓰는 한자는 베를린을 백림(伯林)이라고, 그래서 동베를린을 동백림(東伯林)이라고 부르는 정도여서, 괜한 걱정이었다. 


  『짧은 한국어를 구사하는 파비오가 드디어 이번 주 금요일에 인터넷 기사가 방문할 예정이라고 했다. 내가 “와! 너흰 정말 운이 좋구나. 이렇게 빨리 오다니!” 하니까, 파비오는 검은 얼굴로 “한 달 전에 신청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한국이 정말 그리워. 모든 게 정말 빠르더라고!”라고 했다. 게다가 한국은 테크놀로지의 나라라고 하며 심지어 길거리에서 작은 케이크를 파는 아저씨도 ‘테크놀로지를 이용해서 쿠킹하기에’ 정말 충격을 받았다고 했는데, 자세히 들어보니 붕어빵 장수를 말하는 것이었다.』 (pp.217~218)


  어쨌든 베를린에 대해서 많이 알게 되었느냐 하면 그건 또 그렇지도 않았다. 화장실의 사용료가 펍에서 파는 맥주의 값보다 비싸다는 것 그러니까 맥주가 그만큼이나 싸다는 것 그리고 음식이 굉장히 짜다는 것, 그런데 물 값이 맥주보다 비싸니 짠 음식을 먹고 나서 물보다 맥주를 먹게 되고, 그렇게 독일은 (느낌상) 세상에서 가장 많은 맥주를 소비하는 나라가 되었으리라 짐작하는 정도였다.


  “루시아의 집에서는 따뜻한 물이 잘 나오지만, 난방이 전혀 되지 않는다. 인생에는 항상 ‘일장일단’이 있기 마련이다. 그것은 동전과 같아서, 한 면이 장점이라면 다른 한 면은 단점으로 구성된 것이다. 단점을 장점으로 쉽게 뒤집을 수 있으며, 장점이 단점으로 쉽게 뒤집힐 수도 있는 것이다...” (pp.435~436)


  어쨌든 이방인으로 베를린에서(몇몇 다른 도시를 포함하여) 살아가는 일에 대해 넘겨짚어 보자면, 태어나서 쭈욱 살아가기에는 베를린이 분명 여기보다 낫겠지만, 서울에서 적당한 수준으로 살고 있던 사람이 훌쩍 넘어가 베를린에서 살아보려 한다면 불편한 구석도 만만치 않겠구나 싶다. 그건 그렇고 이 작가도 결국 베를린의 남녀 혼욕 시스템인 사우나에는 가지 않은 것 같다. 



최민석 / 베를린 일기 / 민음사 / 493쪽 / 2016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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