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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Aug 11. 2024

김병운 《아무튼, 방콕》

가성비 최고의 여행지 방콕에 대한 가성비 부족한 여행기...

  배낭 여행을 하는 이들의 성지 같은 도시가 방콕이라는 사실은 잘 알고 있다. 한때 주말마다 모이던 맴버의 구성원들과 함께, 그곳에서 벌어지는 물 축제인 송크란 페스티벌에 가자는 말을 나누기도 했다. 구성원들이 서해안의 펜션에 놀러갔을 때 이 바람은 극대화되었다. 물론 몇몇은 결국 그 페스티벌에 갔다 왔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도 같고, 또 다른 몇몇은 가지 못했고, 나는 후자에 속한다.


  방콕은 그야말로 방에 콕 박혀 지낸다는 우스개소리로 사용되기도 하는데, 나야말로 바로 이 방콕 족에 해당한다. 내게는 건사해야 할 아픈 고양이가 있고, 그 아픈 고양이는 하루에 세 번 내 손길을 필요로 한다. 첫 번째 손길과 두 번째 손길 사이에 열 두 시간 정도의 간극이 있으니, 이 시간을 최대한 이용하여 방을 떠날 수도 있겠지만, 그 사이에 다녀올 수 있는 곳이라는 것은 꽤 한정적이다. 


  “방콕의 계절은 강수량에 따라 건기와 우기로 나뉘는데, 5월부터 10월까지가 우기, 11월부터 4월까지가 건기에 속한다. 우기는 날마다 한두 차례씩 스콜성 폭우가 내리는 대신 좀 습하고, 건기는 온종일 해가 내리쬐는 대신 좀 뜨겁다. 그래서 모두가 손꼽는 방콕 여행의 최적기는 겨울이고, 건기는 성수기, 우기는 비수기다... 하지만 나는 겨울의 방콕보다는 여름의 방콕을, 방콕의 건기보다는 방콕의 우기를 더 좋아한다... 우기의 날씨는 그야말로 버라이어티하다. 작열하는 태양과 사나운 비가 교차하고, 찌는 듯한 더위와 신선한 바람이 공존한다. 이 오묘한 조합이 가능한 건 역시나 깜짝 이벤트처럼 예고도 없이 나타났다가 갑자기 사라지는 장대비 덕분인데, 비가 내리기 전에는 습하고 후덥지근한 게 지극히 여름 같은 여름이었다면, 비가 걷힌 다음에는 살짝 서늘하고 스산한 게 여름 같지 않은 여름이 된다...” (pp.62~63)


  다행스러운 것은 이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향하겠다는 열망이 내게는 크지 않다는 사실이다. 아내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아서 우리가 함께 한 마지막 여행은 칠년 여 전의 제주도 여행이었다. 그때는 고양이가 아프지 않았고, 누군가에게 고양이의 식사와 화장실 청소를 맡길 수도 있었다. 물론 그럼에도 마음이 썩 편한 것은 아니었고, 고양이 캐어를 담당한 후배는 침대 아래에서 야옹 거리는 우리 고양이들의 영상을 보내주었다.


  이곳이 아닌 저곳을 다루고 있는 여행기랄지 산문집이랄지를 종종 읽는 것으로 나는 떠남의 열망을 다스리고 있다. 언젠가 떠나게 된다면 나는 아주 오래 떠나 있게 될 것 같다고 예감한다. 아내는 내게 종종 답답하냐고 묻고는 한다. 아내는 내가 보고 있는 책들에서 발견되는 여기가 아닌 저기의 지명들을 몰래 살펴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내는 여행기라는 장르를 웬만해서는 읽지 않는다. 그럴 필요를 느끼지 않는 것 같다.


  “... 남이 들으면 이게 왜 웃기다는 건지, 어디가 어떻게 웃긴다는 건지 전혀 이해하지 못할 게 분명한 에피소드이지만, 우리 둘은 한참을 낄낄거린다... 이 길 하나에 이렇게나 건져 올릴 추억이 많다는 것을, 이 길 위에서 우리가 보고 듣고 한 게 너무나 많다는 것을, 우리는 걸으면서, 이야기하면서, 곱씹으면서 새삼 깨닫는다.” (pp.90~91)


  책만 놓고 보자면 그리 만족스럽지는 않다. 가성비 최고의 여행지로 방콕을 설정하고, 무수히 방콕을 드나들고 있는 것으로 생각되는데, 게다가 그 여행에 여자 친구를 동반하고 있음에도 그다지 재미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어쩌면 많은 설렘이 사라진, 되풀이되면서 일종의 매너리즘에 빠져 버린 여행이 되어버린 건가, 의문스럽기도 하다. 가성비와 상관없이 작가가 방콕이 아닌 다른 곳으로 여행을 가면 좋겠다, 고 생각하게 되어 버렸다.



김병운 / 아무튼, 방콕 / 제철소 / 139쪽 / 2018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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