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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Aug 11. 2024

김현우 《건너오다》

떠돌아다니고 싶은 마음으로 건너가지 못하고, 구차한 변명을 끌어안은 채.

  하필이면 이 책을 읽기 직전에 한강의 오래된 소설집을 읽었다. 두 책의 문장의 간극이 심하여 처음 얼마간 바뀐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처럼 헤매었다. 그러나 얼마간 책을 읽고 나서는 적응할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아무 사람하고나 나름 잘 지내고 어떤 환경에도 필요 이상으로 빠르게 적응하는 사람이긴 하다. 지구촌 곳곳을 일삼아 돌아다녀야 하는 처지인 저자가 어떤 성향인지는 잘 모르겠다.


  “... 개츠비가 위대했던 건 ‘찾으려고만 하면 널려 있는’ 핑계를 찾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은 그가 실패했기 때문에 그의 위대함 역시 부질없는 것 아니냐고 누군가 물을 수도 있겠다. 나의 대답은, ‘위대함’은 결과와 아무 관련이 없는 자질이라는 것이다. 정말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는 이는 그 바람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확신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간절히 바라는 이가 위대한 이유는, 그가 그 간절함으로 자신이 바라던 것을 이루었기 때문이 아니라, 아무것도 고려하지 않고 그저 그것만을 생각했다는 바로 그 점 때문이다...” (p.73)


  책은 교육 방송에서 주로 다큐멘터리를 찍는 일에 종사하는 피디를 업으로 삼고 있는 저자가 돌아다닌 이곳저곳, 그리고 그곳에서 수행한 작업의 겉모습을 스케치한 글로 가득하다. 가까운 일본과 중국은 물론 유럽과 호주, 러시아와 미국까지 골고루 돌아다니며 꽤나 많은 사람을 만나 일을 진행해야 했으므로 이야기들이 많다. 호주 마운트아이자, ‘반경 오십 킬로미터 안에, 적어도 우리의 시선이 닿는 범위 안에 사람이라곤 우리밖에’ 없는 곳, 같은 설명들로 풍광을 넘겨 짚는다.


  “... 십오 년쯤 전에 유학을 결심한 내 또래의 부부는 이제 캔자스를 ‘우리집’이라고 부른다. 또 그 캔자스에는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매일 모형 비행기만 만들어 날리며 지내는, 말이 어눌한 할아버지가 한 명 있고, 다운타운의 서점 ‘먼지 낀 책상’에는 사람을 보면 다가와 애교를 부리는 고양이도 있다...” (p.89)


  이러한 풍광 혹은 그곳에서 겪은 사람이나 동물에 대한 설명이 있고, 그 다음 자신의 심경을 덧붙이는 것이 저자가 글을 써내려가는 방식이다. 그러니까 캔자스에서 자신이 본 것을 주욱 나열한 다음, “그 고양이까지 포함해서, 그들은 언제부터 그 낯선 곳과 낯선 일이 있을 곳이며 자신이 할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을까?” 라고 덧붙이는 방식인 것이다. 어찌 보면 꽤나 소박한 방식이다. (어쩌면 그래서 한강의 소설을 읽은 다음인 나는 헤매었을 것이다.)


  “... 인간은 - 특히 어느 정도의 나이가 된 인간이라면 - 그 인간이 했던 선택들의 합이다. 마흔이 된 나는 비로소 그걸 깨달아가고 있었다. 샌프란시스코의 케이블카에서 우연히 미인을 만난 것은 나에게 ‘일어난’ 일이었다. 와인을 함께 마시며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나의 이야기를 한 것, 부에나 비스타에서 나와 동료들이 기다리고 있던 약속 장소로 와서 그녀와 헤어진 것은, 내가 ‘한’ 일이었다. 그건 나의 ‘선택’에 따른 것이었다...” (pp.175~176)


  이 소박한 보통의 방식으로 글을 쓰는 저자를 읽어내는 일에 곧 속도가 붙어서 후루룩 잘도 페이지를 넘겼다. 일을 하면서도 생각을 멈추지 않는 저자의 태도가 보기에 좋았다. 게다가 그는 다큐멘터리 피디이면서 동시에 존 버거나 리베카 솔닛을 (니콜 크라우스의 《그레이트 하우스》까지) 우리말로 옮긴 번역가이기도 하다. 운이 좋았던 것인지도 모르지만 선구안도 좋은 것이다.


  “어떤 인간을 규정하는 것은 그가 바라는 것, 가지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그가 차마 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보통 위기의 순간에 그것은 밝혀진다..” (p.243)


  나는 사실 크게 떠돌아다니며 살아 보지 못했다. 떠돌아다니고 싶은 마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리고 지금도 그 떠돌아다니고 싶은 마음을 아예 버린 것은 아니다. 아픈 고양이가 내 손길을 필요로 하고 있고, 떠돌아다니는 것을 지극히 싫어하는 아내가 있는 한 추구되는 것이 불가능한 마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차한 변명처럼 그 마음을 안은 채 살아가고 있다. 나라는 인간이 그렇다.



김현우 / 건너오다 : 다큐 피디 김현우의 출장 산문집 / 문학동네 / 255쪽 /  2016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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