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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5시간전

이다혜 《아무튼, 스릴러》

이미 끓기 시작하였다면 되돌리기 힘든 스릴러라는 스위치...

  씨네 21의 기자인 작가의 필력은 나무랄 데가 없다. 사실 내게는 씨네 21 창간호가 있는데, 그것을 어느 날 상암동에 있는 술집 아카이브로 옮겨 놓았다. 창간 이후 2000년 초반까지 대부분의 씨네 21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술집 아카이브로 옮겨 놓았던 씨네 21 창간호가 나만의 보물들이 숨겨져 있는 다락방에서 발견되었다. 혹시나 하여 상암동 술집에 갔더니 거기에도 (거의) 똑같은 씨네 21 창간호가 있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이제 서서히 왜 두 책자가 완전히가 아닌 거의, 똑같은 책자였는지의 비밀이 밝혀지게 되는데... 그러니까 스릴러라면 이런 식의 전개를 생각해야 할까...


  “고전 미스터리가 규칙에 더 들어맞는 정통파의 플레이를 보여준다면 스릴러 쪽은 변칙이 더 환영받는다. 때로는 퍼즐을 다 맞춰도 퍼즐 조각이 남거나 빈 공간이 남아 있는 상황이 벌어진다. 범인 찾기가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니었나? 아닐 수 있다... 서스펜스와 밀접한 연관이 있어 서스펜스물과는 종종 혼용되며, 반전이 있는 경우가 많고, 대체로 사건 진행 속도가 빠르다. 고전적인 느낌이 없을수록 어떤 작품이 스릴러로 불릴 가능성은 높아진다.” (p.8~9)


  여하튼 작가는 이러한 컨셉을 받아들고 스릴러를 구글링한 결과, 곧바로 마이클 잭슨의 스릴러와 맞닥뜨리게 된다. 나도 마찬가지였는데, 조금 수고하면 우회하여 드디어 ‘문학, 영화, 게임 등을 아우르는 폭넓은 장르로서, 종종 서로 겹치는 다양한 하위 장르를 거느리고 있다. 빠른 전개, 빈발하는 액션, 재능있는 영웅이 대결하는 더 강력하고 더 잘 갖춰진 악당을 갖는다.’라는 정의에 다다를 수 있다.


  “90년대에는 클래식 미스터리보다는 스릴러가 더 대중적으로 인기를 끌어, 나는 ‘진짜 어른의 소설’로 진입했다. 누군가 내게 추리소설과 구분되는 스릴러의 특징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나는 ‘섹스’라고 말하리라. 고전 미스터리 속 탐정들은 굳이 섹스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십대 시절 가장 빠져 있던 작가는 시드니 셀던이었고, 마이클 크라이튼이었으며, 존 그리샴이었고, 로빈 쿡이었다. 시드니 셀던은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로맨스(치정) 스릴러에 능했고, 마이클 크라이튼은 새로운 과학기술을 이용한 과학 테크노 계열, 존 그리샴은 법정 스릴러의 귀재였으며, 로빈 쿡은 메디컬 스릴러의 스타였다.” (pp.22~23)


  위키백과의 설명에 따르면 스릴러의 하위 장르로 액션, 음모, 범죄, 재난, 드라마, 환경, 에로틱, 호러, 법정, 의학, 정치, 심리, 스파이, 초자연적, 테크노 스릴러가 있고, 이 하위장르들은 또 혼합한 형태로도 나타나는 데, <주라기 공원>이나 <에일리언 대 프레데터>는 SF/호러 스릴러이고, <프레데터>와 <로보캅>(?)은 테크노/정치/음모/군사/호러 스릴러가 되며, <양들의 침묵>이나 <세븐>은 법정/법의학/심리/호러 스릴러가 되시겠다.


  “내게 판타지라는 장르의 벽은 늘 그 ‘끓는점’이 너무 높다는 데 있었다. 판타지라는 장르의 특성상 그 세계를 받아들이고 숙지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 ‘지금, 이곳’이 아니라 ‘지금, 이곳 너머’를 무대로 하고 있으니 일단 거대한 개념에서부터 꼼꼼한 디테일에 이르기까지 설정을 먼저 깔아야 한다. 세 권은 기본이고 다섯 권 이상 이어지는 시리즈가 많다. 그러니 300~500페이지는 읽고 나야 끓기 시작하는데, 500페이지까지 끓이다 보면 언제 끓여서 언제 먹고 포만감을 누리나 하는 생각에 벌써 지친다.

  책장을 열면 바로 끓기 시작하는 스릴러나(첫장 혹은 첫 문장에서 이미 긴장이 시작된다), 남자 주인공이 나오면 끓기 시작하는 로맨스(1500페이지를 넘기는 경우가 아니면 아무리 늦어도 30페이지 이내에 남자 주인공이 나온다), 첫 ‘밀실살인’이 벌어지면 냅다 부글거리는 본격 미스터리(현장에 탐정이 함께 있다면 금상첨화)에 비해 판타지의 진입 장벽은 너무 높아만 보이는 것이다.“ (pp.36~37)


  그러니까 어쩌면 이 방대한 스릴러의 세계를 이토록 얇은 책 한 권에 쑤셔 넣는 것은 애초에 무리였을 수 있다. 그럼에도 유의미한 내용들이 꽤 있는데, 장르를 나누면서 작가가 사용하고 있는 ‘끓는점’이라는 개념도 그중 하나다. 나도 때때로 이러한 ‘끓는점’의 차이를 제대로 각인하고 있지 못하여, 오래 전 발견했어야 할 장르의 명작들을 놓치기 일쑤였음을 토로하지 않을 수 없다.


  “현실이 잔인하다고 잔인한 설정을 한껏 이용하는 창작물을 즐기지 말아야 할 이유는 없다. 현실의 문제를 픽션의 연장으로밖에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그것은 문제가 된다. ‘픽션’과 ‘픽션 같은’은 전혀 다른 말이다. 픽션을 픽션으로 즐기려면 현실의 문제를 현실에서 해결하려는 책임감이 필요하다.

  나는 여전히 스릴러를 좋아한다. 그 사실은 종종 나를 괴롭게 한다. 내가 ‘파는’ 장르의 구성 성분이 무엇인지, 쾌락이 어디에서 발생하는지를 생각하는 일이 그렇다. 스릴러가 현실의 피난처로 근사하게 기능해온 시간에 빚진 만큼, 현실이 스릴러 뒤로 숨지 않게 하리라.“ (p.138)


  나는 여전히 장르 문학 읽기를 일종의 길티 플레저처럼 여기는 경향이 있다. 읽고나면 반드시 그것이 내게 작용한 순기능을 찾아내려 애쓰는 것을 보아도 그렇다. 나의 경우와 완전히(?) 같다고 할 수는 없지만 작가 또한 자신의 탐닉(?)에 나름의 변명(?)이 필요했을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이미 한 번 끓기 시작한 마음을 되돌리기가 쉽지는 않을 터, 스릴러의 스위치를 잘못 돌리면 모두들 그렇게 되곤 한다. 



이다혜 / 아무튼, 스릴러 / 코난북스 / 140쪽 / 2018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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