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칼 키냐르와 접촉하기 위하여 분투하는 이 마음의 정체는...
*2018년 5월 10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파스칼 키냐르를 마지막으로 읽은 것이 (《부테스》였다) 지난해 7월이다. 일 년여가 되어간다. (모두 14권으로 구상되었고 제목도 미리 정해져 있다는) 그의 ‘마지막 왕국’ 시리즈를 기다리는 중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은밀한 생》(오래전 출간되었고 이후 구상된 시리즈에 의해 8권이 되었다), 《떠도는 그림자들》(1권), 《옛날에 대하여》(2권), 《심연들》(3권) 네 권이 출간되어 있는데, 현재 프랑스에서는 9권 《죽도록 생각하다mourir de penser》까지 출간되었다고 한다.
“... 키냐르의 파편적인 글쓰기는 작품의 불연속성을 제안하는 것이고, 흰 여백 사이에 매혹의 공간을 만드는 것으로, 이는 모든 고독한 사색과 독백에 아주 잘 어울린다. 파편은 대답 없는 자의 공간이므로 곧 홀로 있는 자의 공간과 같다. 파편에는 형이상학적인 가치마저 있다...” (p.22, 샹탈 라페르데메종의 서문 중)
책은 2000년 겨울에 샹탈 라페르데메종이 파스칼 키냐르를 인터뷰한 내용으로, 프랑스에서는 2006년 출간되었다. 키냐르가 각종 오브제 및 이야기를 다루는 방식을 흠모하고 있으므로 그의 입을 통하여 발화되는 어떤 비의에 대한 육성을 듣고 싶었으므로 서둘러 책을 읽었다. 키냐르의 책을 읽을 때와 마찬가지로 띄엄띄엄, 내가 디딜 수 있는 돌덩어리에만 겨우 착지하였는데, 돌덩어리와 돌덩어리 사이는 어찌도 그리 넓은 것인지...
“연락이 잘 안 되게 하면 됩니다. 전 전화를 잘 안 받아요. 팩스도 없어요. 몇 년 전에는 이메일을 쓰는 것도 그만뒀어요. 휴대폰이나 이메일은 잘못하면 평판을 위태롭게 하고, 저를 감시하는 수단이 아니던가요? 제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알지 않아도 되는 사람에게까지 다 알려지니까요. 이상한 일이에요. 우체국에 가서 보내는 편지가 훨씬 확실하지요. 비밀 유지에 훨씬 더 수월하고, 공유되지도 않아요. 제게 아주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저는 벨 소리가 울려도 대답을 안 해요. 너무 시끄러워 선을 뽑아놓기도 하죠. 아무튼 이제 절 부르는 소리가 없습니다. 기막힌 즐거움이지요...” (pp.71~72, 키냐르)
이 은둔하는 언어의 고수가 고수하는 언어들은 벼랑 끝에 있는 것처럼 독자인 나와 거리를 두는 것만 같다. 잡으려고 다가서면 훌쩍 뛰어내릴 것만 같아 그러지 못하고, 내내 안타까운 눈으로만 더듬는다. 프랑스 내에서도 박식하기로 정평이 나 있다는 그가 다루는 동서양의 고금을 망라하는 인물들과 사상들과 숨겨진 사건들을 속속들이 따라잡는 것은 적당히 포기하는 것이 좋을지도 모른다. (파스칼 키냐르의 이름을 딴 학회가 있을 정도이다)
“... 제 삶의 바탕을 어떻게 스스로 정의하겠습니까? 제 바탕은 침울, 독서, 음악, 에로스, 은둔 같은 것들로 나눠집니다. 인생의 모든 나이에서 저는 ‘고독-복구-황홀경-독서-글쓰기-새벽의 명상’(이것을 한 단어로 뭐라고 할지 모르겠습니다)이 꼭 필요했습니다. 새벽이 오기 전부터 정오까지의 시간 동안이요. 그러고는 반나절 동안 음악을 듣죠. 이건 매일같이 제가 들러야 하는 생명줄 같은 정류장입니다...” (p.131, 키냐르)
인터뷰에 실린 내용들도 역시 따라 잡기 어렵다. 그에게 던져지는 질문들의 구질, 그가 다시 던지는 대답들의 구속을 확인하기 어렵다. 이 시리즈의 다른 책들과 비교하여 많은 주석이 따라 붙은 것도 다 이유가 있다. 물론 주석을 읽는 것만으로 인터뷰이와 인터뷰어에 내재되어 있는 게임의 룰을 알아내는 것 또한 가능할 법하지 않다. 그러니 관전의 포인트를 파악하여 이야기할 수 없다.
“... 언어는 그 내부에서만 모순적입니다. 새의 등이 날개 속에 유폐되어 있듯 인간의 영혼은 언어 속에 유폐되어 있습니다. 언어는 자연의 지배에 속하는 요소가 아니지만 그게 없으면 우리는 죽은 자들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언어밖에 없을 때, 우리는 그 법의 유령들이라는 겁니다... 진실은 우리는 유령도 아니고 인간도 아니고 날개도 아니라는 겁니다. 우리는 공포와 황홀경에 뒤로 자빠지기 위해 만들어진 자들입니다.” (pp.156~157, 키냐르)
파스칼과 접촉하기 위하여 분투하는 이 마음의 정체를 정확히 모르겠다. 때로는 흥건하여서 빠져나오지 못하겠고, 때로는 토라져 입을 비쭉거리며 멀어지기도 하는 마음이다. 더듬거리며 정체를 파악하려는 마음이자 가득한 어둠 안에서 오히려 안전해지는 마음이다. 이해하고 싶다와 이해하고 싶지 않다 혹은 이해하고 싶다와 이해하지 않아도 좋다, 사이의 어디쯤에서 헤매는 마음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파스칼 키냐르 Pascal Quignard, 샹탈 라페르데메종 Chantal Lapeyre-desmaison / 류재화 역 / 파스칼 키냐르의 말: 수다쟁이 고독자의 인터뷰 (Pascal Quignard le Solitaire) / 마음산책 / 247쪽 / 2018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