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실즈 케일럽 파월 《인생은 한뼘 예술은 한줌》

오래 된 스승과 제자가 나누는 아무말 대잔치의 와중에...

by 우주에부는바람

『데이비드 : 자넨 프란 레보비츠의 글귀에 딱 맞는 모델 같아. “말하기의 반대말은 듣기가 아니다. 말하기의 반대말은 기다림이다.” 자네 말을 하고 싶어서 내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그래서 내가 하는 말에 진정으로 귀 기울이지 않아. 내가 바라는 건 그저 내 이야기를 들어달라는 거야. 내 이야기를 마치면 그 다음 자네 이야기로 넘어가는 거지...』 (pp.21~22)


데이비드 실즈와 케일럽 파월은 스승과 제자 사이이다. 물론 오래전 일이다. 하지만 여전히 스승과 제자 사이라는 관계에 변화는 없다. 쿵짝이 잘 맞는 사이라고 볼 수는 없다. 아니, 어떻게 보면 쿵짝이 잘 맞는 사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사사건건 상대방의 견해에 아니오, 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 쿵짝이 잘 맞는 사이 같지 않지만, 그처럼 사사건건 상대방으로부터 날아오는 시비에 아랑곳하지 않는 것을 보면 쿵짝이 잘 맞는 사이 같기도 하다.


『케일럽 : 경제 전문지에서는 저자들이 어떤 회사나 주식을 홍보할 때, 기사 말미에 해당 저자 또는 저자의 고용주 또는 가족이 해당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지 공시를 한다고 해요. 그래서 이해 갈등이 생겨도 투명하죠. 문학계도 그렇게 솔직해져야 해요. 문단이 문단을 칭송하고, 건설적인 비판은 없어요. 그러니 지겨운 책들도 엿 같은 칭찬 일색이죠.』 (p.84)


두 사람은 삼박 사일을 함께 하면서 아무 이야기나 나눈다. 책의 원제는 《I Think You're Totally Wrong : A Quarrel》 인데, 그러니까 너는 완전히 잘못 되었어, 라는 생각을 가진 두 사람이 나누는 말다툼쯤으로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제목 그대로 두 사람은 상대방의 말에 수시로 아니 내 생각은 그렇지 않아, 라고 말한다. 두 사람의 관계가 한때 스승과 제자였다는 사실, 두 사람의 나이차가 꽤 난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우리로서는 더욱 흥미롭다.


『케일럽 : 오늘날 많은 예술가들은 경험이 결여되어 있어요. 감옥이 아니라 은신처에 숨어 있기 때문이죠. 데이비드 마크슨은 뉴욕의 아파트에 틀어박혀 있고, 타오 린과 블레이크 버틀러는 컴퓨터에 코를 박고 있고, 데이비드 실즈는 학계에 은둔하고 있죠...』 (p.283)


제자는 때때로 오래전 학창 시절, 스승이 자신에게 던진 신랄한 쓴소리를 비난에 가까운 것이었다며 타박하다. 스승은 내가 그런 적이 있었나, 그건 일종의 비평이었겠지, 라며 너스레를 떨기도 한다. 문학의 자장 안에서 선생질이나 했던 데이비드 실즈를 케일럽 파월은 샌님 취급한다. 작가로서 유명하지 않지만 뚜렷하게 풍성한 경험을 가진 케일럽은 삶과 유리된 예술가의 행태들이 마땅치 않다.


『데이비드 : ... 우리가 서로를 공격하고 있다는 걸 보여줘야 해. 예술 대 인생. 실제로 우리가 두 개의 대척점에 서 있다고 생각해. 내가 삶에 관심이 없는 것도 아니고 자네가 예술에 관심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여태껏 우리가 살아왔던 삶의 방식을 격렬하게 방어해야 한다는 거야. 나는 이렇게 말해야겠지. “이제까지 타이어 한 번 갈아본 적이 없어도 괜찮아. 그렇지 않아?” 또는 “자네는 온갖 외국어를 할 줄 알고 여행도 그렇게 많이 다녔다지만, 나이 마흔 셋이 되도록 자네가 원하는 작가는 아직 되지 못했다니…놀라운 일이군”이라고 말할 수도 있어...』 (pp.326~327)


데이비드 실즈도 쉽사리 물러서지 않는다. 풍성한 삶과 풍성한 예술이 등치되는 것이 아님을 내내 주창한다. (데이비드 실즈의 다른 책들로 유추해보자면 그는 내용보다는 형식에 더욱 치중하는 편이다.) 그는 제자에 비해 여전히 성공한 작가 축에 들고, 그것을 대놓고 떠벌리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걸 불편해하지도 않는다. 적당한 선에서 스승은 제자를 갖고 노는 것 같기도 하지만, 제자는 또 그걸 개의치 않으니 뭐...


『케일럽 : 저로 말하자면 일부는 자유시장을 지향하는 사회주의자이고, 동시에 큰 정부를 지지하는 자유방임주의자, 한편으로 불가지론적 근본주의자예요. 저는 재정 적자에 반대해요. 사회주의는 보건과 교육에 효과적인 반면 식당과 자동차에서는 자본주의가 더 효과적이죠.』 (p.266)


아무말 대잔치를 들여다보는 것이 재미있는데, 때로는 혼란스럽다. 문학을 대하는 두 사람의 태도로 보자면 케일럽을 진보 쪽에 데이비드를 보수 쪽에 놓고 싶은데, 정치적으로는 케일럽이 보수 쪽에 데이비드가 진보 쪽에 서 있다. 한참 사회주의에 경도되어 있다가 느닷없이 소비에트 연합 붕괴라는 뉴스를 들어야했던 젊은 시절을 겪었음에도 여전히 이분법적 사고가 편한 탓이다. 한반도 평화가 정착되면 나아지겠지, 생각하기로 했다. 판문점 선언을 지지하는 마음을 여기 이렇게 또 보탠다.



데이비드 실즈 & 케일럽 파월 Daivd Shields & Caleb Powell / 인생은 한뼘 예술은 한줌 (I Think You're Totally Wrong : A Quarrel) / 이불 / 343쪽 / 2017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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