촘촘히 조사된 범죄의 기록이 방사선 모양의 거미줄처럼 독자를 가두어...
2000년 7월 1일, 일본 도쿄 롯본기에서 호스티스로 일하고 있던 스물 한 살의 영국인 처녀 루시 블랙맨이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녀는 루이스라는 친구와 함께 왔고, 루시의 실종을 경찰에 신고한 것도 루이스였다. 7월 2일에는 다카기 아키라라는 남자에게서 루이스에게 전화가 걸려온다. 루시가 치바의 한 종교 단체에 들어갔다고 그는 알려왔다. 하지만 그 이후 더 이상의 전화는 없었다.
“... 루시의 사연은 내가 단 한 번도 들여다보지 못한 인간의 내면이라는 측면을 건드렸다. 평범한 방바닥에 달린 낙하문을 따는 열쇠를 손에 넣은 것 같았다. 이 낙하문을 들어 올리자 망각의 영역에 있던 섬뜩하고 폭력적이며 기괴한 존재의 진실이 드러났다...” (p.28)
십여 일이 흐른 7월 13일, 루시의 아버지 팀이 일보에 도착하고 기자회견을 한다. 마침 일본에서는 G8 정상회담이 열릴 예정이었다. 수많은 기자들이 몰려와 있는 상태였고, 여느 때 같으면 그저 그런 사건들, 롯본기에서 일하는 수많은 젊은 외국인 여성 중 한 명의 실종 사건들 중 하나로 치부될 수 있었던 사건은 전세계로 알려진다. 일본 당국도, 영국 당국도 보다 신경을 쓰는 것처럼 행동한다.
“실종자 가족들은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두 배의 부담을 걸머진다. 처음에는 이 고난이 빚은 고통 때문이고 그다음은 그들에 대한 우리의 기대 때문이다. 우리는 그들에게 보편적 모습보다 한층 수준 높은 모습을 기대한다.
우리는 당연히 인간으로서 힘들어하는 주변 사람들을 도울 방법을 찾는다. 그런데 대부분은 알든 모르든 대가를 원한다. 그 대가란 그들의 무력하고 곤궁한 모습 앞에서 우월감을 느끼는 것이다. 팀은 자신의 고통과 공포심을 숨기고 정력적으로 활동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 때문에 사람들이 불편한 반응을 보인 것이다. 반면 제인 블랙맨은 주위에서 바라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제인은 고통을 마음껏 쏟아냈다. 어머니는 도움이 필요했고 도움을 받으면 진심으로 고마워했다. 덕분에 봉사자들은 자신들이 선의를 베푸는 사람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pp.243~244)
하지만 사건의 해결은 지지부진하였다. 일본 경찰은 흉악 범죄 해결에는 무능한 것처럼 보였고, 너무나 관료적이었다. 사건이 발생하고 칠 개월이 지난 다음 해 2월 9일 루시 블랙맨의 토막 난 사체가 발견되었다. 이미 조사를 진행하고 있던 용의자 오바라 조지의 별장 근처였고, 같은 해 4월 오바라 조지가 체포된다. 오바라 조지는 여러 건의 강간 및 살해 혐의로 재판을 받기 시작하였고, 2008년 최종적으로 종신형이 확정되었다.
“아무도 그 구멍의 정체를 모르면서도 윤곽은 알고 있었다. 그것은 사람 모양의 구멍, 루시를 데려가 해코지한 사람의 모습을 한 구멍이라는 사실을 다들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자가 분명 남자라는 것도 인지했다.” (p.248)
이 논픽션을 쓴 리처드 로이드 패리는 당시 일본에 주재하는 영국인 기자였다. 그는 당시 여느 다른 기자들처럼 이 사건에 접근하였다. 하지만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이 사건에는 무언가 좀더 커다란 어둠이 도사리고 있다고 생각했고, 십여 년 동안 사건을 추적한다. 그는 루시의 부모인 팀과 제인, 루시의 두 동생인 소피와 루퍼트를 비롯해 이들 가족의 친구들을 만났다. 그들의 일본에서의 활동과 영국에서의 활동을 샅샅이 들여다보았다. 동시에 범인인 오하라 조지의 모든 배경 또한 놓치려 하지 않았다. 오하라의 부모와 형제 관계 그리고 이 집안의 역사적 배경까지 살핌으로써 오하라의 현재를 유추하고자 했다. 그리고 재판의 전 과정을 스케치했다.
“어쩌면 이해해야 할 게 전혀 없을지도 모른다. 만약 오바라의 내면이 텅 비고 겉으로 보이는 게 다라면? 진실은 따분할지도 모른다. 실제로 더 할 말이 거의 없었다. 바로 이 공허가 오바라가 기를 쓰고 감추려던 가장 큰 비밀일지 모른다. 나는 그의 삶이 친한 인간 관계의 부재로 인해 완벽히 고립에 가까운 상태가 되었다고 극단적으로 정의했다. 그가 스스로 세상과 담을 쌓은 데에는 나름대로 고통스러운 이유가 있었겠지만 그 이유는 심해에 갇혔다... 오바라는 눈보라 치는 어둠처럼 다가와 그와 접촉한 이들의 삶을 시들게 했다. 이것이 오바라에 대한 진정한 평가였다. 그의 자아를 정밀 조사하고 판단하는 게 아니라 그가 타인에게 끼친 영향을 판단해야 했다.” (p.517)
이 촘촘한 조사, 그리고 이 방사선 모양의 기록들을 풀어내는 방식이 조화를 이루어서, 범죄 논픽션물이라는 장르의 흡입력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커다란 사건을 하나 가운데에 놓고, 그 사건을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 한 명 한 명의 내면을 지독할 정도로 들여다보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추리, 범죄, 미스터리, 스릴러 등의 장르에 현혹되지 않는 편이지만, 어쨌든 한 번 읽기 시작하였더니 빠져 나오기 힘들었다.
리처드 로이드 패리 Richard Lloyd Perry / 김미정 역 / 어둠을 먹는 사람들 (People Who Eat Darkness) / 알마시그눔 / 558쪽 / 2018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