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실즈 《문학은 어떻게 내 삶을 구했는가》

문학이라는 새장을 향해 도포되는 작가 특유의 시니컬한 스프레이 같은...

by 우주에부는바람

“나는 문학이 인간의 외로움을 달래길 바라지만, 그 무엇도 인간의 외로움을 달랠 수 없다. 문학은 이 사실에 대해서 거짓말하지 않는다. 바로 그 때문에 문학은 필요하다.” (p.231)


이런 말로 책은 끝이 난다. 그러니까 문학이 내 삶을 구했다는 것인지 구하지 못했다는 것인지 아리송했는데, 그러니까 결국 나를 구한 것은 문학의 진면목을 알아보는 나로 수렴되는 것이로군, 하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어중간하게 뻔하지만 또 그렇다고 아예 내쳐버릴 수도 없는 마지막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내게 글쓰기는 말더듬증과 단단히 읽힌 일이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지금도 그렇다. 글쓰기는 ‘나쁜 언어’를 ‘좋은 언어’로 바꿀 가능성을 대변했다/한다. 지금은 내가 말더듬증을 썩 잘 통제한다... 언어는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별 짓는 요소이므로, 나는 말을 더듬을 때면 진심으로 비인간화하는 기분이다. 나는 아직도 나 자신을 글로 씀으로써, 음, 존재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심리적 필요성을 느낀다. 그리고 역시 말더듬증 때문에, 쓰기와 읽기를 작가와 독자 간의 핵심적인 소통 방식으로 귀하게 여긴다. 내가 글이 대단히 내밀하기를 바라는 것은 이 때문이다...” (pp.41~42)


무지하게 사적인 콜라주로 이루어진 논픽션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책의 저자는 말더듬증을 가지고 있다. 말더듬증은 아니지만 어린 시절 아예 말의 문을 닫아걸었던 작가 파스칼 키냐르가 잠시 떠올랐다. 파스칼 키냐르의 (소설이라고 부르지만 소설이라고 할 수 있을까 언제나 회의하게 되는) 소설이 가지고 있는 콜라주의 형태라는 것이 말, 말문과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 소설은 내면에 접근하기 위해서 발명된 형식이었다. 이제 대부분의 사람들은 소셜미디어를 통해서 소통한다. 내가 아는 서른 살 미만의 사람들은 다들 놀라울 정도로 프라이버시 개념이 없다. 소설은 공예품이다. 골동품 애호가들이 그토록 맹렬하게 소설에 집착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예술은, 과학처럼, 전진한다. 형식은 진화한다. 형식은 문화를 위해서 존재하고, 형식이 죽을 때는 다 이유가 있다. 아니면 내가 그렇게 믿어야만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내게는 소설이 음울한 것이 된지 오래이므로......” (p.147)


영화를 비롯해 다양한 매체에 대한 품평을 저간에 깔고 있는 여러 글에서 그는 통제 가능한, 이야기에 치중하고 있는 소설에 대해 비관적인 것처럼 보인다. 소설의 다양한 역할을 골고루 앗아간 여러 매체들을 나무라지 않는다. 그는 그것을 받아들이는데, 그렇다고 해서 소설의 소멸을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그는 그저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소설이 가지고 있던 가지고 있다고 믿었던 형식의 소멸을 받아들일 뿐이다.


“책을 쓰기는 어렵다. 좋은 책을 쓰기는 무척 어렵다. 친한 사람들이 당신의 책을 어떻게 평가할지 걱정하면서 좋은 책을 쓰기는 불가능하다. 내가 일찌감치 깨달은 바, 당신이 자기 책을 가장 좋아해줬으면 하는 사람들은 당신의 책을...... 좋아하지 않는다... 당신을 잘 아는 사람들은 당신의 작품을 그 자신의 욕구라는 스크린을 거쳐서 보기 마련이다. 그들은 절대로 당신이 의도한 방식으로 읽어주지 않는다...” (pp.154~155)


작가는 주로 시니컬한데 그것은 통하는 사람에게는 아주 잘 통하는 스킬이다. 책의 여러 곳에서 피식피식 웃지 않을 도리가 없다. 문학을 이야기하지만 그것은 작가가 문학의 영역 안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그저 삶을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의 삶은 문학의 자기장 안에서만 작동하고 있고 그는 그것을 피하려고 않았을 뿐이다. 뭐 그래서 덕분에 그의 삶이 삶으로부터 낙오되지 않았을 수 있다.


“나는 이십대 내내 거의 무일품이었고, 열 달 동안 아버지 집 소파에서 잤다. 서른한 살에는 샌프란시스코의 필스버리 매디슨 & 스투로 법률회사에서 교정자로 일했다. 어느 사건에서든 나쁜 놈 쪽을 변호하는 회사였다. 변호사들은 자기 잃을 싫어했다. 나는 내 일이 좋았다. 회사에 있는 시간을 두 번째 소설을 마무리하는 데 쏟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급 직원들은 다들 나처럼 지루했기 때문에, 기꺼이 나를 위해서 초고를 인쇄해주고 한 쪽 한 쪽 타자해주었다. 우리는 ‘실즈 팀’이었다. 우리는 팩스 기계라는 신기한 물건도 발견했다. 어찌나 신나던지, 나는 누구보다 먼저 출근했고, 변호사들은 나더러 일벌레라며 고마워했다.” (p.184)


책의 어느 부분에선가 ‘아이러니는 자신이 갇힌 새장을 사랑하게 된 새의 노래다’라는 문구를 읽었다. 나는 우리의 삶이란 것이 아이러니로 가득하다고 여긴다. 우리는 억울한 심정으로 우리의 삶을 가두고 있는 세상에 사랑이라는 감정을 도포한다. 그것이 자신의 억하심정을 조금이라도 누그러뜨릴 수 있는 방법이다. 이 책은 어쩌면 자신을 가두고 있는 문학이라는 새장을 향해 도포되는 스프레이 같은 것이다.



데이비드 실즈 David Shields / 김명남 역 / 문학은 어떻게 내 삶을 구했는가 (How Literature Saved My Life) / 책세상 / 237쪽 / 2014 (2013)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리처드 로이드 패리 《어둠을 먹는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