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도 예술도 여행도, 지독한 철부지처럼 그렇게...
*2018년 3월 25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오한기의 소설집 《의인법》을 읽는데, 거기에 찰스 부코스키가 종종 등장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를 향하여 다른 나라 그리고 후대의 작가가 나름의 방식으로 흠모를 바치는 것 같다. 가능한 때마다 나 또한 찰스 부코스키에 대한 흠모의 마음을 비치고는 했다. 미투 운동이 거세게 진행 중이고, 그 흠모의 마음을 드러내는 것이 불편하기는 한데, 그것 참... 여하튼 스스로를 향하여 ‘강간범의 탈을 쓴 샌님’이라고 하니 믿어보기로 한다. 여하튼 찰스 부코스키는 최소한 솔직하다, 고은과는 그런 점에서 다르다, 고 생각한다.
“거의 모든 것에 무관심한 남자가 어떻게 글을 쓸 수 있을까? 글쎄, 나는 쓸 수 있다. 나는 그것들을 제외한 나머지에 대해 글을 쓰고 또 쓴다.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떠돌이 개, 남편을 살해하는 아내, 햄버거를 씹는 강간범의 생각과 기분, 공장 근무자의 생활, 길바닥의 삶, 빈자와 불구자와 미치광이의 방 같은 하찮은 것들을 쓴다. 나는 그런 하찮은 것들을 많이 쓴다...” (p.54)
책은 그가 1978년 연인이던 린다 리와 함께 하는 유럽 여행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프랑스 출판사의 제안을 받아들인 부코스키는 프랑스의 파리와 니스 그리고 독일의 만하임, 하이델부르크, 함부르크 등을 여행한다. 방송사와 인터뷰를 하고 티비에 출연하기도 한다. 이러한 순간을 포함하여 대부분의 시간 동안 부코스키는 술을 마시고 있거나 술을 마신 후에 취해 있다.
“나는 안에서 다시 붙잡혔다. 오스트리아 방송국에서 나온 여기자였다. 탁자들, 조명들, 나는 자리에 앉았다. 사람들은 항상 시詩 이상을 원했다. 몰지각한 짓이다. 시는 최선을 다해 말하지 않나. 너무 많은 작가들이 교사가 되었고, 권위자가 되었다. 그리고 타자기를 잊어버렸다.” (pp.65~66)
책에는 여행 중에 쓴 에세이 그리고 87장의 사진과 11편의 시가 실려 있다. 찰스 부코스키 특유의 기행은 여행 중에도 여전하다. 미국 보다 앞서 아니면 미국 보다 더욱 크게 환호를 보낸 유럽에서의 여행이지만 찰스 부코스키는 여행 자체에 호의적이지는 않다. 이딴 여행을 왜 하고 있는 거고, 이딴 이야기를 왜 하고 있는 거고, 이딴 사람들과 왜 대화를 하고 있는 거야, 하는 심정인 듯도 하다.
“... 예술가는 희미한 자신의 체취를 남기고 떠나는데, 혹자는 그것을 불멸성으로 칭한다. 물론 솜씨 좋은 예술가일수록 더 고약한 악취를 남긴다. 색깔에, 소리에, 인쇄된 종이에, 석재에, 어떤 것에든. 하지만 이 불멸성은 생존한 자들의 잘못이다. 생존한 자들이 그 악취에 매달리고 흠모하는 탓이다. 예술가들은 잘못이 없다. 예술가들은 그것이 불멸성에 속하지도 않을뿐더러 삶에도 속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그들은 그저 시도한 것에 만족하고 다음 운을 시험할 뿐이다.” (pp.116~117)
그런 여행이라는 행위에 대해 보내는 태도는 일견 그가 예술에 대해 가지는 시선과 얼핏 일치하는 면을 보인다. 그러니까 대단하지 않다. 예술가도 예술도 예술가의 예술도 모두 그렇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소설을 쓰는 일이었고, 소설을 써서 인기를 끌었더니 다른 몇몇 좋은 점들이 발생했고, 그 점들을 활용하여 실컷 술 마시고 여자를 만났고, 그것들에 대해서 때때로 자랑했다. 그것이 찰스 부코스키였다.
“... 미술관에 들어서면 항상 내 감성은 숨통이 막혔다. 형편없는 영화가 차라리 더 나았다. 위협감이 훨씬 덜하니까. 위대하게 느껴지지도 보이지도 않는, 남들이 위대하다고 말하는 것들 앞에서 순종하고 싶지는 않다. 훌륭한 예술가는 많지 않은데 벽과 복도는 어떻게든 채워야 한다. 무용한 책들이 즐비한 도서관에 가서 책장 사이에 묵묵히 앉아 있어도 똑같은 기분이 든다.
미술관 밖은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불을 먹는 사람, 칼을 삼키는 사람, 뱀 쇼를 하는 사람, 못이 박힌 침대에 오른 사람, 가수, 별 희한한 미친 짓을 하는 괴짜들, 뻔뻔한 사람, 딱한 사람, 굶주린 사람, 자해하는 사람 천지였다. 예전에 공장에서 일하던 시절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들었다...“ (p.155)
그에게서 겸손함을 찾기란 불가능하다. 삶도 그렇고 예술도 그렇고 그는 배배 꼬인 시선으로 바라보는데, 그것에는 살짝 위악적인 면도 없지 않지만, 대부분은 솔직히 그렇게 생각는 것 같다. 그러니 작가의 묘비명에 적힌 ‘Don't try'라는 문구는 이해 가능하다. 삶에 혹은 자신이 추구하는 예술에 목을 매려는 사람들에게 ’너무 애쓰지 마‘라고 말하며 담배 연기를 내뿜고 병맥주를 들이키는 그를 떠올려본다.
찰스 부코스키 Charles Bukawski / 마이클 몽포트 사진 / 셰익스피어도 결코 이러지 않았다 (Shakspeare Never Did This) / 자음과모음 / 227쪽 / 2018 (19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