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버 색스 《의식의 강》

유전자가 각인된 후대를 남기듯이 죽음 이후에도 남겨지는 글...

by 우주에부는바람

《의식의 강》은 올리버 색스가 죽고 2년이 지난 다음 나온 책이다. 세상을 떠나기 2주 전쯤 책에 대해 말했고 그것을 남겨진 사람들이 잊지 않고 엮어 만든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동식물이 자신의 유전자가 각인된 후대를 남기듯이 작가는 자신의 글을 남긴다. 책의 많은 부분에서 작가는 자신이 영향을 받은 다윈의 진화론을 언급하는데, 어쩌면 그의 글 자체가 그 대상이 될 수도 있겠다.


“‘영겁의 세월’이라는 개념과 ‘하나하나는 작고 지향성이 없지만, 축적되면 새로운 세상(엄청나게 풍부하고 다양한 세상)을 만들 수 있는 변화’의 힘은 중독성이 있었다. 진화론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신의 계획에 대한 믿음이 제공하지 못한) 심오한 의미와 만족감을 제공했다. 베일에 가려졌던 세상에는 이제 투명한 유리창이 생겼고, 우리는 그 유리창을 통해 생명의 역사 전체를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 (p.35)


다윈의 진화론이 우리에게 미친 전인류적인 영향도 영향이지만, 올리버 색스는 아마도 다윈이 사물을 바라보는 태도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생각된다. 몇 초 몇 분 몇 시간이 아니라 몇 달 몇 년에 걸친 관찰 그리고 그 관찰에 대한 기록 그리고 기록에 대한 분석 작업이 있어야 가능한 일들을 해낸 다윈처럼 올리버 색스 또한 수 년에 걸쳐 신경병증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작업을 수행했다.


“... 식물들은 우리가 시각, 청각, 촉각이라고 부르는 것들을 모두 보유하고 있다. 식물은 뭘 해야 할지 알고 기억한다. 그러나 뉴런이 없는 식물은 동물과 같은 방식으로 학습하지 않고, 다윈이 말한 장치device와 광범위한 화학물질 세트에 의존한다. 이런 것들에 대한 청사진은 식물의 유전체genome에 코딩되어 있으므로, 식물의 유전체는 종종 인간의 유전체보다 크다.” (p.81)


올리버 색스는 (대중을 위한) 전문 분야 글쓰기에 있어서 모범적이라고 할 수 있다. 며칠 전 세상을 떠난 스티브 호킹의 《시간의 역사》와 같은 책은 전세계적으로 천만 부 이상이 팔렸지만 그중 6.6% 정도만이 그 책을 읽었을 따름이고, 그래서 만들어진 호킹 지수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아마도 올러비 색스의 호킹 지수는 매우 높을 것이다. 그러니까 그의 책은 어쨌든 많은 이들이 읽고 이해하는 것이 가능한 범주 내에 있다.


“인간의 기억은 오류를 범할 수 있고 취약하며 불완전하지만, 굉장히 유연하고 창의적이다. 출처에 대한 혼동과 무차별성은 역설적으로 큰 힘을 발휘한다... 출처에 무관심한 우리의 뇌는 ‘우리가 읽고 들은 것’과 ‘타인들이 말하고 생각하고 쓰고 그린 것’을 통합하여, 마치 1차기억인 것처럼 강렬하고 풍부하게 만든다. 덕분에 우리는 타인의 눈과 귀로 보고 들을 수 있고, 타인의 마음속에 들어갈 수도 있으며, 에술, 과학, 종교가 포함된 문화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리하여 우리는 공동정신common mind에 참여하고 기여함으로써 보편적인 지식연방commomwealth of knowledge을 구성하게 된다. 기억은 개인의 경험뿐만이 아니라 많은 개인들 간의 교류를 통해 형성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p.134)


우리가 우리의 일상을 토대로 하여 이해할 수 있거나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 나누는 많은 행동들에 대해 올리버 색스는 보다 넓은 지평을 제공하였다. 예를 들어 유명 작가들의 표절에 대해 이해할 수 없었던 부분을 위와 같은 문장이 들어가 있는 챕터를 통해 조금 이해해볼 여지가 생겼다. 물론 그러한 나의 이해에 앞서 표절의 지목자로 꼽힌 작가가 이 부분을 읽고 받아들이면 좋겠다고 여긴다.


“첫째, 흉내는 대상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으로, 가능한 한 정확한 사본duplicate을 만들기 위한 시도다. 따라서 누군가의 얼굴 표정을 정확히 재현하거나 앵무새가 다른 새의 소리를 정확히 모사하는 것은 흉내에 해당한다. 둘째, 모방도 대상을 재현하지만, 똑같이 따라 하지는 않는다. 예컨대 부모의 행동을 따라 하는 자녀들은 모방을 하는 것이지 흉내를 내는 것은 아니다. 셋째, 미메시스는 모방에 표상representation이라는 차원을 첨가한다. 그리하여 흉내와 모방을 통합하여 새로운 차원으로 승화시키며, 하나의 사건이나 관계를 재현하는 동시에 표상한다.” (p.148, 멀린 도널드의 《현대 정신의 기원》 재인용)


어쩌면 이제 작가의 새로운 책은 더 이상 없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는 너무 많은 노트를 남겼을테니.) 국내에 출간되어 있지만 아직 읽지 않은 책도 많고, 아예 아직 번역되어 있지 않은 책도 있을 것이라 여겨지는데 그것은 다행스럽다. 그의 책에는 전문 용어들이 적잖이 등장하지만 모르는 것은 모르는 채로 넘어가도 크게 무리가 없다. 그렇게 받아들여지도록 쓰는 일은 사실 쉽지 않다.



올리버 색스 Oliver Sacks / 양병찬 역 / 의식의 강 (The River of Consciousness) / 알마 / 249쪽 / 2018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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