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일치를 인정하지 않는 사진과 불일치의 여지를 밀어붙이는 텍스트 사이에서
롤랑 바르트의 글 모음집이다. 롤랑 바르트에 의한 롤랑 바르트의 프랑스 남서부에 대한 글에서 시작하여 1968년과 1969년에 모로코의 탕헤르와 라바트 등의 지역에서 롤랑 바르트에게 포착된 것들에 대한 롤랑 바르트의 단상 모음, 그리고 1979년 8월 24일부터 9월 17일 사이 롤랑 바르트가 겪은 파리 혹은 파리에서의 롤랑 바르트의 몇몇 일상에 대한 글들로 마무리된다.
“... 프랑스에서 마을이란 항상 모순을 내포한 공간이 아니던가? 마을이란 면적이 좁으며, 중심 지역이 있으면서도 또 아주 멀리까지 뻗어 있다. 내가 사는 마을은 아주 마을다운 마을이라서 광장도 단 하나, 성당도 하나, 빵집도 하나, 약국 하나 그리고 식품점 두 곳이 있다(이제는 가게라기보다 무인 식품점이라고 말해야 하리라). 하지만 인문지리의 확실한 법칙에서 벗어나는 변덕의 일종으로, 이발소 두 곳과 의원 두 곳이 있다. 프랑스가 절도節度의 나라라고? 차라리 이렇게 말하자 - 이는 국가 생활의 모든 단계에 걸쳐 하는 말인데 - 그 비율이 복잡한 나라라고.” (pp.14~15)
롤랑 바르트의 글이 시작되기에 앞선 편집자인의 글에 따르자면 (책은 그가 죽고 칠년 여가 지난 다음에 출간된 것이다) 책에 실린 것은 ‘정확히 말해 이 글은 일기가 아니고, 롤랑 바르트의 일상 속에서 실제로 별도의 조각들을 이루는 내용을 이야기로 써 남긴 유일한 글이다.’ 지면 등에 발표를 염두에 두고 작성된 것일 수도 있지만 책으로 엮을 생각을 했을 것 같지는 않다.
『계단을 내려가면서 나는 무스타파라는 남자(매력적이고 인물이 훤하고, 열정적이고, 정직한 사람)에게 내 열쇠를 건네받는 동시에 내가 신을 샌들을 건넨다(”이것 좀 들고 있어봐“) 그러고 나서 그가 그 신발을 아주 가져버렸다는 걸 알게 된다(빌려준다는 건 아예 없다).』 (p.78)
오래 전 나만의 사진기를 갖게 되었을 때 그것을 들고 돌아다녔다. 나는 마구잡이로 찍고 그것들을 모니터에 펼쳐 놓고 그 재현된 순간들을 바라보면서 텍스트로 만드는 작업을 했다. 그것이 소설의 배경 묘사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사진기를 들고 돌아다니지 않는다. 물론 스마트 폰은 들고 다니지만 마구잡이로 찍거나 하지 않는다. 지금은 그냥 눈으로 보고 내가 보지 못한 것까지를 포함한 텍스트를 만드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당나귀에 올라 탄, 젤라바 입은(이쪽으로 등을 보이고 있는) 한 사람의 평화, 이따금씩 시골에서 되풀이되는 기호.“ (p.147)
책에 실린 글들은, 특히 모로코에서의 그것들은, 그야말로 조각들이다. 그 조각들은 꿰매지지 않고 그러기를 바라고 있지도 않다. 어떠한 의도도 배제된 채 혼재되어 있다. 롤랑 바르트는 사진에 대한 책을 쓰기도 했는데, 어쩌면 그에 앞서 이 조각들이 그를 충동질했을 수도 있겠다 싶다. 불일치를 인정하지 않는 사진과 불일치의 여지를 밀어붙이는 텍스트 사이의 불화에서 롤랑 바르트는 살짝 사진의 편인지도 모른다.
“어제, 팔레트에서 비올레트와 함께 저녁을 먹었다. 우리 옆자리에는 흑인 남자 혼자 저녁을 먹고 있었다. 조촐하고 조용하고 점잖은 사람이었다. 공무원인가? 그는 후식으로 요구르트를 먹고 베르벤 잎차 한 잔을 마셨다. 저녁나절 날씨는 후끈 더웠고, 거리는 사람들과 차들(괴물 같은 오토바이족들의 행렬)로 가득했다. 나는 배은망덕하게도, 열한 시쯤 플로르 카페로 가서는 밤 시간을 계속 보냈다. 좀 미숙아 같은 웬 녀석이 내 곁에 와 앉더니 바로 말을 걸었다. 짜증이 나서, 나는 신문만 뚫어지게 파고들었다. 한갓지게 신문 읽는 것도 퍽이나 힘들다.” (p.185)
책의 말미, 박상우의 해설에 롤랑 바르트의 ‘중립 미학’이 언급된다. “작가는 사물에 대한 모든 판단과 해석을 중지하고 사물 자체를 있는 그대로 보여줄 때, 즉 사물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제시’할 때 그 사물은 역설적이게도 블랑쇼의 지적처럼 ‘가능한 모든 의미의 깊이를 부른다’”라는 것이다. 사실 책을 들여다보고 있어도 많은 것을 보지 못했지만 그것은 또 그것대로의 보여짐이라고 여기기로 했다.
롤랑 바르트 Roland Barthes / 임희근 역 / 소소한 사건들 현재의 소설: 메모, 일기 그리고 사진 (Incidents) / PHOTONET / 213쪽 / 2014 (19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