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버 색스 《온 더 무브》

천 권의 일기와 천 권의 노트에서 획득된 그의 일생에 잠시 동기화활 수

by 우주에부는바람

“나는 이야기꾼이다. 좋든 나쁘든, 그렇다. 이야기를 좋아하는 경향, 서사를 좋아하는 경향은 언어 능력, 자의식, 자전기억autobiographical memory과 더불어 인류의 보편적 특성이 아닐까 생각한다... 평생에 걸쳐 내가 써온 글을 다 합하면 수백만 단어 분량에 이르지만, 글쓰기는 해도 해도 새롭기만 하며 변함없이 재미나다. 처음 글쓰기를 시작하던 거의 70년 전의 그날 느꼈던 그 마음처럼.” (p.466)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 이런 문장이 실려 있다. 《온 더 무브》는 1933년 영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신경학 의사로 활동하면서 자신에게 일어났던 병증을 포함하여 수많은 병례사를 책으로 남긴 올리버 색스의 자서전이다. 그는 이 책을 마무리한 다음인 2015년 초에 자신의 안구 흑색종이 간으로 전이된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같은 해 책이 출간되었고, 2015년 8월 30일 숨을 거두었다.


“... 나를 특히 매료시킨 것은 감각기관의 생리학이었다. 우리는 어떻게 색과 입체감과 움직임을 보는가? 어떻게 어떤 것을 알아보는가? 우리는 어떻게 이 세계를 시각적으로 이해하는가? 나는 시각편두통을 겪으면서 일찌감치 이런 의문을 품어왔다. 눈부신 지그재그 모양이 나타나는 전조aura 증상 말고도 편두통이 일어나는 동안 색이나 입체감이나 움직임을 지각하는 능력을 상실했고, 심지어 어떤 것을 알아보는 능력까지 상실했기 때문이다. 시력이 내 눈 앞에서 파괴되고 해체되었다가는 바로 몇 분 만에 재형성되고 복원되는 현상은 몹시 무서웠지만 또 무척이나 흥미로웠다.” (p.22)


자신의 젊은 시절을 포함한 전 생애에 대한 작가의 상세한 서술을 읽으며 고개를 갸우뚱거리지 않을 수 없었는데 책의 말미에 스스로 밝히고 있는 사실에 이르러서야 멈출 수 있었다. 그러니까 그에게는 ‘열네 살 때부터 쓰기 시작한 일기장’ 1,000권이 있었고, 또한 ‘베스에이브러햄병원의 환자 500명, 작은자매회의 입소자 300명, 브롱크스주립병원의 입원 및 재래 환자 1,000명’을 진료하는 동안 작성한 공책 1,000권도 가지고 있었다.


“루리아는 신경심리학neuropsychology의 창시자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학자다. 하지만 그는 사람이 살아 있는 풍부한 병례사들이 자신의 탁월한 신경심리학 논문들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믿었다. 고전적 접근법, 과학과 이야기를 결합시키고자 했던 루리아의 노력은 곧 나의 노력이 되었다...” (p.218)


그는 신경학 분야의 의사로 시작하였지만 단순히 생리적 차원을 벗어난 환자들의 여러 양태에 대한 연구로 나아갔고, 그것을 대중들도 읽을 수 있는 하나의 글로 만들어내는 데에 성공했다. 그가 아니었다면 결코 알지 못했을, 알았어도 믿지 않았을 수많은 사례들을 이제 우리는 사실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고, 어쩌면 이러한 인정과 관심이야말로 신경학 분야의 발전에 두툼한 도움이 되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때로는 신경에 손상을 입은 뒤 기억과 의식 사이에 해리解離가 일어나 암묵지식(비서술지식)이나 암묵기억(비서술기억)[행위나 기술 및 조작에 대한 지식 또는 기억으로, 언어로 서술하기 어려워 수행을 통해 보여줘야 하는 기억-옮긴이]만 남는 경우도 있다. 기억상실증이 일어난 내 뱃사람 환자 지미에게는 케네디 암살에 대한 외현기억(서술기억)[사실이나 사건에 대한 기억-옮긴이]이 전혀 남아 있지 않아 내가 20세기에 암살된 대통령이 있느냐고 물었을 때 이렇게 대답했다. “아니요, 제가 아는 바로는 없습니다.” 하지만 내가 “가정을 해보죠. 어쩌다가 나는 알지 못했지만 대통령 암살 사건이 발생했다면, 그 장소는 어디였을까 한번 추측해보시겠어요? 뉴욕, 시카고, 댈러스, 뉴올리언스, 샌프란시스코, 이 가운데 어디일까요? 하고 물으면 한 번도 틀리지 않고 댈러스라고 ‘추측’할 수 있었다.』 (p.447)


물론 그의 글쓰기가 꽤 대중적이기는 하지만 그의 학문적 영역 자체가 대중적일 수는 없다. 그래서 책에 등장하는 어떤 부분은 이해하기 어렵기도 하다. 하지만 어찌되었든 한 걸음 그쪽으로 다가서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은 역시 그의 글쓰기가 대중적이라는 사실을 반증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니까 《신경다윈론》이라는 책을 펴낸 (올리버 색스가 천재라고 인정하고마는) 에덜먼의 아래와 같은 관점에 큰 관심이 생기고 만다.


“... 에덜먼은, 뇌에서 기능을 수행하는 진짜 ‘기관’은 수백만 개 신경세포들이 뭉친 신경세포 집단으로 구성되며 그것이 더 큰 단위 또는 ‘지도’로 배열된다고 본다. 이 지도들이 상상할 수 없이 복잡하나 언제나 어떤 의미를 담은 패턴으로 끊임없이 대화를 주고 받으면서 분 단위 또는 초 단위로 변화한다... 우리가 성장하고 살아가는 과정에서 각자의 감각기관들은 세계의 표본을 수집하며 이것으로부터 뇌에서 지도가 형성된다. 그런 다음 성공적인 지각 활동에 해당하는 지도들이 선택적으로 강화되는 과정이 진행된다... 에덜먼은 여기에서 더 복잡한 신경계에서만 나타나는 통합 활동에 대해 논하는데, 그는 이를 ‘재입력 신호법reentrant signaling'이라고 명명했다. 그의 설명을 풀어쓰자면, 가령 의자를 지각하는 행위에는 우선 활성화된 신경세포 집단들이 동기화되면서 하나의 ’지도‘가 만들어지고, 그런 다음 시각피질 전 영역에 흩어져 있던 다수의 지식들이 한 번 더 동기화된다. 즉 의자의 지각 범주(크기, 모양, 색깔, 다리의 형태, 그리고 안락의자, 흔들의자, 아기 의자 같은 다른 의자들과의 관계 등)에 따른 지도화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의자의 특성‘에 대한 풍부하고 유연한 지각이 획득됨으로써 우리는 수많은 종류의 의자를 보면 즉각 의자라고 알아볼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지각 일반화는 수시로 업데이트되는 역동적인 활동이며, 이 활동은 무수한 세부 정보를 쉬지 않고 능동적으로 통합시키는 능력이 좌우한다.” (pp.440~442)


올리버 색스의 책 몇 권을 읽었고 많은 책을 아직 읽지 못했다. 《깨어남》과 《편두통》은 곧 사서 읽을 생각이고, 책장 어딘가에 있는 《색맹의 섬》을 찾아볼 생각이다. 책을 읽으며 자신이 의미를 두고 있는 학문에 평생 관심을 가졌고, 그것을 글로 쓰는 일을 멈추지 않았으며, 모터사이클을 사랑하였고, 젊은 한 시기에 변형된 형태의 역도에서 지역 신기록을 수립하였던 그의 일생에 잠시 동기화할 수 있었다.



올리버 색스 Olive Sacks / 이민아 역 / 온더 무브 (On The Move) / 알마 / 481쪽 / 2016, 2017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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