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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Jul 29. 2024

켄 리우 《은랑전》

우리가 알고 있는 것들이라고 알고 있는 것들의 저 너머...

  “한 사람의 작가로서, 나는 상상할 수 없는 미래의 모든 거주자를 만족시킬 집을 짓는 것은 힘에 부칠뿐더러 답답하고 막막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보다는 차라리 나 자신이 현실과 언어로 지은 인공물 사이의 공감대에 위로받으며 아늑하고 평온하다고 느끼는 집을 짓는 편이 훨씬 더 낫다.

  그럼에도, 내 경험에 비춰 보면 소통하려는 의도가 가장 약할 때 내놓은 결과물에 오히려 해석할 여지가 가장 많았고, 독자에게 위안을 전하려는 배려가 가장 적을 때 도리어 이야기를 자기 집으로 삼는 독자들이 가장 많았다. 순전히 주관적인 것에만 집중할 때 비로소 상호 주관적인 것을 얻을 기회가 생긴다.” (p.10, 〈서문〉중)


  「일곱 번의 생일」

  일곱 살의 나, 마흔아홉 살의 나, 343세의 나,―“이제 이 행성에는 3000억이 넘는 인간의 의식이 거주한다. 그들은 다 합쳐도 옛 맨해튼보다 더 작은 데이터 센터 수천 곳에 모여 산다. 외딴 정착지에서 육신을 지니고 살아가기를 고집하는 소수의 완고한 거부자들을 제외함녀 지구는 이미 야생 상태로 돌아갔다.(pp.30~31)―2401세의 나, 16807세의 나, 117649세의 나, 823543세의 나가 등장한다. 그리고 일곱 살의 나부터 마지막의 나까지 엄마를 떠올린다. 


  「메시지」

  제임스는 외계인의 도시의 마지막 탐험을 시도하는 역할을 하는 자이다. 그의 탐험이 끝나면 행성은 인간이 살 수 있는 행성으로 거듭나기 위한 테라포밍 작업에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이번 탐사를 제임스는 딸 매기와 함께 하고 있다. 전처인 로런이 더 이상 매기를  돌볼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서먹한 부녀 사이는 낯선 외계 행성에서 더욱 심하지만 탐험의 과정에서 더욱 탄탄하게 구축된다. 어느 한 명의 죽음 앞에서...


  「맥스웰의 악마」

  혼령과 양자 역학의 결합이라고 해야 할까. 죽은 혼령과 연결될 수 있는 오키나와 출신의 일본인이 전쟁 중 겪게 되는 비참한 과정이 자세하게 묘사되고 있다.


  「환생」

  ”통합된 개인이란 전통적인 인간 철학의 오류입니다. 사실, 그것은 갖가지 미개하고 낡은 관습의 토대입니다. 예를 들어 범죄자는 하나의 육체를 공유하고 그 안에 함께 거주하는 여러 명의 개인 가운데 한 명에 지나지 않습니다. 살인을 저지르는 남자는 여전히 좋은 아버지이자 남편이고, 형제이며, 아들입니다. 그리고 살인을 저지를 때의 그 남자는 딸을 목욕시킬 때나 아내에게 입을 맞출 때, 누이를 위로할 때, 어머니를 돌볼 때의 그 남자와 다른 사람입니다. 하지만 인류의 해묵은 사법 제도는 그 남자들 모두를 무차별적으로 처벌하려 하고, 모두 하나로 묶어 심판하려 하며, 모두 다 함께 투옥하려 하고, 심지어는 모두 다 죽이려고까지 합니다. 집단 처벌이지요. 이 얼마나 야만적입니까! 얼마나 잔인합니까!“ (pp.140~141) 환생은 환생이되 외계인에 의한 타의적 환생의 개념을 차용하여 소설을 만들었다. 우리 안의 나쁜 부분만을 칼로 도려내듯 없애고 다시 태어나게 만든다면, 그렇게 만들어진 우리들은 나쁜 사람이 아니게 될 것인가...

 

  「은랑전」

  무협과 정의의 만남... 재질을 인정받아 납치되고 수련을 통하여 고수가 된 다음 정의 실현을 위하여 살인을 명 받았으나 그 명을 거역함으로써 정의를 실현하려는 은랑의 이야기이다.


  「혼령이 돌아오는 날」

  외계 행성에 도착한 우주선이 지구로 돌아가지 못하는 바람에 그 행성에서 태어난 오나는 지구에서 가져온 물건을 가지고 외계 행성 탐험에 나섰다가 정신을 잃는다. 그리고 삽 모양을 가졌다고 묘사되는 그 물건이 어떻게 흘러 흘러 외계 행성에 오게 되었는가를 짚어준다. 그리고 그 삽에 반응한 외계 행성의 광경으로 소설의 마지막을 삼는다.


  「추모와 기도」

  사고로 죽은 딸에 대한 추모를 가로막고 슬픔에 장막을 씌우는 다종 다양한 알고리즘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미래의 이야기라기보다는 바로 지금의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비잔티움 엠퍼시움」

  ”... 가상현실이라는 신흥 매체는 형태가 정해지지 않은 찰흙 같아서 잠재력과 가능성이 가득했고, 희망과 탐욕을 추진력으로 삼았으며, 모든 것을 약속하는 동시에 아무것도 보장하지 않았고, 아직 있지도 않은 문제를 찾아 헤매는 기술적 해법이었다. 서사성과 유희성, 어떤 종류의 쾌감이 궁극적으로 우세할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pp.294~295) 분쟁 지역의 처참한 현실을 가상현실 체험으로 몰입감 가득하게 느끼게 된다면... 그것을 통한 분쟁의 해결 가능성이 높아질 것 같지만 소설을 보면 그렇지도 않다. 가상현실과 블록체인의 결합이라는 기상천외의 방식이 보여지는데 꽤나 복잡하다.

 

  「진정한 아티스트」

  ”하이 콘셉트 영화의 씨앗을 손에 넣은 빅 세미는 인터넷 검색 통계에서 수집한 최신 유행 밈을 고전 영화 데이터베이스에 증강 필터로 적용해 더 많은 무작위 요소를 추출한 다음, 이를 이용해 간략한 플롯을 생성했다. 그러고 나면 그 플롯을 토대로 전형적인 캐릭터와 전형적인 대사를 이용해 간단한 영화를 만들었고, 그 결과물로 시사회를 열었다.“ (p.358) 이렇게 시작된 영화 창작 AI라고 할 수 있는 빅 세미의 활동은 결국은 ’예술을 공학‘으로 바꾼다. AI가 노래를 만들고 가사를 붙이고 그림을 그리는 것은 이미 가능한 사회이니, 소설을 미래 이야기로 받아들일 수 없다.


  요람발(發) 특별 기고 「은둔자―매사추세츠해(海)에서 보낸 48시간」

  지구의 모든 도시들은 물에 잠겼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구를 떠났다. 물에 잠긴 도시 위에 수상 가옥 혹은 잠수형 수상 가옥을 가지고 있으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고, 물에 잠긴 과거를 관광 삼아 돌아보려는 이들이 있을 뿐이다. 소설에는 ’금성의 발렌티나 우주 정거장에 있는 JPMCS(JP 모건 크레디트 스위스) 은행에서 임원‘으로 일했던 에이사가 사직서를 제출하고 지구로 돌아와 쓴 『표류』에서 발췌한 부분이 종종 등장한다. ”우리는 우리가 누군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는 답을 알아내려는 노력을 결코 멈추지 않는다.“ (p.393)


  「회색 토끼, 진홍 암말, 칠흙 표범」

  이것은 그러니까 마치 유비, 관우, 장비가 주인공인 삼국지의 변형된 이야기인 것만 같다. 유비가 회색 토끼...


  「폭풍 너머의 추격전: 민들레 왕조 전쟁기 3부 『가려진 옥좌』에서」

  켄 리우는 ’민들레 왕조 연대기‘ 1부 《제왕의 위엄》이 번역 출간되어 있다. 책에 실린 이야기가 그 연대기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 것인지를 알지 못한다.


  「잘라내기」

  경전 혹은 성전을 기술하고 서술하는 방식으로 행하는 종교적 의례가 아니라 그것을 잘라내는 방식 그러니까 성전의 일부를 잘라내는 방식으로 행해지는 의례를 떠올리면 된다. ”그리하여 해마다 승려들은 여러 차례 토론을 거쳐 성전에서 어떤 구절을 추가로 잘라낼지 합의한다. 그렇게 잘라낸 양피지 조각은 신들에게 바치는 제물로서 불태워진다.“ (p.498)



켄 리우 Ken Liu / 장성주 역 / 은랑전 (The Hidden Girl and Other Stories) / 황금가지 / 501쪽 / 2024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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