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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Jul 29. 2024

존 어빙 《가아프가 본 세상》

극단의 딜레마와 이율배반으로 가득한 극치의 플롯과 캐릭터...

  “에필로그는 단순한 시체 확인이 아니다. 에필로그는 과거를 청산한다는 형태로 사실은 우리들에게 미래에 관해서 하는 경고이다.” (p.347, 2권)


  모두 열아홉 개의 챕터로 이루어진 소설에서 열아홉번 째 챕터인 〈가아프 이후의 삶〉은 소설의 에필로그에 해당한다. 소설의 화자인 가아프를 낳은 제니 필즈도, 그리고 가아프 자신도 떠난 다음 남겨진 이들의 이야기이다. 소설을 모두 읽은 즈음인 그때, 에필로그에 등장하는 몇 페이지만으로도 소설 하나쯤은 너끈하게 쓸 수 있을 것이야, 라고 나는 탄식했는데, 소설은 그만큼 나무랄데없이 흥미진진하였고, 여지없이 흥미로운 인물들로 가득하였다. 


  “그리하여 자기 나름대로의 의지력을 지녔던 훌륭한 간호사와, 선회 포탑의 사수가 최후로 발사한 씨앗으로부터 가아프가 이 세상에 태어나게 되었다.” (p.46, 1권)


  극심한 부상으로 정신이 없는 가아프를 통해 자신의 의지에 따라 아버지 없는 아이를 잉태한 제니 필즈와 그렇게 태어나 소설가가 된 소설의 화자 가아프가 아니어도, 가아프의 아내인 헬렌이든 가아프의 살아남은 자식인 던컨이나 제니이든, 가아프의 자서전을 쓴 도널드 휘트콤이든, 제니 필즈를 도왔던 성전환한 미식 축구 선수인 로버타이든, 엘렌 제임스파의 기원이라 할만한 성폭행 피해자 엘렌 제임스이든 누구든 소설의 주인공으로 삼을만한 캐릭터를 타고났다.


  “가아프는 두번째 소설을 집어치우고 ’두번째‘ 두번째 소설에 착수했다. 앨리스와는 달리 가아프는 참된 작가였는데, 그 이유는 그녀보다 글을 아름답게 쓰기 때문이 아니라, 가아프의 표현을 빌리면 ’무엇인가를 끝내고 다른 무엇인가를 시작함으로써 인간은 성장한다‘는, 모든 예술가가 마땅히 알아야할 진리를 알았기 때문이다. 비록 이런 끝마침과 시작이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가아프는 어느 누구보다도 더 빨리 쓰거나 많이 쓰지를 않았고, 항상 완성시키겠다는 ’생각‘을 갖고서 일했을 따름이다.” (pp.283~284, 1권) 


  제니 필즈는 사립 학교 별관 진료소에서 간호사 역할을 하며 가아프를 키웠는데, 가아프가 졸업을 하자 글을 쓰겠다는 선언과 함께 가아프를 데리고 오스트리아로 향한다. 거기에서 그녀는 『섹스의 이단자』라는 자서전을 썼고, 미국으로 돌아와 책의 출간과 함께 유명해지면서 여성운동의 선구자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가아프 또한 그곳에서 「그릴파르처 하숙」이라는 단편 소설을 썼는데, 이 소설을 통해 헬렌과 결혼에 이르게 된다. 


  “그해에 제니는 인간들이 지닌 다른 감정들을 그들이 도대체 어떻게 했을까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헬렌은 아주 강한 여자여서 그런 감정들을 감추었다. 던컨은 없어진 눈으로만 그 감정들을 보았다. 그리고 가아프는? 그는 강했지만 그 정도로 강하지는 않았다. 그는 『벤젠하버가 본 세상』이라는 장편소설을 썼고, 그의 모든 다른 감정을 이 작품에 쏟아넣었다.” (pp.132, 2권)


  제니 필즈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저택에 피해받은 여성들을 위한 안식처를 마련하였다. 더 이상의 책 출간은 없었다. 가아프는 별다른 일을 하지 않으면서 『기나긴 기다림』과 『간통한 아내를 둔 남편의 두번째 바람』이라는 두 권의 장편 소설을 발표했지만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하지만 가아프가 막내 아들을 잃고 쓴  『벤젠하버가 본 세상』이 엄청난 성공을 거두면서 많은 것이 달라졌다.


  “무엇을 상상한다는 것은 무엇을 기억한다는 것보다 좋은 일이다.” (p.396, 2권)


  하지만 가아프는 애매한 포지셔닝으로 인해 여성과 남성 양쪽으로부터 욕을 먹는 위치에 서게 된다. 이러한 위치는 제니 필즈가 그녀의 활동에 분개한 남성의 피습으로 죽임을 당한 이후에 더욱 모호해지고, 가아프는 결국 극단적인 여성주의자들이라 할 수 있는 엘렌 제임스파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소설은 우리의 삶이 계속되는 한 피할 수 없는 딜레마와 이율배반으로 가득하다. 극단적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우리들 개개인의 삶에 깃든 딜레마와 이율배반은 모두에게는 극단적이리라.



존 어빙 John Irving / 안정효 역 / 가아프가 본 세상 (The World According To Garp) / 문학동네 / 전2권 (1권 380쪽, 2권 406쪽) / 2002 (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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