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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Jul 29. 2024

존 어빙 《사이더 하우스》

고귀한 기준이자 고착화된 편견인 룰의 세계...

  존 어빙의 소설은 대부분 두 권으로 번역 출간되었다. 그만큼 길어 끝까지 읽기 위해서는 공이 든다. 특히나 존 어빙의 소설들은 초반부의 진행 속도가 중후반부에 비해 상대적으로 느리다. 특히나 이번 소설 《사이더 하우스》에는 공간적 배경의 한쪽 면에 세인트 클라우즈 고아원이 자리잡고 있는데, 그곳에서 벌어지는 출산과 낙태에 대한 전문적이고 핍진하기까지 한 현장 묘사가 길고도 길게 이어져 더더욱 그렇게 느껴진다. 


  “이제 밤이면 호머의 불면증은 새로운 음악에 박자를 맞추었다. 추수가 끝난 사과나무 가지들이 12월 초의 바람에 서로 부딪쳐 타닥타닥 소리를 냈다. 호머 웰즈는 침대에 누웠다. 뼈 빛깔의 달빛이 가슴에 포개 얹은 손의 윤곽을 선명하게 비추고 있었다. 호머는 눈이 오기도 전에 나무들이 가지에서 눈을 털어내려고 하는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p.128, 2권)


  하지만 소설의 중반부에 이르면, 롤러코스터의 상승 구간 꼭지점에 다다른 것이나 마찬가지의 상태가 된다. 이제 소설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속도로 진행되는데 손아귀에 땀이 나도록 빠르다. 지금까지 느리고 차곡차곡 진행되던 소설을 계속해서 읽을까 말까 하던 고민들은 이제 또다른 안도의 감정에게 자리를 내준다. 읽기를 멈추지 않은 덕분에 지금 이 하강하는 롤러코스터에 탄 것과 같은, 그러니까 몰입감 높은 독서의 경험을 하게 되었다는 안도감이다.


  “어느 날 아침 호머 웰즈는 올리브가 신문지 귀퉁이에 써놓은 글을 보았다. 신문에 실린 머릿기사들 중 하나에 대해 연필로 써놓은 것이었는데 호머는 어쩐지 자신을 겨냥한 글처럼 느껴졌다... 참을 수 없는 부정직.” (p.302, 2권)


  소설은 메인 주 세인트 클라우즈 고아원에서 이름을 얻은 호머 웰즈의 일대기이다. 이 고아원의 원장인 의사 윌버 라치는 주님의 일(임신)과 악마의 일(낙태) 모두가 주님의 일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는 낙태 수술을 시행한다. 물론 이것은 스스로가 정한 개월수 이하의 여성에게 한하며, 이외의 여성은 고아원에서 출산까지 머물 수 있도록 하고 이를 전적으로 돕는다.


  “... 가족이란 말이 그의 마음을 휘어잡았다. 고아는 영원한 아이이며 고아는 변화를 싫어한다. 고아는 움직이는 걸 싫어하며 고아는 정해진 일과를 좋아한다... 15년 동안 호머 웰즈는 주스 공장에는 그곳을 스쳐간 사람들만큼이나 많은 규칙들이 존재할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매년 새로운 규칙을 벽에 붙였다.” (p.326, 2권)


  호머 웰즈 또한 이러한 과정을 거쳐 고아원에 등장하였고 몇 번의 파양 끝에 십대 후반의 나이가 된다. 그리고 이 즈음 낙태를 위해 고아원을 찾은 캔디 그리고 윌리의 차를 타고 오션 뷰 사과나무 농장으로 거처를 옮기게 된다. 이때 고아원의 원장 라치는 자신의 산과적 의료 기술을 이미 호머에게 전수한 상태이며, 사과 농장의 안주인인 올리브 워딩턴과의 협의 하에 호머가 적당한 교육 과정을 거쳐 의사가 되기를, 그리고 고아원으로 돌아와 자신의 뒤를 이어줄 것을 기대한다.


  “물론 호머도 세는 게 있었다. 윌리가 돌아온 후로 캔디와 섹스한 횟수를, ‘기회는 온다’ 승무원들과 함께 찍은 윌리의 사진 뒷면에, 연필로 썼다가 지우고 새로 써가며 기록했다. 270회... 그러나 그는 캔디도 그걸 기록하고 있다는 건 꿈에도 몰랐다. 그녀 또한 호머에게 수영을 가르쳐주고 있는 사진 뒷면에 연필로 ‘270’이라고 썼다...” (p.369, 2권)


  하지만 호머의 이후는 라치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호머는 고아원에서 낙태 수술을 한 캔디를 사랑하게 되고, 윌리는 세계 대전의 와중에 전쟁터로 향한다. 호머는 어느 날 자신의 사랑을 캔디에게 들키고, 캔디 또한 자신이 호머와 윌리를 모두 사랑한다는 사실을 토로한다. 문제는 호머 또한 자신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고 진심으로 대한 윌리를 사랑한다는 사실이다. 


  “늘 하는 얘기지만, 호머를 세인트 클라우즈에서 데리고 나올 수는 있지만 세인트 클라우즈를 호머에게서 내보낼 수는 없어. 그리고 사랑에 대해 얘기하자면, 우리는 누구에게도 강요할 수가 없어. 우리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우리가 원하는 일을 해주기를, 우릭 생각에 그 사람에게 이로운 일을 해주기를 바라지만 그 사람이 하는 일들을 그저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지. 우리는 모르는 사람의 일에 간섭해서는 안 되는 것처럼 사랑하는 사람의 일에도 간섭해서는 안 된단다. 그건 힘든 일이지. 간섭하고 싶고 자신의 뜻대로 이루어지도록 만들고 싶은 때가 많으니까.” (p.517, 2권) 


  이렇게 각각을 향하고 있는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진실된 사랑은 그로 인한 상황 고조의 긴장감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이 긴장감은 고스란히 호머(와 캔디)의 아들인 앤젤과 사이더 하우스(사과 농장의 일꾼들의 거처)의 우두머리인 린도의 딸인 로즈로즈에게로 이어진다. 모든 룰은 고귀한 기준이 될 수도 있지만 어느 순간 고착화된 편견이 될 수도 있다는 메시지도 메시이지지만, 그저 가슴 철렁하는 나의 독서 경험을 공유하고픈 마음에 이 책을 권한다.



존 어빙 John Irving / 민승남 역 / 사이더 하우스 (The Cider House Rules) / 문학동네 / 전2권 (1권 481쪽, 2권 550쪽) / 2008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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