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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Jul 29. 2024

루스 랜들 《활자잔혹극》

범인과 피해자와 살인의 동기를 밝히는 선전 포고로 시작되는...

  ’유니스 파치먼이 커버데일 일가를 살해한 까닭은, 읽을 줄도 쓸 줄도 몰랐기 때문이다.‘ 소설의 첫 문장이다. 어지간한 자신감이 아니고서는 이와 같은 문장으로 소설을 시작할 수 없다. 장르가 추리 소설인데, 범인이 누구인지 피해자가 누구인지를 미리 밝히고 있다. 심지어 살인의 동기도 밝히고 있는데, 여기서 살짝 갸우뚱하게 된다. 그리고 첫 번째 챕터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다. ’하지만 여기에는 더 깊은 사연이 존재한다.‘


  “이월 십사일 성 발렌타인 데이. 조지 커버데일, 재클린 커버데일, 멜린다 커버데일, 자일즈 몬트, 이상 네 명의 일가족은 불과 십오 분 사이에 모두 사망했다. 유니스 파치먼과 조앤 스미스라는 평범한 이름을 가진 여성이 일요일 저녁, 오페라를 보고 있던 커버데일 가족을 총으로 쏴 죽였다. 이 주 후 유니스는 이 범행으로 체포되었다. 글을 읽을 줄 몰랐기 때문이다.” (p.9)


  추리는 소설의 서두에서 끝이 나지만 또 시작되기도 한다. 가해자와 피해자를 이미 알고 있다는 면에서는 끝이랄 수 있지만 도대체 범인의 문맹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살인에 이르게 된다는 것인지에 대한 추리는 이제 막 시작이다. 지금까지 활자에 중독된 자 혹은 난독증인 자를 주인공으로 하는 드라마나 소설은 드물지 않게 접한 적이 있는 듯하지만 그 자리에 문맹자가 들어서니 익숙하지 않다.


  “... 문맹자의 생각은 그림과 아주 간단한 단어 몇 개로 기록된다. 유니스의 어휘는 굉장히 빈약했다. 그녀는 상투적인 문구를 반복하거나, 자신의 어머니나 길 아래에 사는 친척 아주머니인 샘슨 부인이 하는 말을 따라 할 뿐이었다. 사촌이 결혼했을 때 그녀는 질투심을 느꼈을까? 외판원과 외도를 하고 있던 유부녀에게서 일주일에 십 실링씩 더 뜯어내게 되었을 때 그녀의 마음은 신랄할 만큼 비통하기도 했을까? 그녀는 아무에게도 자신의 감정이나 인생에 대한 관점을 드러내지 않았다.” (p.49)


  범인 중 한 명인 유니스 파치먼은 중년의 여성이다.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고 병환 중인 엄마를 돌보느라 어린 시절을 보냈다. 엄마의 죽음 다음에는 그 자리를 아버지가 차지했다. 아버지를 제 손으로 끝장낸 유니스는 도시로 나왔고 일을 구하는 대신 다른 사람을 등처먹는 것으로 생활을 유지했다. 커버데일 가의 가정부는 그녀가 구한 최초의 그리고 가장 정상적인 일이었다. 


  “그녀는 활자로 도배된 세상이 끔찍했다. 활자를 자신에게 닥친 위협이라고 생각했다. 활자는 거리를 두고 피해야 할 대상이었으며, 그녀에게 활자를 보여주려고 하는 사람 또한 마찬가지였다. 활자를 피하려는 버릇은 몸에 깊이 배어 있었다. 더 이상 의식하고 하는 행동이 아니었다. 따뜻한 마음이나, 타인을 향한 애정, 인간적인 열정이 솟아나는 샘은 이러한 이유로 오래전에 말라 버렸다. 이제는 고립된 상태로 지내는 일이 자연스러웠고, 이러한 자신의 상태가 인쇄물이나 책, 손으로 쓴 글자로부터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행위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p.74)


  유니스는 자신이 맡은 일에 꽤나 만족하지만 자신의 문맹이 밝혀지지 않는 선에서만 그렇다. 자신이 해야 할 업무를 쪽지로 남긴다거나 전화번호부에서 이름을 확인해야 한다거나 탁자 위의 문서를 찾아달라는 요청 앞에 서면 유나스는 한없이 작아진다. 자신의 문맹을 숨기기 위하여 오래전부터 사용한 방법, 눈이 나빠서 글자가 보이지 않는다는, 핑계를 대곤 하지만 아슬아슬하다.  


  “... 그녀는 종신형을 선고받았으나, 실제 수감 기간은 십오 년 남짓으로 예상되었다. 터무니없이 적은 형량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유니스는 이미 벌을 받았다. 배심원단의 평결이 나오기도 전에 참담한 꼴을 당해야 했다. 그녀의 변호사가 판사와 검사, 경찰, 방청객, 기자석에서 기사를 갈겨쓰고 있는 기자들 앞에서 그녀는 글을 읽거나 쓸 줄 모른다는 사실을 전 세계에 공표해 버린 것이다.” (pp.296~297)


  과연 문맹이 살인 촉발의 원인일 수 있는가, 라는 점에서는 작가 또한 백 퍼센트 자신할 수는 없었던 것 같다. 문맹과 유니스의 타고난 성정이 양쪽을 부추긴 측면이 있음을 알린 것에 더하여 이교에 빠진 조앤 스미스의 광신적 태도를 트리거로 삼았으니 말이다. 여하튼 선언하듯 모든 것을 밝히며 소설을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조마조마한 마음을 유지한 채로 끝까지 읽을 수 있었다.



루스 랜들 Ruth Rendell / 이동윤 역 / 활자잔혹극 (A Judgemnet in Stone) / 북스피어 / 311쪽 / 2024 (1994)



  ps. 소설의 마지막에 장정일의 (나름의) 해제가 붙어 있다. 장정일의 글을 이렇게라도 보니 반가웠다. 그 글을 읽다 보면 잊고 있었을 뿐이지 문맹이 주인공인 소설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책 읽어주는 남자》와 이 소설을 영화화한 케이트 윈슬렛 주연 스티븐 달드리 감독의 〈더 리더〉를 떠올려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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