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카 쿠르니아완 《아름다움 그것은 상처》

슬픈 역사를 포옥 감싸 안은 황당무계하고 비밀스러운 아름다움 그것은...

by 우주에부는바람

“에카 쿠르니아완이 인도네시아 최초로 노벨상을 받을지 누가 알겠는가?”, 《르몽드》는 말했다. “가르시아 마르케스에 대적할 만한 마술적 리얼리즘.”, 《인디펜던스》의 말이다. “에카 크리나아완은 가르시아 마르케스, 살만 루슈디의 문학적 자식이다.”, 《뉴욕리브오브북스》의 표현이다. 책의 표지에 박힌 문구들을 보면서 거참 설레발도, 하면서 책을 보기 시작했다. 다 읽고 나면 그것들이 설레발이 아니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과연...


“『그 안쓰러운 한 쌍, 마 게딕과 마 이양. 두 사람의 사랑이 깨지면서 두 사람의 삶도 무너져 내렸지. 발정 난 네델란드 남자 하나 때문에. 그리고 제일 끔찍한 건 그 발정난 네델란드인이 바로 내 할아버지란 사실이야.” 데위 아유는 그 사랑 이야기를 듣던 그 순간부터 마 게딕을 사랑했다... 데위 아유는 마 게딕과 결혼하지 못하면 죽어버리고 말겠다고 했다. 그래서 그를 납치해와 억지로 결혼식을 올렸던 것이다. 그러나 한 번도 제대로 동침하지 못했다. “그이는 산꼭대기로 달려가서는 몸을 던졌어. 몸뚱이는 정육점의 고깃덩어리처럼 갈기갈기 찢겼지.” 그날로 마 게딕은 귀신이 되어 데위 아유를 쫓아다녔다.』 (p.389)


소설의 중심에는 데위 아유가 있다. 데위 아유는 헨리 스탐러와 아뇌 스탐러 사이에 태어났다. 데위 아유의 할아버지는 테트 스탐러인데 테트 스탐러는 마 게딕을 사랑하였던 여인 마 이양을 억지로 취하였고, 마 이양은 아뇌 스탐러를 낳았다. 헨리 스탐러와 아뇌 스탐러는 이복 남매였던 셈이고, 데위 아유를 낳은 후 네델란드로 떠나버렸다. 테트 스탐러는 할리문다를 지배하였던 네델란드 인에 속한 자였다.


『"아딘다가 좋다는군요.“ 데위 아유가 웃으면서 클리원에게 말했다. ”그럼 이제 내 사위가 되는 거군요. 내 사위 중에 나랑 안 자본 남자는 처음인걸.“

“저도 어머님이랑 자보기를 바라 마지않던 때가 있었습니다. 클리원이 수줍게 말했다.

“잘 알고 있어요.”

클리원 동지는 그해 11월 말 아딘다와 결혼했다...』 (p.378)


데위 아유는 일족이 떠나거나 사라지고 난 후 할리문다에 남았다. 그리고 박쥐 엄마가 있는 유곽에서 가장 유명한 창녀가 되었다. 딱 한 번 결혼을 했고, 이후로는 결혼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인도네시아를 점령하였거나 거쳐갔거나 되찾은 이들과의 동침으로 딸들을 낳았다. 차례대로 알리문다, 아딘다, 마야 데위를 낳았고 한참 후에 잔틱을 낳았다. 데위 아유는 아름다웠고 세 딸들은 엄마보다 더 아름다웠다. 데위 아유는 세 딸들을 잘 알았기에 잔틱이 아름답기를 바라지 않았고, 잔틱은 세상에서 가장 추한 몰골로 태어났다.


알리문다는 인도네시아의 독립에 기여한 유명한 군인인 쇼단초와 결혼하였고 두 번의 실패 끝에 누를 아이니라는 딸을 낳았다. 아딘다는 유명한 공산주의자 클리원과 결혼하였고 아들 크리산을 낳았다. 마야 데위는 유명한 깡패 마만과 결혼하였고 등장인물들 중 가장 아름다운 딸 랭기니스를 낳았다. 잔틱은 가장 추한 몰골로 태어났고 그 누구와도 결혼하지 않았지만 크고 나서는 밤마다 누군가와 정사를 나눴다. (이 복잡하고도 긴 가계도에 겁먹을 피요는 없다. 소설의 시작에 앞서 가계도가 덧붙여져 있다.)


『... 오늘 파리다는 카미노가 가져다준 밥을 먹고 아버지의 죽음 같은 일은 있지도 않았다는 듯이 다시 아버지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나 곧 아버지가 죽었다는 것을 기억했다.

“하지만 아빠는 돌아가셨잖아요!”

“뭐 그렇게 부러워할 건 없다. 너도 언젠가 죽게 될 테니까.”』 (p.344)


인도네시아를 배경으로 한 이 아름답고도 기괴한 소설은 심지어 유머러스하기도 하다. 오랜 네델란드의 식민지, 일본의 점령, 돌아온 네델란드, 혁명과 독립, 쿠데타와 학살이라는 끊이지 않고 진행되는 처절한 역사적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음에도 그렇다. 등장인물들은 역사적인 사건과 짓궂게 맞물려 있지만 이에 연연하지 않는 초연함 또는 초인적인 면모를 잃지 않는다. 이 소설이 마술적 리얼리즘의 전통 안에서 굳건했던 탓이라고 할 수 있다.


『어느 날 잔틱이 물었다. “왜 나를 원하나요?”

솔직히 말해야 할지 아닌지 모르면서 그는 대답했다. “너를 사랑하니까.”

“이렇게 못생긴 나를 사랑하나요?

“응.”

“왜?”

“왜”라는 질문에 답하기란 늘 어려운 일인지라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어떻게”라는 질문은 더 쉬웠기에 그에만 답할 수 있었다. 제 사랑을 증명해 보이려고 그는 감언이설을 늘어놓으며 잔틱을 쓰다듬었다. 아무리 못생겼거나 역겹고 무시무시해도 그는 개의치 않는다고, 모든 것이 만족스럽고 살아오면서 이렇게 행복했던 적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잔틱은 만나서 사랑을 나눌 때마다 “왜?”냐고 물었다. 크리산은 묵묵부답이었다. 그는 답을 알았지만 말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죽기 바로 전날 밤 그는 실토하고 말았다... 아름다움 그것은 상처니까.』 (pp.528~529)


마르케스의 소설 《백년 동안의 고독》을 읽은 것이 언제였는지 가물가물 하지만 흙을 먹는 아이, 돼지 꼬리를 단 아이가 아직 뇌리에 남아 있다. 에카 쿠리나아완의 소설 《아름다움 그것은 상처》라면 아름다움 그것은 상처, 라고 말하는 마지막 장면이 오래 남아 있을 것도 같다. 슬픈 역사를 포옥 감싸 안는 (황당무계하지만 그래서 더욱) 아름다움, 그러나 상처로 가득한 (비밀로 가득한 그래서 더욱) 아름다움의 이야기가 놀랍다.



에카 쿠르니아완 Eka Kurniawan / 박소현 역 / 아름다움 그것은 상처 (Cantik Itu Luka) / 오월의봄 / 540쪽 / 2017 (2002,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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