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 대한 깊은 천착을 이끌어낸 작은 자연으로의 초대...
나의 가장 오랜 기억 중 하나에는 화사한 꽃밭이 있다. (또 다른 오랜 기억 중 하나에는 무덤을 닮은 방공호, 라고 짐작되는 지하 공간이 있다.) 다섯 살 아니면 그보다 더 어린 시기였을 수 있는데, 나는 아주 환하게 웃으며 꽃밭의 한 가운데를 뛰어 다녔다. (그리고 그 프레임 안에는 아버지도 분명히 환하게 있는데, 이 한 장면을 제외하고 지금까지 아버지와 내가 하나의 프레임 안에서 함께 환하게 웃은 적이 있었는지 잘 모르겠다.)
“... 지난해의 죽음에 의해 양분을 얻고 소생하지 않는 여름은 없다. 또한 흙에서 식물이 나오듯이, 어떤 재배식물도 조용하고도 확실하게 땅과 결속되지 않은 것이 없다... 씨앗을 뿌리고 수확을 하는 이따금의 순간, 내 마음속에는 땅 위의 모든 창조물 가운데 유독 인간들만이 이와 같은 사물들의 순환으로부터 어딘지 제외되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사물들의 덧없음에 만족하지 못하고, 자신을 위해서 개인적이고 개성적인 특별한 무언가를 갖고 싶어하는 욕구가 너무도 기이하게 여겨지는 것이다.” (p.21, <즐거운 정원> 중, 1908년)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은 1992년에 출간되었다. 그러니까 헤르만 헤세 사후에 (그는 1962년 스위스에서 뇌출혈로 사망하였다) 정리된 그의 글들(대부분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 이라는 출판사에서 사후 출간된 책들이 출처)에서 다시 뽑아 모은 산문집이다. 시기적으로는 1899년에서 1954년 사이에, 헤르만 헤세가 소유하였고 또 만들어갔던 정원을 배경으로 하여 쓴 글들이다.
“... 이런 식으로 때로는 내가, 때로는 그가 여름을 위해서, 9월을 위해서, 가을을 위해서, 이것저것 좋은 것과 유익한 것을 생각해냈다. 이야기를 모두 마치고 난 다음 나는 계속 산책을 하러 갔고 로렌초는 다시 자기 일로 돌아갔다. 우리 두 사람 모두 대화의 결과에 만족하고 있었다.” (p.47, <자연의 복원> 중, 1954년)
하지만 정원은 어찌 되었든 인간의 손길이 닿은 자연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곳곳에 헤르만 헤세 자신이 있고, 정원 가꾸기라는 매개를 두고 만나는 인물들이 있다.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한 대문호의 반열에 오른 (살아 있는 동안 헤르만 헤세의 유명세는 독일보다는 독일 바깥에서 더 컸다고 하지만) 그가 정원 그리고 정원 가꾸기를 위하여 나누는 작은 대화들에 솔깃해진다.
“나무 꼭대기에서는 세계가 윙윙거린다. 또 뿌리는 무한 속에서 안주한다. 그 사이에서 나무는 모든 생명력을 동원해 자신을 잃지 않고 오직 하나만을 위해 애쓴다. 그것은 바로 나무에 내재해 있는 그들 안의 고유한 법칙을 따르는 일이다. 자신의 고유한 영상을 완성해나가면서 자신을 스스로 표현해내는 일이다. 아름답고 강인한 나무보다 더 성스럽고 더 모범이 되는 것은 없다.” (pp.148~149, <나무들의 속삭임에 귀 기울이기> 중, 1920년)
헤세가 키웠다는 두 마리의 고양이 ‘티거’와 ‘레베’(호랑이와 사자, 라는 뜻을 가진)에게도 마음이 간다. 그의 소설들이 갖는 인간에 대한 깊은 천착은 어쩌면 인간 이외의 것을 향한 애정으로부터 발원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인간 내면의 다양한 양태를 드러내면서 그것들의 조화를 지향하였던 것처럼, 그는 인간과 인간 아닌 것들 사이를 조화롭게 연결하려는 강한 의지를 숨기지 않는다.
“... 그것은 바로 ‘적당한 즐거움이야말로 두 배의 즐거움’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또 ‘사소한 기쁨들을 간과하지 마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절제하는 것이다. 어느 사회 계층에서는 새로 나온 연극을 꼭 보아야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또 어느 계층에서는 새로운 문학작품이 발간된 뒤에 몇 주 동안 모르고 지내는 데에도 용기가 필요하다... 만약 극장에 매주 좌석을 예약한 사람이 극장 가기를 한 주 정도 건너뛴다고 해서 뭔가를 놓친 것처럼 허둥대지 않는다면 그는 장담하건대 뭔가 더 많은 것을 얻을 것이다... 독서를 많이 하는 사람들 또한 그들과 마찬가지로 시도해 보라. 새로 나온 작품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는 데 끼지 못해 몇 번은 속상하겠지만, 오래지 않아 미소를 지을 것이며 더 많이 알게 될 것이다...” (p.70, <작은 기쁨> 중, 1899년)
그런 의지들은 아마도 양차 세계 대전을 통과하면서 생성되었을 것이고 또 성장했을 것이다. 큰 기쁨은 커다란 욕망과 직결되고, 커다란 욕망이 사회화되면서 거대한 전쟁으로 치환되는 것을 지켜보았기에, 그는 또한 ‘작은 기쁨’을 논하기에 이르렀을 것이다. 거대한 자연이 아니라 작은 정원에 보다 큰 애정을 보인 헤르만 헤세를 이해할 수 있겠다. 잊히지 않는 꽃밭 속 환한 웃음이 여태 가장 오래된 나의 기억으로 남아 있는 것도...
헤르만 헤세 Hermann Hesse / 두행숙 역 /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 (Freude am Garten) / 웅진지식하우스 / 247쪽 / 2013 (19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