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리 김슬기 《읽은 척하면 됩니다》

한 손으로는 고양이와 놀고 다른 한 손으로는 책을 읽고...

by 우주에부는바람

부부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읽다 보니 부부다. 아내 쪽은 서점 점원(이라고 하는데, 아마도 대형 서점의 MD가 아닐까 싶다)이고 남편 쪽은 출판 기자, 그러니까 한 경제신문의 북 섹션을 맡고 있는 기자이다. 양쪽 모두 일 삼아 책을 마주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이쯤 되면 질릴 만도 한데, 책 일기라는 것을 쓰고 있다. 애초에 자신들에게 잘 맞는 일을 찾았기 때문이기도 할 터이다. 게다가 두 사람은 책을 매개로 해서 만나 결혼을 한 사이이기도 하다.


『이 책에는 해안 도시에서의 낭만, 책을 향한 넘치는 애정만 담겨 있지 않다. 오히려 자영업자로의 고단한 삶, 앞날에 대한 불안 등이 역력히 묻어났다. “책을 좋아하면 서점을 하지 말고 그냥 독자로 남을 것”이라는 격언은 그에게도 적용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분투하는 저자를 보면서 서점이라는 하나의 우주를 꾸려나가고 있는 이 성실한 책방지기를 응원하고 싶어졌다.』 (p.113, 김슬기, <김영건 글 정희우 그림, 당신에게 말을 건다> 중)


장석주와 박연준과 비교하여 김유리와 김슬기는 읽기를 공유하는 책이 더 많다. 아내가 읽은 책을 나중에 남편이 읽기도 하고, 남편이 먼저 읽고 아내가 나중에 읽기도 한다. 같은 날 읽을 때도 있다. 서로의 책읽기를 의식하는 것 같지는 않다. 나와 아내는 간혹 (자신은 이미 읽은) 상대방이 읽은 책에 대해 물을 때도 있다. 우리는 같은 문학회에서 만났고, 함께 책을 읽고 토론하는 일에 익숙한 편이다.


“우리집에 낯선 고양이가 있어 / 난생처음 보는 고양이 / 나보다 훨씬 어린 녀석이야 / 네가 저 애 이름을 알다니 / 심지어 나를 저 녀석의 이름으로 잘못 부르기까지 / 녀석이 가장 밝고 따뜻한 자리를 차지하고 / 내가 좋아하는 베개를 쓰고 있어 / 이런 모욕감은 처음이야 / 난 아마 다시는 사랑을 하지 못할 거야” (p.117, 김슬기, <프란체스코 마르치울리아노, 고양이의 시> 재인용)


책을 읽는 중에 두 사람이 고양이를 키우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묘한 동지애를 느꼈다. 두 사람은 두 마리의 고양이를 키운다. 한 고양이를 들이고 얼마 되지 않아 또 한 고양이를 식구로 맞았다. 고양이를 거론하는 쪽은 주로 남편 쪽이다. 책의 에필로그를 읽다가 가슴이 철렁 하고 내려앉게 되는데, 그 에필로그를 작성하는 것도 남편이다. 우리 집에도 두 마리의 고양이가 있고, 한 마리는 어쨌든 투병 중이다.


“아내와의 나이 차는 여덟 살. 신부의 가족이나 친구들과 모이면 세대 차이, 나이 차이로 겸연쩍어지는 일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조합이다. 눈치가 없어서 아내에게 혼나고 벌 삼아 설거지와 화장실 청소를 하는 작가의 모습도 가감 없이 그려진다. 이런 솔직함이 이기호 산문(비록 가족소설이라 이름 붙였지만)의 매력이다.” (p.255, 김슬기, <이기호, 세 살 버릇 여름까지 간다>)


장석주와 박연준의 경우에는 아직 고양이를 키우고 있지는 않다. 아마도 장석주는 그것에 반대하고, 박연준은 집사가 되어버릴 기회를 노리고 있는 것 같다. 책과 고양이 혹은 책을 일 삼아 읽는 사람들과 고양이 사이에 어떤 상관 관계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논리적인 생각은 아니지만 고양이는 개에 비해 독서를 방해할 확률이 낮다. 최소한 함께 나가자고 조르는 경우가 드물다. 한 손으로는 책을 들고 보면서, 다른 한 손만으로 놀아줄 수도 있다.


『... 문리과를 넘나드는 지식의 소유자에다 이름난 서평가라는 점에서 일본의 디차바나 다카시와도 매우 닮았는데, 공교롭게도 자신의 묘비에 이런 문구를 써놓겠다고 답하는 대목이 나온다. “그는 늘 자신이 즐거운 고양이이기를 바랐다.” (다카시도 서재를 고양이 빌딩으로 지었다.)』 (p.271, 김슬기, <장샤오위안, 고양이의 서재> 중)


두 사람은 한 테이블에서 나란히 책을 읽고 경쟁하듯 이런저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두 사람이 읽은 책의 십오 퍼센트 정도는 이미 읽은 책이었다. 이번에도 책을 읽는 중에 몇 권의 책을 구매하기로 마음먹고 말았다. 이제 그만, 이라는 외침과 책에 실린 내용을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 라는 유혹이 실랑이를 벌였다. 외침이 이길 때도 있었고, 유혹이 이길 때도 있었다. 유혹의 승률이 조금 높았다. 아내였다면 외침의 승률이 높았을텐데...



김유리 김슬기 / 읽은 척하면 됩니다 / 난다 / 399쪽 / 2017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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