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모르는 아버지와 나를 모르는 아버지의 저물어가는 세계...
*2017년 12월 11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그날 아침 아버지 아파트에 도착한 - 우연히 어머니의 무덤을 찾아간 뒤에 - 나는 얼른 볼일 좀 보겠다고 하고 화장실로 갔다. 처음에는 길을 놓쳤고, 이제 욕실에서 다시 몇 분을 들여 아버지에게 종양에 관해 이야기할 가장 좋은 방법을 마지막으로 연습하려는 것이었다. 나는 변기를 굽어보는 자세로 서 있었고, 사방에는 겁을 주어 새를 쫓으려는 농부가 늘어놓은 자투리 천들처럼 아버지의 속옷이 걸려 있었다...” (p.27)
다행스럽게도 아직 양친 모두 생존해 계신다. 어머님의 건강이 완전하지 않지만 당장 자리보전하고 있어야 할 정도는 아니시다. 원인을 찾을 수 없는 이명이 주기적으로 어머니를 괴롭히는데, 그 이명에 신경을 쓰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형태로 그 이명에 온 신경을 쏟고 있는 어머니를 바라보는 일이 힘겨울 따름이다. 지난 주 필립 로스의 책을 읽고 있던 어느 늦은 저녁, 어머니로부터 열이 뱃속에만 있고 바깥으로 분출되지 않아 힘들다는 전화를 받았다. 자려고 누웠는데 괜스레 가슴이 두근거려서 혼났다.
『그 순간 나는 아버지에게 네 단어, 그전에는 평생 아버지에게 해본 적이 없는 네 단어를 내뱉었다. “제가 하라는 대로 하세요.” 나는 그렇게 말했다. “스웨터를 입고 운동화를 신으세요.”
그것은, 그 네 단어는 먹혔다. 나는 쉰다섯이고, 아버지는 여든일곱이 다 되었고, 때는 1988년이다. “제가 하라는 대로 하세요.” 나는 그렇게 말하고 - 아버지는 그렇게 한다. 한 시대의 끝이고, 다른 시대의 새벽이다.』 (p.94)
열흘 전쯤에는 아버지와의 말다툼이 있었다. 나의 마흔 아홉 생애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나는 아버지의 말에 면전에서 토를 달아본 적이 없다. 네, 라고 간단히 대답하여 소극적인 수긍의 제스처를 보이거나 아무 말도 하지 않음으로써 소극적인 부정의 제스처를 보이는 것이 다였다. 아니오, 아버지의 생각에 동의할 수 없어요, 라고 말해 놓고 보니 그것이 아버지를 향하여 내가 사용한 최초의 적극적인 부정문이었다.
“... 아버지는 역시 아버지였기 때문에 그런 것을 이해하리라 기대할 수 없었다. 아버지는 다른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오직 자신이 이해하는 것만, 다만 그것만을 맹렬하게 이해했다.” (p.114)
“너는 아버지를 용서했어. 아버지의 그 가차없는 태도와 요령없는 태도, 모든 사람을 똑같은 틀에 넣어 바꾸고 싶어하는 태도를 용서했어. 모든 아이들은 대가를 치르지. 따라서 용서란 네가 치른 대가에 대한 용서도 포함하는 거야...” (p.150)
아버지와 나는 똑같이 당황하였고 또 똑같이 그 당황스러움을 감추기 위하여 애를 썼다. 우리는 한참동안 더 이야기를 나눴고 헤어질 때는 어느 정도 평온을 되찾았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나는 이 최초의 거역을 오랜 시간 떠올렸다. 예상하건대 아버지 또한 이 최초의 반역의 말을 금세 잊지는 못했을 것이다. 아버지는 속이야 알 수 없지만 겉으로는 철저히 순종적이었던 아들의 흔적을 뒤적이느라 밤새 뒤척였을지도 모른다.
“이제, 세스와 루스가 점심을 먹으러 왔기 때문에, 우리 모두 가벼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어느 여름날 못지않게 유혹적인 맑은 날이었지만 아버지는 무시무시한 도망 방지 장치가 갖춰진 울타리, 도살장의 우리가 되어버린 몸안에 완전히 고립되어 있었다.” (p.203)
“나는 악취가 나는 베갯잇을 아래층으로 가지고 내려가 검은 쓰레기봉투에 넣고 아가리를 꽉 묶은 다음, 세탁소에 가져가기 위해 차의 트렁크에 실었다. 일을 다 마치고 나니, 왜 이것이 옳고 마땅히 글해야 하는 대로인지 그렇게 분명할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이게 유산이었다. 그것을 치우는 것이 다른 뭔가를 상징해서가 아니라 상징하지 않았기 때문, 살아낸 현실 그 자체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나의 유산이었다. 돈이 아니라, 성구함이 아니라, 면도용 컵이 아니라, 똥이.” (p.209)
여동생 내외가 지난주에 올라왔을 때 나는 아버지와의 다툼에 대해 전했다. 그리고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아버지가 모르는 나를 아버지에게 알려야 하는 것이 아닌지, 내가 알지 못하는 아버지를 좀더 알아야하는 것은 아닌지 물었다. 여동생은 말렸다. 같은 물음을 던졌을 때 아내도 나를 말렸다. 서로에 대한 몰이해 속에서 아버지와 헤어지게 되는 것이 나는 두려운데, 여동생과 아내는 자연적인 헤어짐 이전에 두 사람이 인위적인 결별에 이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더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결별이 어머니에게 미칠 파장을...)
“아버지는 삼 주 후에 죽었다. 1989년 12월 24일 자정 직전에 시작되어 다음날 정오 직후 끝난 열두 시간의 시련 동안 아버지는 평생에 걸친 고집스러운 끈기를 멋지게 분출하며, 마지막으로 과시하며 숨 한 번 한 번을 위해 싸웠다. 볼 만한 광경이었다.” (p.276)
필립 로스의 산문집 《아버지의 유산》을 읽으면서 내내 아버지를 생각했다. 내가 오십대 중반이 되면 아버지는 팔십대 중반이 된다. 멀지 않은 미래다. 아버지와 크게 불화해본 적이 없으니 아버지와 화해를 할 일도 내게는 없다. 내가 모르는 아버지가 있고 나를 모르는 아버지가 있을 따름이다. 여하튼 이해나 오해 따위가 아무 소용도 없는 순간이 결국은 찾아오게 될 것이다, 갑자기 또는 천천히... 그리고 두 가지 경우 모두 견딜 수 없기는 매한가지일 거다.
“아침에 나는 아버지가 이 책, 내 직업의 꼴사나움에 어울리게, 아버지가 아프고 죽어가던 내내 내가 써오던 이 책을 가리킨 것임을 깨달았다. 꿈은 나에게 내 책이나 내 인생에서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내 꿈에서는 내가 영원히 그의 어린 아들로서 살 것이라고, 어린 아들의 양심을 갖고 살 것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나의 아버지가 아니라 모든 아버지로서 계속 살아서 내가 하는 모든 일을 심판하듯이... 어떤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p.283)
필립 로스 Philp Roth / 정영목 역 / 아버지의 유산 (Patrimony) / 문학동네 / 283쪽 / 2017 (19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