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주 《은유의 힘》

24시간 실시간 뉴스의 폭포수 아래에서도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by 우주에부는바람

“... 나는 시가 생성되는 비밀의 핵심이 ‘은유’라고 보았다. 시는 말의 볼모이고, 시의 말들은 필경 은유의 볼모다. 은유는 시의 숨결이고 심장 박동, 시의 알파이고 오메가다. 시는 항상 시 너머인데, 그 도약과 비밀의 원소를 품고 있는 게 바로 은유다...” (p.8)

서문에서 저자는 이렇게 선언한다. 이 선언을 합당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 저자가 인용하고 파고든 시인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외국 시인으로는 월트 휘트먼, 라이너 마리아 릴케, 윌리엄 블레이크, 호르헤루이스 보르헤스, 페데레코 가르시아 로르카, 파블로 네루다, 메리 올리버, 프랑시스 퐁주, 베르톨트 브레히트, 울라브 하우게, 아틸라 요제프, 아도니시 국내 시인으로는 김소월, 이상, 서정주, 유치환, 박목월, 이육사, 윤동주, 김수영, 김춘수, 고은, 정현종, 송재학, 송찬호, 황인숙, 이장욱, 김근, 김행숙, 강정, 이원, 김언희, 심언주, 신영배, 김민정, 오은, 홍일표, 류경무, 유진목, 강금희, 이이체, 려원, 제페토...

“... 시인이 최후의 인간인 것은 오래 살기 때문이 아니다. 시인은 단명한다. 시인들은 단명의 운명으로 태어나고 그 운명을 낭비하지만, 그럼에도 시인들은 오래 살아 남는다. 시인은 ‘혼자’가 아니라 여럿으로 살기 때문이다.” (p.88)

사실 나는 소설을 비롯한 산문을 주로 읽는 편이다. 하지만 나는 시를 읽는 느낌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는 편이기도 하다. 그리고 어쩌면 시를 읽는 느낌 그러니까 내가 시를 읽으면서 얻어내고자 하는 느낌의 거개는 바로 저자가 말하고 있는 은유로부터 비롯된다. 나는 시를 바라보면서 그 완료되지 않은 듯한 문장을 읽으면서 이제 막 태어난 시어를 발음하면서 그 느낌의 수렁에 빠져드는 상황을 기꺼이 즐거워하는 편이다.

“시에서 말들은 감각들의 통역관이다. 말은 이 세계에 대한 모호한 느낌들을 자명한 것으로 통역한다. ‘나’에게서 저 세계로, 혹은 저 세계에서 ‘나’에게로...” (p.99)

빗대어 말하지만 빗대어 말하고 있음을 철저히 은폐하고자 하는, 그 두꺼운 은폐의 장막을 친 것은 분명 시인이되, 그 장막을 벗겨내는 열쇠를 독자가 쥘 수도 있다는 마법, 그 마법의 힘으로 밝혀내는 장막 뒤의 비경에 황홀해하고 싶은 욕망이 깊다. 설령 독자가 찾아낸 비경이 시인이 숨겨놓은 비경과 정확하게 일치하지 않아도 좋다. 그 두 풍경 사이의 모호한 경계까지가 비경의 일부이다.

“... 시의 세계에서 직유는 늘 눈총을 받는 천덕꾸러기다. 직유는 아무리 좋더라도 은유의 나쁜 친척이다. 오직 나쁜 시인들만 직유를 남발한다. 좋은 시인들은 ‘이것과 저것은 같다’라고 쓰지 않고, ‘이것은 저것이다’라고 쓴다. 좋은 시집은 빼어난 이미지들의 ‘집’이다! 좋은 시집들은 대개 좋은 이미지의 백과사전이다.” (p.169)

저자는 의미보다는 상징, 기의보다는 기표 그러니까 시니피에보다는 시니피앙의 손을 들어주는 듯하다. 이러한 함의에 머리로는 동의하지 못하면서도 내 마음의 리듬과 속도는 저자의 의도를 이미 따라가고 있다. 내가 시를 통과할 때 누리고자 한 것들, 내 입 속의 쾌락의 일단은 어쩔 수 없이 저자가 말하고 있는 바로 그 지점에서 발생하고, 여태 발휘되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좋은 시들은 시가 말의 무덤이거나 수사(修辭)이기 이전에 리듬이고 속도라는 걸 일러준다. 시를 쓴다는 건 사물과 세계에 제 리듬과 속도를 찾아 되돌려주는 일이다... 리듬이란 정신의 율동이고, 세상을 가로질러가는 마음의 속도다. 모든 사물들은 저마다 리듬이 있고, 세계는 속도의 밀도로 만들어진 물질이다. 시는 바로 그 리듬과 속도에 반향하는 리듬과 속도다. 시인들은 시를 쓸 때 리듬을 탄다. 리듬의 즐거움이 없는 시는 죽은 시다.” (pp.271~272)

책에 실린 글들은 시론이라고 부르자니 시평의 역할이 두툼하고, 시평이라고 부르자니 시론으로의 추동으로 들썩인다. 한꺼번에 읽기 보다는 조금씩 나눠서 읽기를 권하고 싶다. 책을 모두 읽은 다음, 은유가 지니는 힘이 너무 컸던 탓이었을까, 할부로 보아야만 했던 글을 일시불로 읽은 것처럼 부담스러웠다. 그건 그렇고 이것이 팩트다, 24시간 쏟아지는 실시간 뉴스의 폭포수 아래에서 우리는 ‘은유의 힘’을 발견하기 점점 힘들기만 한데...

장석주 / 은유의 힘 / 다산책방 / 291쪽 / 2017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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