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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Jul 29. 2024

정지돈 《야간 경비원의 일기》

찌그락짜그락 하면서도 조금은 해소되는 갑갑함 덕에...

  “이것은 밤의 도시에 대한 이야기다. 매알 밤 도로 위를 떠도는 그림자에 대한 이야기며 여성 혐오와 가난에 대환 이야기고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한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두 문장으로 줄일 수 있다. 다 끝났어. 돈 때문에 하는 거야. 이 이야기는 한 문장으로 줄일 수도 있다. 그것을 실현하지 않고 그것을 하는 것.” (p.9)

  소설은 서울스퀘어(옛 대우빌딩이 이제는 이런 이름으로 불리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에서 야간 경비원으로 일하는 ‘나’의 블로그 글에 기반한다. ‘야간 경비원의 일기’라는 소설의 제목은 이렇게 적는 블로그 글 중 ‘야간 경비원의 일기’라는 동일한 제목을 붙인 게시물에서 따온 것이다. 블로그에는 그러니까 소설에는 이외에도 ‘공유’, ‘새해 목표’, ‘완전한 일상’과 같은 제목의 글 그러니까 게시물이 나열되어 있다. 

  “말하고 나니 그럴듯한 것 같기도 하고 궤변인 것 같기도 했다. 하나 마나 한 말인 것 같기도 하고 필요한 말인 것 같기도 하고, 말하기 위해 말한 것 같기도 했다.” (p.35)

  ‘야간 경비원의 일기’라는 게시물에는 ‘포스트 휴먼’, ‘물 위를 걷는 남자‘, ’나는 경쟁이라는 개념에 반대한다‘와 같은 부제가 붙어 있다. 첫 번째 게시물에는 부제가 없다. 첫 번째 ’야간 경비원의 일기‘는 2018년 1월 3일 새벽 2시 51분에, 마지막 ’야간 경비원의 일기‘인 ’야간 경비원의 일기 15 : 잘 모르겠네요, 니키 타르씨‘는 2018년 3월 24일 11시 58분에 작성되었다. 

  “... 그는 짧게 자른 머리에 금목걸이를 하고 통 넓은 기지 바지를 입는 90년대 사람으로 90년대에 머무르는 바람에 2010년대 후반에 힙스터가 된 시대착오적인 동시대인이었다.” (p.20)

  소설에는 ’나‘ 이외에 여러 인물도 함께 등장한다. 나와 함께 야간 경비원으로 일하는 조지(훈)이 있고, 나와 함께 영화나 문학과 관련한 이야기를 하는 기한오가 있다. 기한오 때문에 가게 된 독서 모임에서 만난 에이치도 있는데, 에이치는 여성이고 나는 에이치에게 나름의 관심을 갖고 있으며, 에이치는 수학과 대학원생으로 ’실현이 불가능한 시나리오‘를 쓴다. 그리고 나, 기한오, 에이치가 속한 독서 모임을 만든 나이를 알 수 없는 인물인 이성복이 있다.

  “... 이성복은 우리가 함께 온 것에 놀라지 않았다. 대화가 시작된 뒤에는 늘 그렇듯 좌중을 압도했다. 그의 입에서 각종 시인과 소설가, 평론가들의 일화와 그들에 대한 평가, 미학적 통찰이 스며든 촌철살인의 문구가 난무했다. 한마디로 따분했다.” (p.57)

  소설 안에서 나는 이성복에게 억하심정이 있는 것 같은데, 아무래도 에이치에게 셀카를 보내기 때문인 것 같다. 소설이 한참 진행된 후반부에서 작가는 아래와 같이 이성복이라는 작명에 대해 언급한다. 변명인 것 같지만 변명은 아니고, 일종의 돌려까기인 듯 한데 그 속내는 문학판 바깥의 우리는 알 수도 없고 사실 그다지 관심도 없다. 여하튼 나는 이성복의 서정시편도, 정지돈의 냉소도 모두 좋아한다.

  “이성복 시인의 이름을 쓴 것에 대한 정중한 이의 제기가 있었다... 우선 읽어주셔서 감사하다... 답변을 드리면...

  1. 글에 등장하는 이성복은 실제 시인 이성복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2. 이런 걸 굳이 설명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3. 관련이 있다 한들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

  4. 이제 그는 다시 등장하지 않을 것이다.” (pp.110~111)

  예전에는 실험적이라, 라고 할만한 시도 많았고 소설도 있었다. 지금은 찾아보기 힘들다, 어쩌면 내가 찾지 않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평준화된 수준의 글들을 읽고 그것들 안에서 좋은 것과 좋지 않은 것까지 등급을 매기고 구분하자니 때로는 갑갑하다, 뭐 혼자 그러고 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나마 정지돈 같은 작가의 글을 읽을 때 이런 갑갑함이 조금은 해소된다, 고 느낀다. 그것들 안, 에 억지로 가두지 않아도 될 것 같아 그렇다.

정지돈 / 야간 경비원의 일기 / 현대문학 / 139쪽 /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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