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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Jul 29. 2024

슈테판 츠바이크 《조제프 푸셰》

영웅은 아니었지만 역사에 영향을 끼칠만큼 충분히 비겁하였던...

  세계 3대 전기 작가 중의 한 명으로 불리우는 슈테판 츠바이크의 글을 좋아한다. (소설가로서의 츠바이크도 좋아한다) 그의 글을 십여 년 전에 마지막으로 읽었고 오랜만이다. 지금까지 츠바이크가 다룬 카사노바, 스탕달, 톨스토이, 마리 앙투아네트, 에라스무스, 매리 스튜어트, 세바스티안 카스텔리오, 아메리고 베스푸치, 발자크, 몽테뉴를 읽었다. (마젤란을 다룬 책도 있는데 아직 읽지 못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조제프 푸셰이다.


  “... 간단히 포착한 몇 개 안 되는 이력은 첫눈에도 한 사람의 것이라고는 보이지 않을 만큼 제각각이다. 1790년에는 수도원의 교사였던 사람이 1792년에는 교회를 유린했고, 1793년에 공산주의자였던 사람이 5년 후에는 백만장자가 되었으며, 10년 후에는 오트란토 공작이 되었다... 근대 최고의 마키아벨리스트 푸셰가 이토록 대담하게 변신을 거듭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나는 더욱더 그의 성격에, 아니 그에게는 아예 성격이 없다는 사실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p.9, 〈들어가는 말〉 중)


  작가는 들어가는 말에서 조제프 푸셰가 활동하던 시기 그리고 그의 영향력에 비해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다고 밝힌다. 그리고 그 이유는 그의 진면목이라고 할 수 있는 ’그의 성격‘ 그러니까 ’그에게는 아예 성격이 없다는 사실‘에 우리가 제대로 주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슈테판 츠바이크는 그렇게 우리가 제대로 주목하지 않은 사실, ’놀라울 만큼 일관성 있게 지조 없이 살았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추어 한 사람의 일대기를 작성하고 있다.


  “... 조제프 푸셰, 그는 어디에 앉을 것인가? 급진파가 자리 잡은 ’산악‘일까, 아니면 온건파가 모인 ’평원‘일까? 조제프 푸셰는 오래 주저하지 않는다. 그가 충성해 왔고 생의 마지막까지 충성할 정당은 오직 하나, 바로 강자의 당이며 다수의 당이다. 이번에도 그는 속으로 의석수를 따져 보고 세어 본다. 그러고는 현재 온건한 지롱드파가 권력을 쥐고 있음을 알아챈다. 따라서 그는 콩도르세, 롤랑, 세르방 같은 지롱드파 옆에 앉는다...” (pp.29~30)


  따라서 슈테판 츠바이크는 조제프 푸셰가 등장하는 순간 그가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를 묘사할 때도 이 점을 놓치지 않는다. 그는 신념에 따라 행동하는 대신 철저히 힘의 우위를 가늠하여 행동한다. 이는 그가 역사에 등장하는 순간이 아니라 사라지는 순간에도 그렇다. 그는 자신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는 그간의 행동이 다른 이들의 뇌리에서 사라질 수 있는 시간을 벌기 위해(서라는 이유에서만) 재빨리 역사의 현장에서 사라지곤 하였다.

 

  “세계의 역사는 대개는 용감한 자들의 역사로 서술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게 다는 아니다. 세계의 역사는 비겁한 자들의 역사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정치란 공동체의 의견을 선도하는 것이라고 믿으려 하지만 이 역시 사실이 아니다. 지도자는 공동체의 의견이라는 법정을 만들고 거기에 영향력을 행사하지만 바로 이 법정 앞에서 비굴하게 머리를 조아리기도 한다. 전쟁도 항상 이러다가 일어난다. 위험한 말로 불장난을 하고 민족 감정을 자극하다가 정치가는 범죄를 범하게 된다. 이 지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악덕도 잔인성도 인간의 비겁함만큼 많은 피를 흘리게 한 적은 없다. 따라서 조제프 푸셰가 리옹에서 대중을 학살한 것은 공화주의자의 여정 때문이 아니다. (그는 열정이 무엇인지 모른다.) 그저 자신이 온건주의자로 밉보일까 봐 두려워서 그렇게 했을 뿐이다...” (pp.68~69)


  그렇게 조제프 푸셰는 지롱드파와 자코뱅파에서 지롱드파를 선택한 최초의 선택 이후 한결같았다. 그는 자신의 삶 내내 어느 한쪽에 머무는 지조를 발휘해 본 적이 없다.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라는 말은 조제프 푸셰에게는 일종의 생활 수칙처럼 적용되었다. 그는 혁명과 반혁명, 공화와 왕당, 공산주의자와 백만장자처럼 전혀 어울릴 수 없는 양극단을 아무렇지 않게 오갈 수 있었다. 


  “... 완벽한 배신자는 기회에 따라 배신하는 사람이 아니라 배신의 재능이 완벽하게 천성이 되어 버린 사람이다. 푸셰가 바로 그랬다. 그가 배신을 하는 것은 어떤 의도가 있어서, 혹은 작전에 필요해서가 아니다. 그의 가장 근원적 천성 때문이다.” (p.297)


  프랑스 대혁명과 나폴레옹의 집권이라는 혁명과 반혁명의 시기에 거듭 이러한 변신을 꾀할 수 있었던 것은 놀랍다. 반대로 그러한 시기였기 때문에 변신을 거듭해야 했다는 변명도 가능하겠지만, 이라고 적어놓고 보니 슈테판 츠바이크는 독자가 나와 같이 생각하기를 바라지 않은 것 같다. 츠바이크는 이러한 변신이 ’그의 가장 근원적 천성‘이라고 못박고 있다. 여하튼 조제프 푸셰는 절대 영웅은 아니었지만 역사에 영향일 끼칠만큼은 충분히 비겁하였다.



슈테판 츠바이크 Stefan Zweig / 정상원 역 / 조제프 푸셰 어느 정치적 인간의 초상 (Joseph Fouché) / 이화북스 / 384쪽 / 2019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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