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 로스 《휴먼 스테인》

'인간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 모든 혼란'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얼룩들의

by 우주에부는바람
휴먼스테인.JPG

이제 일흔 한 살이 된 콜먼 실크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테나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고, 오랜 시간 중요한 직위를 역임하며 대학을 발전시키는 일에 헌신해왔다. 하지만 자신의 사회적 역할을 다하는 그 마지막 순간, 자신의 수업 시간에 한 차례도 참석하지 않은 두 명의 학생들을 향하여, 'spooks' 그러니까 귀신, 유령이라는 의미를 지니지만 동시에 흑인을 비하하는 의미도 지니는 이 단어를 사용한 것이 문제가 되면서 일선에서 물러나게 된다.


“... 아이리스가 죽은 다음날 그가 내 집 문을 두드려대며 내게 ‘Spooks’라는 책을 쓰라고 제안했던 이후로, 나는 콜먼 실크와 전혀 예상한 적 없고 계획한 적 없는 진지한 우정을 나누는 사이가 되어버렸다. 나는 단지 정신 수련 차원에서 콜먼이 처한 곤경에 이토록 신경을 쓰는 것이 아니었다. 콜먼이 겪는 어려움이 내 일처럼 중요하게 여겨졌던 것이다. 내게 남은 시간이 얼마가 되었건, 매일같이 해야 할 일이 있으니 다른 데서 재미난 일을 찾을 생각 말고 꼭 해야만 하는 일에 전념하자고 스스로 단단히 결심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의 인생은 고사하고 내 인생조차 제대로 챙기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1권, p.76)


불명예스러운 퇴장은 그 자체로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자신에게 가해지는 인종차별주의자라는 오명에 맞서 싸우는 와중에 결국 콜먼의 아내 아이리스가 죽는다. 콜먼은 더 이상의 싸움을 포기하고 물러선다. 이제 그는 아테나 대학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둔 시골 마을에 거처를 마련하고 은둔 생활을 한다. 그리고 바로 그 곁에 네이선 주커먼, 이 소설의 화자이자 다른 주커먼 시리즈의 화자인 네이선 주커먼이 이웃으로 존재한다. (그리고 《미국의 목가》에서 스위드 레보브가 그랬던 것처럼 《휴먼 스테인》에서 콜먼은 주커먼에게 소설을 써달라고 부탁한다.)


“... 대개 두 사람은 서로 말 한마디 걸지 않았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것이 더 큰 즐거움을 주기 때문이었다. 포니아는 콜먼이 자신을 지켜본다는 것을 알았고, 그녀가 안다는 걸 콜먼도 알았기에 한층 더 열심히 그녀를 지켜보았다. 두 사람이 흙바닥에서 뒹굴며 섹스를 할 수 없다는 사실은 티끌만큼도 문제 되지 않았다. 콜먼의 침대가 아닌 다른 장소에서 단둘이 있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넘을 수 없는 사회적 장벽이 두 사람을 갈라놓고 있다는 사실을 순순히 인정하는 것으로, 즉 한 명은 목장 노동자로 다른 한 명은 은퇴한 대학교수로 맡은 배역에 충실한 것으로 충분했다...” (1권, pp.81~82)


그러던 어느 날 아내의 죽음 이후 칩거에 치중하고 있던 콜먼으로부터 주커먼은 포니아 팔리라는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듣는다. 일흔한 살의 전직 대학 교수인 콜먼은 서른네 살에 문맹이라고 주장하는 청소부 포니아와 육체적 관계를 맺고, 그 이상의 유대감을 쌓아가고 있는 중임을 주커먼에게 실토한다. 주커먼은 콜먼과 함께 포니아가 일하는 목장에 들러 먼 발치에서 포니아를 볼 수 있는 단 한 명의 친구, 콜먼의 친구이다.


“... 아이리스의 편견 없는 태도는 자유주의자니 자유의지론자니 하는 사람들이 자랑스럽게 여기는 도덕적 자질도 아니었다. 그것은 조증躁症에 더 가까웠고, 편협함의 균열된 안티테제에 더 가까운 것이었다. 의미라는 전제, 권위에 대한 신뢰, 통일성과 질서에 대한 신성화처럼 대다수 사람이 필수 불가결하다고 여기는 것들이 그녀에게는 살아오는 동안 터무니없는 헛소리이고 미친 짓 같았던 것이다. 정상적 상태라고 불리는 것이 존재에 처음부터 내재되어 있다면, 왜 우리가 보는 것 같은 일들이 벌어지고, 역사는 왜 그 모양이란 말인가?” (p.208)


하지만 소설이 어느 정도 진행되는 동안 독자는 콜먼의 과거로 자꾸 소환된다. 사실 소설을 한참 읽고 나서도 독자인 나는 계속 헷갈렸다. 가만 지금 콜먼이 흑인이라는 거야 아니면 유태인이라는 거야. 그리고 어느 순간 밝혀지는 진실 (소설의 말미에 깜짝 반전으로 등장하는 것이 아니니 책을 읽지 않은 독자인 당신이 알아도 상관없다), 콜먼은 흑인이지만 여러 인종이 섞이고 대를 거듭하면서 백인에 가까워진 흑인이다. (비록 WASP 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유태인이라는 설명에는 넘어갈 수 있는 정도이다.)


“지금 저들은 누구인가? 지금의 저들은 두 사람에게 가능한 가장 단순한 존재 방식이다. 독자성의 진수. 모든 고통이 열정으로 응결된 것이다... 극단적으로 다른 두 사람, 일흔하나와 서른넷의 나이에 저토록 어울리지 않는 동맹을 맺은 저들은 누구인가? 저들은 저들에게 떨어진 재앙이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 다르게 마지막을 보낸다. 이것은 두 사람이 생각해낸 마지막을 보내는 방식이다. 이제 늦지 않게 두 사람을 멈출 방법은 없다. 이미 벌어진 일이다.” (2권, p.9)


콜먼은 첫 번째 그리고 두 번째 여자 친구와 흑인이라는 자신의 근원을 밝힌 이후 헤어졌다. 그리고 콜먼은 결정을 내린 것이다. 자신의 기원이 되는 가족을 완전히 버리고 유태인으로 살아가기로. 그리고 콜먼은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다. 아버지를 여의고 혼자가 된 엄마가 돌아가실 때까지, 자신이 결혼하여 네 명의 자녀를 두는 동안 한 번도 연락하지 않았다. (콜먼은 자신의 여동생과 연락을 취하였고, 그녀를 통해 모든 사실을 전달받고 있었음에도...)


“... 이곳에서 분류 불가능한 존재가 되면,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존재가 되면, 그들은 그걸 이유로 들볶는다. 바로 그 분류 불가능한 존재가 되는 것이 그녀의 성장소설의 일부이며, 그녀가 늘 그 분류 불가능함을 즐겨왔다는 것을 아테나 대학의 누구도 이해하지 못한다.” (2권, p.115)


겉으로는 평범하고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온 것처럼 보이는 콜먼이지만 그의 과거라는 얼룩은 그의 말년에 와서 본격적인 흔적을 남기는 것만 같다. 누가 보아도 명확한 불행의 얼룩을 지닌 포니아의 과거와 콜먼의 과거는 다르지만 같다. 콜먼이 포니아에게 끌린 것이 포니아가 콜먼에게 끌린 것이 아무런 맥락이 없었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이다. 그리고 두 사람은 (주커먼이 없었다면 해명의 여지도 갖기 힘들었을) 죽음이라는 파국, 아니 죽음 뒤에 더욱 곤혹스러운 파국을 맞이한다.


“... 어떻게 콜먼 같은 사람이 존재하게 되었는가? 그는 도대체 어떤 사람이었는가? 그가 자신에 대해 가졌던 생각은 타인이 그가 어떤 사람일 거라고 생각한 것보다 더 타당했을까, 아니면 덜 타당했을까? 그런 걸 알아낼 수 있을까? 하지만 삶이란 목적이 숨겨져 있는 어떤 것이라는 생각, 관습이란 고찰을 허락하지 않는 어떤 것이라는 생각, 사회란 심한 결함이 있을지 몰라도 그 자체의 모습에 전념하는 것이라는 생각, 개인이란 그 사람을 규정하는 사회적 요인들과 완전히 별개로 그 요인들을 넘어 실재하는 것이고 사회적 요인들이 실제로 그 개인에게는 실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는 생각 - 요컨대 인간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 모든 혼란들은 유서 깊은 규칙 목록에 대한 그녀의 확고부동한 헌신에서 다소 벗어난 곳에 놓여 있는 것처럼 보였다.” (2권, p.206)


필립 로스의 장기인 빽빽한 묘사와 군더더기 없는 (없다고 느껴지는) 설명이 이 혼란스러운 인간 군상들, 특히나 콜먼의 대척점이자 변형된 거울 속 대상이랄 수 있는 델핀 루 교수 그리고 포니아의 불행을 끝까지 몰아붙이며 미국 역사의 불행한 한 단면을 끈기 있게 보여주는 전남편 레스를 향하는 몰입의 시선도 소설의 끝까지 유지되도록 만들고 있다. ‘인간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 모든 혼란’이라고 부를법한 사건과 사람들이 이 소설을 통해 집요한, 어지간해서는 말끔히 해소되기 힘든 거대한 얼룩으로 그려지고 있다.



필립 로스 Philip Roth / 박범수 역 / 휴먼 스테인 (The Human Stain) / 문학동네 / 전2권 1권 316쪽, 2권 262쪽 / 2010, 2013 (2000)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시리 허스트베트 《당신을 믿고 추락하던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