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 로스 《미국의 목가》

끝내 숨길 수 없는 인간의 허약한 면모들이 고스란히 국가에게도...

by 우주에부는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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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시모어 '스위드' 레보브라는 인물이 있다. 유대계 이민 3세쯤이 될 것이고, 유대계라고는 하지만 (유대계로 여겨지지 않는 용모의 특징을 포함하여) 여러 면에서 뛰어난 면모를 드러내는 인물이다. 학교에서 유명한 인물이면서 동시에 그러한 유명세에 걸맞지 않은 초연함까지 지니고 있으니 여러 면에서 동경의 대상이 될 법 하다. 이 어린 시절의 레보브를 잘 알고 있는 화자는 (그러니까 주커먼 시리즈의 모든 화자인 주커먼) ‘학교의 아이들로 이루어진 원시적인 인류 위에 우뚝 선 두드러진 존재’라고 그를 기억할 정도이다.


“... 그들이 이렇게 모이는 것은 어차피 일 년에 딱 한 번뿐이었다. 이때는 모두 같은 것을 먹는다. 아무도 이상한 것을 먹으러 몰래 움직이지 않는다... 이억 오천만 명이 거대한 칠면조 한 마리를 먹는다. 거대한 칠면조 한 마리가 모두를 먹이는 것이다. 이상한 음식과 이상한 방식과 종교적 배타성은 유예되고, 유대인의 삼천 년 묵은 노스탤지어도 유예되고, 그리스도와 십자가와 기독교인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못박히는 것도 유예된다. 뉴저지와 다른 곳의 모든 사람이 일 년 중 그 어느 때보다도 자신들의 비합리성에 대해 수동적인 태도를 취할 수 있는 때다. 모든 불만과 원한이 유예된다. 드와이어 가족과 레보브 가족만이 아니라, 평소에 늘 다른 모든 사람을 의심하는 미국의 모든 사람이 그렇다. 이것이 최고의 미국의 목가이며, 딱 스물네 시간만 지속된다.” (2권, pp.256~257)


레보브는 유대계이지만 그만큼이나 정확하게 미국인이다. 그는 세계대전 막바지에 해병대에 입대한 바 있고 (비록 참전에 이르지는 못하였지만), 아버지의 장갑 사업을 물려받아 운영하고 있으며, 미스 뉴저지 출신인 아일랜드계 이민자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였다. 하지만 이 전형적인 미국인인 레보브에게 해결 불가능한 심연과도 같은 암초가 하나 불쑥 나타난다. 그것은 다름아닌 바로 그와 아내인 돈 사이에 태어난 딸, 메리 레보브이다.


“... 그는 미국의 미래가 견고한 미국의 과거로부터 그냥 저절로 펼쳐질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세대마다 점점 똑똑해지고 - 이전 세대의 부족함과 한계를 아는 만큼 더 똑똑해지고 - 편협성에서 조금씩 더 벗어나면 미국의 미래가 펼쳐질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미국에서 자신의 권리를 철저하게 행사하고, 유대인의 전통적인 습관과 태도를 버런 이상적인 인간, 미국 이민 이전의 불안정과 낡고 구속적인 강박으로부터 벗어나 평등한 사람들 사이에서 한 명의 평등한 사람으로서 떳떳하게 살아가는 이상적인 인간이 되기를 바라면, 그런바람으로부터 저절로 미국의 미래가 펼쳐질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고대하던 미국의 미래는 박살이 난다.” (1권, 138~139)


어려서부터 말더듬이의 증상을 지니고 있던 그의 딸 메리는 베트남 전쟁 반대가 한창이던 무렵, 그들이 살고 있는 도시에서 폭탄 테러를 저질렀다. 뉴욕을 오가며 일군의 사람들과 어울린 것이 원인이라고 생각하지만 어쩌면 그보다 더 오래된 이유가 있을 지도 모른다, 며 레보브는 끊임없는 상념에 사로잡히고는 한다. 그 사건 이후 메리는 집을 떠났다. 레보브는 자신의 딸을 사랑하지만 그 딸은 아버지를 사랑하지 않는다 아니 사랑할 수가 없다.


“아이에게 미국인이 된다는 것은 미국을 혐오한다는 것이었지만, 그에게 미국을 사랑한다는 것은 아버지와 어머니를 사랑하는 것을 놓아버릴 수 없듯, 자신의 품위를 놓아버릴 수 없듯 놓아버릴 수 없는 것이었다... 미국을 싫어하는 것과 그들을 싫어하는 것 사이에는 별 차이가 없었고, 아이도 그것을 알았다. 그는 아이가 싫어하고, 인생의 모든 불완전한 것들의 원인으로 간주하고, 폭력적으로 뒤집어엎고 싶어하는 미국을 사랑했다. 그는 아이가 싫어하고 조롱하고 전복하고 싶어하는 ‘부르주아적 가치들’을 사랑했다...” (1권, p.321)


시간은 흐르고 레보브는 이십대, 이름을 바꾼 채 이제는 자이나교도가 된 딸과 마주하게 된다. 하지만 그 딸을 어떻게 해야 할지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딸은 그 사이 또 다른 폭탄 테러를 저지른 바 있고, 그로 인해 세 명이 죽었다. 여전히 메리는 레보브에게 다가설 마음이 없고, 레보브 또한 메리의 사건 이후 이제 겨우 안정을 찾아가던 레보브 가문에 메리의 등장이 어떤 파문으로 작용할 것인지 알 수가 없다.


“... 그는 그가 생각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을 생각하지 않고 저녁 시간을 통과해야 했다. 앞으로도 영원히 그렇게 해야 했다. 아무리 빠져나가고 싶어도 그는 그 상자 속의 순간에 딱 멈춰버린 채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아니면 세상이 폭발할 터였다.” (2권, p.160)


소설은 미국에 동화되기 위하여 평생 노력해온 (심지어 생김새에서 이미 북구적이라 스위드, 그러니까 스위스 사람이란 의미란 별명을 가질 정도인) 유대인 시모어 스위드 레보브 그리고 그 가문의 인생 역정을 그려내고 있다. 미국 내 유대인 (혹은 WASP를 제외한 이민자들의)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어쩌면 이것 자체가 지금까지도 끊임없이 이민의 역사와 자국의 역사를 끊고는 이야기하기 힘든 미국의 역사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미국의 목가’라는 제목에 부합하는 이야기이다.


“그래, 그들의 요새는 금이 갔다. 여기 멀리 떨어진, 안전한 올드림록에서도, 이렇게 한번 벌어진 이상, 다시는 아물지 않을 것이다. 절대 회복되지 않을 것이다. 모든 것이 그들에게 맞서고 있었다. 그들의 삶을 좋아하지 않는 모든 사람, 모든 것이 맞서고 있었다. 외부에서 들려오는 모든 목소리가 그들의 삶을 비난하고 거부하고 있었다! ... 그런데 그들의 삶이 뭐가 문제인가? 도대체 레보브 가족의 삶만큼 욕먹을 것 없는 삶이 어디 있단 말인가?” (2권, p.288)


필립 로스의 다른 소설들과 마찬가지로 배경이나 인물에 대한 디테일한 묘사는 어느 한 군데 엉성한 곳이 없다. 그러한 묘사들에 의하여 뒷받침되는 깊은 성찰의 문구들 앞에서는 종종 멈추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묘사와 성찰을 더욱 숨가쁘게 만드는 것은 그가 (이 자리에 이 인물들을 탐구하는 소설 속 화자인 주커먼이 있고, 작가 필립 로스가 있다) 대상으로 삼고 있는 인물들이 끝내 숨기지 못하는 허약한 면모들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것은 미국이라는 나라의 역사가 가지고 있는 허약함을 대리하고 있기도 하다. 우리들의 나라들이 그러한 것처럼.



필립 로스 Philip Roth / 정영목 역 / 미국의 목가 (American Pastoral) / 문학동네 / 전2권 1권 346쪽, 2권 302쪽 / 2014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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