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울로 코엘료 《스파이》

삶에의 강한 의지로 그만 삶에 조정당하고 말았던 한 여인의...

by 우주에부는바람

마타 하리 Mata Hari 는 1876년 네델란드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마르하레타 헤이르트라위다 젤러 Margaretha Geertruida Zelle 이고, 마타 하리는 인도네시아어로 ‘새벽의 눈’이라는 뜻이다. 마타 하리는 세계대전 중 독일 정보기관에 포섭되어 연합군 측의 고위 인사들을 유혹하고 정보를 빼냈다는 혐의를 받았다. 프랑스 정부는 그녀를 스파이로 단정지었고 총살형에 처하였다.


“죄가 없다? 어쩌면 이건 정확한 표현이 아닐 겁니다. 내가 너무도 사랑하는 이 도시에 첫발을 디딘 이후로 죄가 없던 때는 단 한 순간도 없었습니다. 정부가 기밀을 원하는 자들을 조종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고, 독일 프랑스, 영국, 스페인 사람들이 나라는 사람에게 저항할 수 없으리라 여겼지만 결국은 내가 조종당하고 말았습니다. 나는 내가 저지른 죄로부터 도망쳤고, 나의 가장 큰 죄는 남자들이 지배하는 이 세상에서 자유롭고 독립적인 여성이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실제로 이용한 것이라고는 상류사회 살롱에서 떠도는 풍문들뿐이었지만 나는 스파이라는 죄명을 선고받았습니다.” (pp.26~27)


소설은 갇혀 있는 마타 하리가 총살형을 앞두고 만난 변호사의 시선 약간 그리고 마타 하리 자신이 자신의 삶에 대해 기술하는 글이라는 가지 형태로 진행된다. 소설은 흔히 팜므 파탈 혹은 이중 간첩의 전형으로 알려져 있는, 마타 하리가 왜 자신이 태어난 네델란드를 떠나게 되었는지, 남편을 따라 아시아로 향하게 되었고 다시 유럽의 중심부라고 할 수 있는 프랑스로 돌아와 상업적 성공을 거두게 되었는지를, 주로 마타 하리의 입을 빌려 설명하고 있다.


“삶이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지 모를 때는 길을 잃는 법도 없습니다.” (p.86)


소설 속에 드러나는 마타 하리는 애초에 어떤 의도를 가지고 살아낸 삶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녀는 눈앞에 놓인 상황을 벗어나기 위한 부득이한 선택, 혹은 아무 선택도 하지 않음으로 어떤 선택에 이르게 된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가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지는 것도 성립 불가능한 선택지라고 할 수 있다. 그녀는 제 삶이 흘러가는 데로 몸을 맡겼고, 그 종착지를 그녀는 상상할 수 없었다.


“... 육체는 쉽게 지친다해도 영혼은 언제나 자유로우니, 언젠가는 우리가 세대를 거듭하며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이 지옥의 수레바퀴에서 헤어나도록 도와줄 것입니다. 비록 생각이 늘 제자리에 머문다 해도 그보다 더욱 강한 힘이 있으니, 우리는 그것을 사랑이라 부릅니다.” (p.210)


하지만 그녀를 이처럼 아무런 의지가 없이, 자신의 명성을 좇아 이곳저곳으로 옮겨 다니는 인물로만 상상해도 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일각에서 그녀에게 보내는 시선, 그러니까 구시대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새로운 시대의 신여성으로 부각시키려는 시선 또한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소설에서는 어느 한쪽의 시선을 선택하지 않는다. 그저 그녀에게 덧씌워진 스파이라는 혐의를 향한 의구심만을, 이런저런 자료를 통해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


“마타 하리의 시신은 어딘가의 얕은 무덤에 묻혔는데 그 장소는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당시의 관습에 따라 그녀의 머리는 잘려 정부 대표들에게 전달되었다. 그리고 파리의 생페르 거리에 있는 해부학 박물관에 한동안 보관되었다가 분명치 않은 시기에 사라졌다... 사형의 주요 책임자였던 앙드레 모로네 거마는 1947년에 기자이자 작가인 폴 기마르에게 모든 재판은 추론과 일반화와 억측에 기반했을 뿐이라고 고백하면서 다음과 같이 결론지었다... 우리끼리 하는 얘기지만, 우리가 확보한 증거는 고양이 한 마리 벌줄 만큼도 되지 못한다.” (p.216)


공교롭게도 연달아 읽은 두 편의 소설이 모두 실존하는 인물을 다루고 있다. 손보미의 《디어 랄프 로렌》에서 랄프 로렌은 실제의 랄프 로렌과는 전혀 다른 일종의 가상 공간에서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그리고 파울로 코엘료의 《스파이》에서 마타 하리는 이미 알려져 있지만 너무 여러 버전으로 알려져 있는 그녀의 삶이 파울로 코엘료의 버전으로 다시 한 번 그려지고 있다. 손보미의 랄프 로렌이 독자의 손아귀를 크게 벗어나 당황스럽다면, 파울로 코엘료의 마타 하리는 특이할 것이 없어 밋밋하다.



파울로 코엘료 Paulo Coelho / 오진영 역 / 스파이 (A Espiã) / 문학동네 / 222쪽 / 2016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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