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시카와 미와 《아주 긴 변명》

망설임 없는 죽음 뒤로 남겨진 길고 긴 망설임 중에...

by 우주에부는바람

기누가사 사치오는 어린 시절 당시 인기를 끌던 야구 선수와 이름이 같다는 이유로, 자신의 이름이 교실에서 불리울 때마다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이제 그는 어른이 되었고 글을 쓰는 작가가 되었다. 쓰무라 케이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하고 있고 원래의 이름을 아는 이는 거의 없다. 미용실을 운영하는 아내 나쓰코가 있고, 나쓰코는 일 년에 한 번 친구인 유키와 함께 여행을 떠난다.


“미안한데... 뭔데? ... 뒷정리 좀 부탁해... 그러려고 했어... 문이 닫히고 나쓰코의 발소리가 멀어지다가 현관 밖으로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것이 기누가사 사치오와 기누가사 나쓰코의 마지막 인사가 되었다.” (p.43)


매년 치르는 행사처럼 아내는 친구와의 여행을 위하여 집을 나서기 전 일상적인 말을 남겼다. 나 또한 그 말에 건성으로 답변하였다. 아내는 그렇게 떠났고 다시 돌아올 수가 없게 되었다. 아내와 아내의 친구가 타고 있던 버스가 사고를 당했다. 나는 그 시간 편집자이며 나의 애인인 사짱과 함께 있었다. 그것이 나의 죄책감을 더욱 크게 하였는지는지 알 수 없다. 나의 생활에는 불가피하게 변화가 생겼다.


“... 나는 죽은 아내의 얼굴을 본 지 스무 시간 뒤에는 벌써 그 백골을 줍고 있었다. 화로 문이 열리고 안에서 재가 된 유골이 나오자, 나는 자신이 본의 아니게 동요하지 않을까 조마조마했다. 그런데 평평한 받침대 위에 널린 그것들을 보는 순간, 갑자기 뭐가 뭔지 알 수 없어지고 말았다. 그것은 내가 지금까지 몇 번을 봐서 알고 있는 ‘인간의 유골’일 뿐 나쓰코다운 점은 털끝만큼도 없었다...” (pp.64~65)


일본 소설의 스토리텔링은 대범하다. 아내의 죽음은 초입에 배치되어 있다. 나의 슬픔은 격렬하지 않다. 작가의 아내로 살았던 나쓰코의 과거, 그러니까 살아 있을 당시의 나쓰코에 대해서도 설명이 많지 않다. 나쓰코가 어떤 식으로 남편을 대했는지 명확하지 않다. 두 사람의 관계가 어떠했는지도 해석의 여지가 많다. 다만 나쓰코가 보내려다 만 문자, ‘이제 사랑하지 않아. 털끝만큼도.’, 라는 문자만 애매하게 남아 있다.


“그러나 나 역시 툭하면 읽어보라고 하지 않는 편을 홀가분하게 여기게 되었다. 함께 사는 사람 입장에서는 글과 그 글을 쓴 사람의 실태에 차이를 느끼는 법이고, 또 그 점을 용서할 수 없는 순간이 찾아오고 마는 법이다... 자신에게 생긴 일을 소재로 밖을 향해 글을 쓰고 또 파는 만행을 잠자코 이해하고 오로지 용서하는 것만이 ‘글쟁이’의 가족인 자의 도리일 텐데, 그럴 수 없게 된다. 어디부터가 창작이고 어디부터가 현실의 재연인지 그 경계선을 찾느라 부심한다...” (p.28)


오히려 살아 있는 캐릭터들은 아내의 친구인 유키, 그녀의 남편인 오미야 요이치와 남겨진 남매인 신페이와 아카리이다. 나는 자신의 본명을 함부로 부르는 유키의 남편 오미야 요이치에 의해 자꾸만 일상으로 불려나간다. 원래 내가 누리던 일상과는 너무 먼 거리에 있는 일상이다. 트럭 운전사인 오미야 요이치를 대신해 두 아이를 돌보는 나는, 얼마전까지도 상상할 수 없는 캐릭터이다.


“사랑해야 할 날들에 사랑하기를 게을리 한 대가가 작지 않군. 대신 다른 사람을 사랑해서 되는 일도 아니고.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과 공존은 상실을 치유하고, 할 일을 늘려주고, 새로운 희망과 재생의 힘을 선물해주지. 그러나 상실의 극복은 바쁜 일이나 웃음으로는 절대 성취되지 않아... 인간은 죽으면 그뿐이지. 우리는 둘 다 살아 있는 시간을 너무 우습게 봤어.” (p.323)


여인들의 죽음을 두고 여러 명의 사람들이 주변에 등장한다. 소설에서는 이들에게 골고루 시선을 보내려고 하였다. 그건 그렇고 책의 표지에는 사진이 인쇄되어 있다. 소설은 2016년 일본에서 영화로 만들어졌는데, 그 중 한 장면인 듯하다. 후카츠 에리가 나쓰코 역할을 맡았나보다. 영화라면 어떨까 잠시 생각해본다. 후카츠 에리라면 나쓰코의 묘한 심상을 잘 표현했을 것이다. 조금 궁금하다.



니시카와 미와 / 김난주 역 / 아주 긴 변명 (永い言い譯) / 무소의뿔 / 333쪽 / 2017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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